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감기가 낫기를 바랄께
80 4 15 인천에서 ㅇ경 13
oo 에게 -
초록색 봄비가 왔다
봄을 재촉하는 초록비인 양
초목을 촉촉이 적시는 봄비가
아지랑이와 봄을 동반한 채 내렸다
지금 난 창밖의 어둠 속에서는 유난히 희고도 청순해 보이는 꽃을 보았다
그건 목련이었다. 그 목련을 갑자기 사랑하고 싶어졌다
그 목련은 사랑하는 마음과 가슴속 깊이 스며든 따뜻한 봄을 가득 안고
너에게 잠시 펜을 굴려본다
ㅇ아 / 그동안 잘 있기를 바라진 않았지만 막상 지독한 감기에 걸렸다니
정말이지 불행한 일이구나
이젠 감기가 낫기를 바랄게
난 네 덕분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하여튼 지나칠 정도로 잘 있단다
너의 편지는 그 어느 봄소식 보다도 훌륭한 소식이었어
만물의 소생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우정이 다시 소생할 수 없었다는 것은
진달래가 피었다는 소식보다 나비가 보인다는 소식보다도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었어.
너의 편지 받고 난 너무도 할 얘기가 많았었어
우선은 정말 늦었지만 3월 17일 너의 생일이었지
축하해주고 싶었지만. 그땐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어
하지만 이젠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어.
그동안의 공백 기간 동안 너는 어떻게 지냈는지 알 수 없지만
난 비참하도록 초라한 내 자신이 얼마나 싸웠는지 몰라
하지만 이젠 비참하게도 초라하지도 않아
다시 태어난 우리의 우정은 짙푸르고 굵게 그 뿌리 흙 속 깊이
모진 풍파 속에서도 흔들릴 수 없는 그러한 우정의 나무를 키우도록
서로가 열심히 노력하도록 하자
* * * * * *
4. 30일 여행 간댔지
우린 5. 15일 간대, 장소는 너희랑 같애.
즐거운 수학여행이 되길 빌겠어.
80, 4. 15 HK 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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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탑 중에서 – 현진건
서도산으로 위엿뉘엿 기우는 햇볕이 그 부드럽고
찬란한 광선을 던질 제 못 물은 수별 수별
금빛 춤을 추는데 흥에 겨운 마치와 정소리가
자지러지게 일어나 저녁나절의 고요한
못 둑을 울리었다
새벽만 하여 한가위 밝은 달이 홀로
정자리가 새로운 돌부처를 비칠 제
정 소리가 그치자 은물결이
잠깐 헤쳐지고 ‘풍’ 하는 소리
부근의 적막을 한순간 깨뜨렸다.
이건 내가 읽은 무용탑 중에서 한 내용을 적은 것인데 너무 좋은 것 같애. 언어도 너무 정교하게 다듬어진 같구해서 적어봤어. 공백도 없애면 해서 그냥 보아둬 나쁘진 않을 거야.
(아니 읽은 책이라면서 무용탑이라고 썼네. 현진건 무영탑 아님?)
40년이 지난 편지지의 퀄리티가 좋다. 색도 바래지 않았고 종이가 낡지 않았다. 태광제품
♣ ♣
인천의 친구 ㅇ경이다.
지난가을 “텅 빈 가을의 한 모퉁이에서 내 마음은 혼자 서 있다”라고..
<가을> 이란 시를 써 보낸 여학생이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가고 다시 봄
목련이 필 때 쓴 편지다.
“너의 편지는 봄소식보다 훌륭했다.”라고 쓴 걸 보니
겨울에는 남편에게 편지를 못 받았나 보다.
“봄이 오고 목련이 피고 기다리던 편지가 오고
만물이 소생하며 우리의 우정도 소생하였다” 고 했다
자존심 때문에 사랑이라 말 못 하고 우정이라 하고 있다.
“그동안 잘 있기를 바라지 않았다”라고 한 걸 보면
기다리는 편지를 안 보낸 남편을 미워했나 보다
“그리고 봄과 더불어 편지가 오고
너의 편지 받고 난 너무 할 얘기가 많았었어.”
라고 쓰고 있다.
할 얘기가 너무 많지만 아무 말할 수 없는 마음
그래서 시도 쓰고 책 내용을 인용하곤 하지.
내게 연락 없이 잘 지내는 것이 밉지만
막상 아프다는 소식에 걱정하는 마음
언제나 더 많이 좋아하는 쪽이 을이 될 수밖에......
그래도 이 여학생은 그 순수함이 있다.
우정이라고 말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엿보이는 편지.♣
PS 참고로 남학생(남편학생)의 생일은 3월 7일이 아니다.
음력 12월이다. 어째서 3월까지 멀리 갔을까
주민등록증 양력생일을 음력으로 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