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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ur Oct 22. 2022

골목이 된 건축, 건축이 된 골목

인사동길, 서울

흔히 인사동 일대의 골목을 잎맥에 비유한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태를 묘사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영양분과 수분을 전달하듯 인사동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표현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인사동에서 길과 골목의 가치는 세 계획을 통해 실현됐다. 첫 번째는 1987년 수립된 ‘인사동 도시설계’다. 제도로써 도시설계는 상세계획과 함께 2000년에 지구단위계획으로 통합되기 전까지 「건축법」에 있었다. ‘인사동 도시설계’에서 인사동길의 기본방향은 전통, 민예 및 문화의 중심거리라는 기존 이미지를 유지하고 발전하여 그와 관련된 상업 활동을 활성화하는 것이었다. 당시 구역계나 토지이용체계도 등을 보면 인사동 길이 포함된 블록 주변에서 일어나는 대규모 상업·업무시설로부터 최소한 인사동길과 한옥밀집구역을 보존하겠다는 의도가 있었다. 차도와 보도가 구분되어 있지 않았던 과거 인사동길을 떠올리면 ‘인사동 도시설계’에서 제시한 모습은 상당히 혁신적으로 보인다(아래 왼쪽 사진).

두 번째 계획은 현재 인사동의 가로환경을 만든 ‘역사문화탐방로 조성계획’이다(위 오른쪽 사진). 1999년에 수립된 조성계획의 목적은 도심 활동공간과 연계되는 보행체계를 구축하여 시민과 외래방문객이 역사문화장소로서의 보행공간을 즐기며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인사동길에는 전벽돌이 깔렸고 물확, 돌로 만들어진 볼라드(bollard), 나무 기둥 같이 전통을 디자인 모티브(design motive)로 한 가로시설물과 남인사마당, 북인사마당 등 공공공간이 이 계획을 통해 조성됐다. 하지만 2010년에 서울시는 ‘하이힐이 끼지 않는 거리’를 만든다며 전벽돌을 걷어내고 마천석을 깔아 인사동길을 평평하게 바꿨다. 이에 대해 ‘역사문화탐방로 조성계획’의 설계총책임을 맡았던 김진애는 “인사동은 결점이 있으면 있는 그대로 잘 쓰이는 공간임에도 역사적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의 색을 없애고 겉멋 든 화장에 집중”했다며 아쉬워했다.


세 번째 계획은 2002년에 수립된 ‘인사동 지구단위계획’이다. ‘역사탐방로 조성계획’이 인사동길 가로환경조성사업에 중점을 두었다면 ‘인사동 지구단위계획’은 인사동길 주변의 건물이나 물리적 환경 개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인사동 지구단위계획’에서는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명소인 인사동을 난개발 및 이질적인 용도로부터 보전하기 위해 작은 가게와 한옥 살리기, 골목 지키기와 문화거리 가꾸기, 전통문화업종 살리기를 제안했다.

인사동의 지역적 맥락이 거미줄 같은 골목에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계획체계가 마련되었지만 이에 적합한 건축은 쉽게 등장하지 않았다. ‘인사동 지구단위계획’이 수립된 이후에도 상업지역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동대문 패션몰 같은 판매시설들이 여전히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렇게 설계된 대부분의 건물들은 인사동을 걷는 보행자들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 실패했다. 길이 단순히 보행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보행과 더불어 길에 면한 건축물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복합된 행위를 담는 공공공간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인사동 골목에 적합한 건축을 찾는 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인사동 골목과 어울리는 건축물을 보여준 첫 번째 건물은 옛 덕원갤러리다(현 갤러리 미술세계, 아래두 사진). 덕원갤러리는 신축이 아니라 1960년에 지어진 건물을 2003년 리모델링한 것이다. 준공 당시에는 극동방송국, TBC방송국으로 쓰였을 만큼 인사동길에 면한 건물 중에서 큰 규모였다. 리모델링 설계를 맡은 권문성은 인사동보다는 종로에 더 어울렸던 기존 건물을 인사동에 어울릴 수 있도록 바꾸고자 했다.

일단 인사동과 어울리는 기와편, 나무널, 회벽, 적삼목을 외관 재료로 사용했다. 그리고 하나의 덩어리였던 기존 건물을 주변 건물들과 비슷한 크기로 분절했다. 무엇보다 건물 가운데를 가로질러 옥상까지 연결되는 쭉 뻗은 계단을 새로 만들었다. 권문성은 건물 한쪽 모서리가 인사동 네거리에 맞닿아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네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계단을 통해 건물로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설계자가 ‘언덕의 작은 골목길’이라 부른 이 계단은 각 층에 배치된 공예품 판매점, 회랑, 옥상정원을 직접 연결하며, 건물 내부의 다른 통로로 이어진다.     


