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는 내게 기타 코드도 알려주고, 호떡도 부쳐주고, 누룽지도 튀겨주고.... 그런 오빠였다.
오빠가 결혼하면서 우리는 멀어졌다.
올케가 나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여동생과 다정한 것이 싫은 올케의 마음을 잘 알기에
우리는 몇십 년 서로 전화도 하지 않았다.
남남보다 더 남남처럼 서로 안부도 묻지 않고 지냈다.
이제 자식들 다 키워놓고
오빠는 퇴직하고 고향 내려가 엄마와 살고 있다.
구순이 넘은 엄마가 거동을 못 하게 되자,
가족들은 모두 요양원에 모시자는 결론을 내렸지만,
오빠는 “ 난 엄마 요양원에 못 보내”라고 말했다.
오빠는 엄마에게 매일 삼시 세끼를 해드렸다.
매끼마다 밥도 새로 짓고 국도 새로 끓였다.
요리책을 보며 영양사처럼 골고루 엄마에게 해 드렸다.
그러다가 오빠는 <한식 조리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거동도 못 하시던 엄마는 지금 기운을 차려 노치원에 다니신다.
어려서부터 착했던 오빠.
엄마가 내게 연탄불 갈라고 시키면
나는 엄마한테 따졌다. “왜 아들은 안 시키고 나한테만 시켜? ”
그러고는 연탄집게를 오빠한테 던졌다.
“오빠가 해! 연탄가스는 여자에게 나빠”
나중에 커서 오빠가 말했다.
“그때 연탄불 갈면서 울었다고...”
하, 이때 연애할 때 남편은 울오빠 이상 다정하고 나를 바라보는 것만도 아까워했었다.
결혼하면 당연히 남편도 오빠처럼 내게 그럴 줄 알았는데... 당연한 것은 없었다.
지난가을 엄마랑 오빠랑 나랑 셋이 엄마의 고향을 돌아보는 여행을 했다. 엄마와 오빠와 셋이 떠난 하루 여행이 편안하고 행복했다. 엄마는 어릴 적 추억을 얘기하면서 참 좋아하셨다. 지금도 오빠는 엄마를 돌보며 엄마와 지내고 있다. 착한 오빠로 인해 온 집안이 평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