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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유동 Jul 15. 2024

계란후라이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더는 이어 부르기도 부끄러운 낡은 유행가. 인용하긴 싫지만, 당시 우리 집 상황을 설명하는데 이보다 더 명료한 문장은 찾지 못했다. 반지하에 단칸방. 방에는 퀴퀴한 냄새가 배어 있었고, 방을 나가면 바로 부엌과 화장실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반지하인 입구에는 나무로 조악하게 만들어진 작은 데크가 있었는데, 그 한 평 남짓한 공간이 우리의 마당이었다.


동생과 나는 초등학교에서 반지하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가방을 벗어던지고 골목으로 뛰어나갔다. 골목이라고 하기엔 조금 어정쩡한. 차도 들어오지 못할 정도의 폭. 그러니까 집과 집 사이의 비어있는 공간이었다. 덩치가 작았던 우리에게 그 골목은 어른들의 ‘골목’과 다름없긴 했다. 좁아터진 그 골목에, 아이들 대여섯 명이 모여 비석 치기도 하고, 술래잡기도 하고, 나이 먹기도 하며 놀았으니. 어찌 됐든 그 골목은 나에게 사회성을 길러준 ‘역사적인 장소’였다.


어머니가 저녁이 다 됐으니 들어와서 밥 먹으라 부르신다. 사실 누구의 어머니인지는 모르겠다. 어머니들이 자녀를 부르는 목소리는 왠지 모두 똑같은 것 같다. 어쨌든 우리의 어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시면, 우리는 다음에 또 놀자고 인사하며 헤어졌다. 나는 동생과 함께 단칸방으로 들어가고. 라면상자를 닮은 앉은뱅이책상 위에 정성껏 차려진 밥을 먹는다. 어머니는 일명 계란-케첩-밥을 자주 해주셨다. 동생과 내가 잘 먹었기 때문이다. 놋그릇에 갓 지은 쌀밥이 담기고, 노란 반숙 후라이가 밥 위에 올려진다. 밥의 윤기와 아슬아슬하게 형체를 유지하는 노른자가 썩 어울린다. 평화롭다. 나는 아이였으므로 괜한 질투심에 케첩을 마구 뿌린다. 어머니가 간장 한 숟가락을 뿌려 주시고. 나는 마구 비빈다. 그땐 왜 그랬나 싶다. 그냥 숟가락으로 살살 베어 먹었으면 더 맛있었을 텐데. 치기 어린 마음은 이토록 예측 불가다.


어머니의 마음이 치기 어린 마음을 부드럽게 감싼 다음 내 뱃속으로 들어가고. 이내 뜨듯해진다. 감각이 예민해지는 순간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은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몹시 정확한 말이다. 나는 창틀에 붙어있는 거미줄을 보고. 갈색 장롱 위에 쌓아 올려진 내 장난감 세트를 본다. 바닥에 널브러진 레고 조각들. 아버지는 스포츠경기를 보고 계신다. 그러고 보니 고개만 휙 내저었을 뿐인데, 우리 가족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보인다. 동생이 웃을 때 나오는 보조개가 기역 모양이란 것도. 아버지가 집중해서 텔레비전을 보실 때 고개를 살짝 기우뚱하신다는 것도. 어머니가 단칸방 구석에 앉아 반찬 없이 밥만 드시는 것도.


그때 보지 못했던 장면을 이제야 본다. 삼십 년이 지난 후에야. 그때 느꼈어야 할 감정을 이제야 느낀다. 바보같이 삼십 년이 지난 후에야. 그때 해야만 했던 말을 이제야 한다. 어리석게도 삼십 년이 지난 후에야. 이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사랑해’라는 말. 가난했지만 가난함을 전혀 모르고 살게 해 준 나의 부모님. 그분들은 들었어야 할 말을 듣지 못하셨다. 느꼈어야 할 감정을 느끼지 못하셨다. 보셨어야 할 장면을 보지 못하셨다. 부모와 자녀의 시간은 매번 이렇게 어긋난다. 서로가 서로에게 해야 할 말을 빗나가게 하는. 들어야 할 말을 미끄러지게 하는. 서로 다른 시간 선에서 서로를 영원히 그리워하는. 그들은 평행세계에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몇 년이 지났건만, 아직 부모님을 떠나보내지 못한 채, 그날에 못 박혀 있는 못난 아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다른 세계에 잠시 놀러 가신 어머니가 돌아오시면, 자신의 계란후라이를 어머니의 밥 위에 올려드리겠다고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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