인사동의 지역적 맥락이 골목이라면 그 골목과 연결된 땅과 건축물은 크지 않아야 한다. 자잘 자잘한 땅이 하나로 합쳐져 커다란 건물이 들어서게 되면 그 과정에서 골목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사동 지구단위계획’에서는 각 구역별로 최대 개발 규모를 설정해 놨다. 인사동 길과 그 안쪽의 한옥관리구역의 최대 개발 규모는 각각 320㎡이하와 240㎡이하다. 그러나 인사동에는 큰 규모의 건물이 이미 있거나 이전하고 남은 땅이 있었다. 그래서 지구단위계획에서는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해 이를 관리하고자 했다. 그중 2001년 4월 발생한 화재로 피해를 입은 12가게가 있던 영빈가든부지는 정비가 시급했다. 특히, 작은 규모의 12가게는 전통문화업종과 인사동길에 면해 있어서 상징성이 컸다. 특별계획구역을 통해 영빈가든부지에서 유지하고자 했던 건 인사동길의 가로연속성, 전통문화업종 그리고 대지 가운데 마당이었다.

사실 특별계획구역의 지침만 따라도 영빈가든부지에 들어서는 건물의 대략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이 오면 설계자는 상위계획에서 제시된 지침이 설계의 창의성을 제한한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이 땅에 들어설 건물은 임대면적을 최대화해야 하는 대형 판매시설이었다. 설계를 맡은 최문규는 특별계획구역에서 제시한 지침을 반영하고 골목을 해석할 방법에 앞서 사람들이 인사동을 찾는 이유를 찾고자 했다. 그리고 인사동이 “그나마 우리나라에서 편하게 걸으면서 구경할 수 있는 곳”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의 특성들이 건물화될 수 있다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한국건축가협회, 2007, 건축가紙, 서울: 한국건축가협회).


생각해 보면 ‘전통적’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인사동에서 실제 전통을 소비한 적은 거의 없다. 오히려 인사동은 걷는 재미가 있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인사동길과 골목들이 개별 건물들과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런 걷는 재미가 건물 안에서도 유지되어야 한다. 우선 설계자는 인사동길에 면해 있었던 12상점의 위치를 그대로 두었다. 외관은 바뀌었지만 위치는 그대로였기 때문에 과거 12상점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큰 변화감을 주지는 않았다. 인사동길에 면한 12상점 사이로 난 입구를 통해 안쪽으로 들어오면 경사로로 휘감겨 있는 마당이 나온다. 새로 계획된 70여 개의 상점은 마당을 가운데 두고 ㅁ자로 배치돼 있다. 입구 오른쪽으로 나 있는 계단을 오르면 690m 길이의 인사동길에 버금가는 새로운 길이 시작된다. 그래서 이 건물의 이름은 ‘쌈지길’이다. 폭 1.8m~2.4m의 쌈지길은 인사동길에 면해서는 길과 나란하고 마당에 면해서는 마당을 향해 열려 있다. 그래서 쌈지길은 인사동길도 되고 마당길도 된다. 그렇게 길을 따라 오르며 상점과 인사동길 그리고 마당을 번갈아 바라보다 마지막 층에 이르면 하늘과 북한산을 마주한다.

쌈지길은 골목을 배회하다 만나는 변화와 우연성을 담고 있다. 여기에 설계자는 체감률이 낮은 경사라는 장치를 하나 삽입했다. 이 장치는 쌈지길에서 층의 개념을 없애고 이를 통해 모든 층이 1층과 유사한 구매력을 갖도록 한다. 무엇보다 이 장치를 통해 인사동길을 지나는 사람들을 쌈지길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끌어들일 수 있다. 이는 인사동길뿐만 아니라 상업지역에 들어서는 대부분의 판매시설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사실 대형 판매시설에서 주변 공간과의 적극적인 관계 맺음은 구매자들의 체류시간을 줄이기 때문에 그렇게 달갑지 않다. 하지만 쌈지길은 상황이 다르다. 인사동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지나갈 수 있는 또 하나의 골목으로 쌈지길이 인식되지 않으면 대형 판매시설이 갖는 폐쇄성으로 인해 활성화될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실패한 판매시설들이 이미 인사동에는 너무 많다.     


명확히 쌈지길은 건축물이다. 그럼에도 이곳에는 건물을 표현하기 위한 디테일(detail)이 거의 없다. 이유는 쌈지길이 건물이 아니라 사람과 물건들이 있는 장소이자 길이기 때문이다. 설계자는 쌈지길의 모든 흐름이 인사동길의 흐름과 연결될 수 있도록 했다. 마당도 의도적으로 사람을 끌어 모으기 위해 만들지 않았다. 그저 상점들을 연결하다 만들어진 공간 같기도 하고 길로 모여든 사람들이 또 다른 행위를 할 수 있도록 만든 장소 같기도 하다. 그래서 쌈지길에서 앞서 언급한 특별계획구역의 계획지침은 생각나지 않는다.

