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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상이 Jan 13. 2024

절실하다고 생각되는 너에게

신은 도처에 20

OO     

신록의 유월 --.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는 달이기도 해

길가에 파아랗게 물든 가로수에서는. 화사하고 부드러운 여인들의 웃음 속에서도

마냥 어리기만 했던 나의 마음 속에서 까지도. 유월은 충분히 만끽할 수 있었지.

안---녕.

본의는 아니었는데 차일피일하다 보니 답장이 늦어 버렸어.

이유인즉 여행의 피곤함과 시험에 고달픔에 이어지는 휴식 및 등등....     

...... 이런저런 시험 얘기 중략 .......     

그리고 신앙 문제인데!

내가 과연

너의 개인적인 문제까지 개입하여도 무방한지

물론 네가 나의 의견을 물어봤으니까 별문제 없지만 하여튼 고마워.

이렇게 자기 자신의 일에 대해서 서로 상의하면 곧 아주 친해져 버릴 거야.

내 생각은 너가 다시 한번 노력하는 거야.

그게 현명할 거 같애.     

넌 믿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지 모를 거야.

난 믿음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존경해.

그들의 마음속은 내가 존경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거든.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너 결코 믿음을 소홀히 다루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

나도 요즈음은 성경, 믿음, 예수, 모두 호기심이 가.

아마도 너의 영향인 것 같아

언변이 너무 없어서 감동시킬 만한 좋은 조언을 해줄 수가 없구나

빠른 시일 내에 감정을 정리하도록 노력해 봐

오늘은 잘되지 않는 편지였어

다음엔 정성껏 예쁘게 써 보낼게.     

그럼 많은 이야기 생략하고

새로운 평온을 가하며 끝맺을 께     

가장 (무엇인지 모르지만)

절실하다고 생각되는 너에게

주임의 은총이 다하길---.     

80, 6, 3,   h k       

   




특별한 내용없는 여학생 편지다.

교회 여학생인지, 펜팔인지... 이름들이 비슷해서 입력되지 않는다.

다만 그때 남편은 여학생을 사귀러 교회에 다녔는지 모르지만

나름 신앙에 대한 의문과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교회 오빠. 미대 (갈 뻔한) 오빠...

내가 싫어하는 것을 다 갖춘 남자와 나는 어쩌다 결혼을 했다.

     

오죽하면 ‘로또부부’라는 말도 있다.

어느 부부든 서로 안 맞는다.   

우린 그마저 로또도 아니다.


우린 신앙과 정치적 견해는 일치했다.

그나마 그거라도 맘이 맞아 살았나...

선거 때마다 함께 정치인 욕도 해가며

투표장으로 갈 때만큼은 서로 의기투합했다.   

  

살아오면서 나에게 칭찬해 주고 싶은 것이 있다.     

-교인 것

-술 담배를 하지 않는 것.

...

맘에 안 드는 것이 많은 나 자신이지만

이것만은 칭찬해 주고 싶다.

    

나는 살면서 진정한 신앙인을 만나지 못했다.

언제나 그들은 전전긍긍하고 초조하고 욕심이 많아 보였다.

예수님이나 부처님이나

그들 삶은 가장 낮은 곳에서 빈자의 몸으로 산 자들이었다

그를 섬기는 이들은 그러나... 요구하는 것이 많아보였다.

(이태신부나 아니면 그 외 다른 존경할 만한 분들은 내 곁에 없었다.

그나마 젊어서 존경했던 함석헌 옹의 범죄에 가까운 여성편력을 알고

나는 인간을 (예수도 부처도 인간이었으니) 추앙하지 않는다)  

물론 그분들의 교리는 공부해 왔다.

    

나는 가장 인간다운 모습으로 자유롭게 사는 길을 택했다.

나름 내 신념으로 살았으니

나름 나는 신앙을 갖고 있던 것이다.

신앙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나는 유일신을 믿지 않는다.

남편이, 아이들이 유일사상에 빠진 신앙인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그러나 또한 그들이 그런 신앙을 가졌다 해도

간섭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타나엘이여. 도처(到處)가 아닌 다른 곳에서 신(神)을 찾기를 바라지 말라.-지상의 양식 중에서-”

나는 어느 것도 규정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음이 신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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