최문규는 인사동이라는 맥락을 분석해 보니 쌈지길이 들어선 땅에는 골목이라는 공공공간이 가장 적합하고 그래서 그 앞을 지나가는 인사동길의 흐름을 작위적으로 틀지 않고 자연스럽게 건물 안으로 연결했다.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쌈지길도 변했다. 주인이 바뀌면서 길의 일부가 내부 공간이 되기도 했고 몇 군데에서는 관리되지 않는 골목길의 모습이 떠올라 반갑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변화도 인사동길과 그 주변 골목들이 변하는 양상과 비슷하다고 본다면 받아들일 만하다. 여러 변화 속에서 짧았지만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건이 ‘쌈지길 유료화’다. 만약 쌈지길이 유료화에 성공했다면 얼마 큼의 입장료는 받을 수 있었겠지만 그 이후 쌈지길은 단순한 대형 판매시설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만큼 인사동을 찾는 사람들에게 쌈지길은 건물 안 상점을 연결하는 외부에 만들어진 통로가 아니라 도시 안의 어느 골목이다. 일반시민들 누구나 어떠한 거리낌도 없이 이용해도 문제 되지 않는 공공공간이다.


인사동에서 쌈지길은 뒤따라 등장하는 대형 판매시설의 좋은 선례가 됐다. 하지만 고객 유치를 위해 서로 경쟁해야 하는 관계로 본다면 뛰어넘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쌈지길 개장 이후 10년이 지난 2014년 쌈지길 규모와 비슷한 ‘인사동 마루’가 개장했다. 인사동 마루의 개장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그 정도 규모의 판매시설이 들어설 만한 땅이 인사동 어디에 있었는지 궁금했다. 인사동 마루는 과거 해정병원 자리에 들어섰다. 두 동으로 이루어진 인사동 마루에서 북쪽 건물은 기존 해정병원을 증축한 것이다. 인사동에 병원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더군다나 이 병원은 1971년부터 같은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인사동에서 해정병원의 존재를 오랫동안 몰랐다는 사실은 결국 인사동길을 배회하다 쓱 들어가야 하는 판매시설로서는 극복해야 하는 땅의 약점이기도 했다.

쌈지길처럼 인사동 마루도 시설명에서부터 자신들이 지향하는 공간을 드러내고 있다. 마루의 사전적 의미는 “집채 안에 바닥과 사이를 띄우고 깐 널빤지, 또는 그 널빤지를 깔아 놓은 곳”이다. 전통 건축에서 마루는 방과 방 사이에서 마당을 이어준다. 사람들은 마루에 앉아 마당과 그 밖을 바라본다. 결국 마루는 외향적인 관조(觀照)의 공간이다.


인사동 마루의 설계자 에테르 쉽(Ether Ship)은 5개의 마루를 건물 곳곳에 배치했다. 그리고 길로 마루와 마루를 연결했다. 설계자는 인사동의 매력이 “골목길과 대로, 공간과 행위의 연속”에 있고 “사람들의 동선과 행위의 흐름이 끊기지 않고 다양한 공간들 속에서 참여하고 관조하고 지나치고 되새기는, 그러면서도 변형과 항상성이 존재”한다고 봤다. 그리고 그런 행위가 인사동 마루에서도 일어나기를 기대했다.(공간사, 2015, 월간 공간지, 서울: 공간사).

인사동 마루에서 마루는 다양한 행위와 이를 바라보는 빈 공간이다. 문제는 비어 있는 마루가 인접한 다른 공간과 적극적인 관계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데 있다. 건물 이곳저곳에 있는 마루로 가기 위해서는 상점을 연결하는 통로를 이용해야 한다. 여기서 통로는 인사동 골목의 치환이다. 결국 마루가 열린 공간으로써 다양한 행위를 담기 위해서는 통로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인사동 마루의 통로는 쌈지길처럼 명확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상층부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많은 통로가 미로처럼 연결돼 있어 복잡하다. 물론 인사동 골목길도 복잡하다. 그러나 골목에서 길을 잃는 것과 판매시설의 통로에서 길을 잃는 건 다른 문제다. 설계자는 통로를 “머무름보다는 지나치기 전에 내부 공간으로 유도하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솔직히 머무름과 지나침 사이의 뉘앙스(nuance)는 어렵다. 사람들에게 쌈지길이 골목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인사동을 걷듯 그냥 걸으면 되기 때문이다. 같은 측면에서 인사동 마루의 통로가 골목이 되고자 한다면 그 공간이 갖는 뉘앙스는 조금 더 쉬워야 했다.

작년 말 골목이 되고자 하는 또 하나의 건축물이 인사동에 들어섰다. 복합라이프스타일 문화공간을 지향하는 ‘안녕 인사동’이다. 13층 높이의 안녕 인사동은 저층부 판매시설과 상층부 호텔로 구성돼 있다. 판매시설 설계를 담당한 삼우설계는 인사동의 재미를 ‘걷기’로 봤다. 그리고 동쪽 인사동길에서 서쪽 우정국로로 이어지는 동선을 따라 상점들을 배치했다. 쌈지길, 인사동 마루와 마찬가지로 안녕 인사동에서도 상점을 연결하는 통로는 외부공간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인사동 내 골목을 지향한다. 안녕 인사동을 비롯해 앞으로 인사동에 들어설 건물들은 주변과 적극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골목이 되고자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사동을 걷는 보행자가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고 인식할 수 없는, 건물 안에서 다른 층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느낄 수 없는 골목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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