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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ur Jan 10. 2019

"여기 매일 오고 싶어요!!",
용인 느티나무 도서관

(2017.12.20, 방글이10세)

2018년 2월 7일, 문화체육관광부는 대통령 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와 함께 <제2차 도서관발전종합계획> 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공공도서관 68곳을 새로 짓고 장서 수를 798만 권 더 늘린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우리나라 공공도서관 수는 1106곳, 장서 수는 1억 1200만 권이 됐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매해 발표하는 <전국문화기반시설 총람>을 보면 우리나라 공공도서관 수는 매해 꾸준히 늘었다(2014년 865곳→2015년 930곳→2016년 978곳→2017년 1,010곳). 당연히 장서 수도 증가했다(인쇄 도서자료 기준, 2014년 8397만 권→2015년 8961만 권→2016년 9383만 권→2017년 9882만 권). 그런데 공공도서관 평균 이용자 수는 4년 연속 줄었고(2014년 331,813명→2015년 312,481명→2016년 288,008명→2017년 279,248명)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7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전히 성인 절반은 한 해 한 권도 읽지 않는다.

리딩테인먼트Readingtainment(Reading과 Entertainment의 합성어)의 등장으로 시민들이 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늘었다. 굳이 공공도서관이 아니더라도 코엑스몰의 별마당 도서관, 부산 아난티코브The Ananti cove의 이터널 저니Eternal Journey 처럼 책을 꽂아놓은 공공공간과 북카페Book Cafe 등이 많아졌고 최근에는 대형 서점의 변화와 동네 독립서점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움직임의 배경에는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이 지적여 보이고 이를 통해 성적인 매력을 발산할 수 있다는 사피오섹슈얼Sapio Sexual(일종의 '뇌색남'), 검색만 있고 사색이 없는 시대에 책을 통한 사색의 중요성 부각, 문자 이탈 세대의 대안으로 주목받는 글씨기를 포함한 아날로그 교육 등이 있지만 무엇보다 책을 중심으로 다양한 미디어 매체를 통해 삶의 방식을 제안한 츠타야Tsutaya 서점이 큰 역할을 했다. 여기에 츠타야 서점을 운영하는 마스다 무네아키가 기획한 다케오Takeo 시립도서관에 연 100만 명 이상이 몰리면서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책사랑'까지 더해졌다.


다케오 시립도서관의 성공에 우리나라 지자체장들이 관심을 갖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왜냐하면 다케오市의 인구가 50,000명 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사례와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도서관 중 이용자수가 가장 많은 곳은 국립중앙도서관으로 1,893,087명이다. 2017년 기준 이용자수가 100만 명이 넘는 공공도서관도 전체 1,010곳 중 41곳에 불과하다. 비슷한 인구 규모의 지자체(울진군 인구수: 51,076명)와 비교해 보면 경북도립 울진공공도서관의 이용자수는 61,034명이다. 어찌 됐든 각 지자체들은 다케오 시립도서관과 츠타야 서점을 보고 공공도서관의 신축과 리뉴얼Renewal을 진행했다. 그렇게 우리 동네 도서관도, 이웃 동네 도서관도 바뀌었다. 최근 리뉴얼된 공공도서관들 그리고 책으로 채워진 몇몇 공공공간들의 등장을 보면서 이 또한 본질이 아닌 겉모습, 하드웨어Hardware의 카피Copy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권의 책이 꽂혀 있든, 어떤 방식으로 책이 진열돼 있든 그 본질은 책의 내용을 전달하는 것인데 책의 내용이 아닌 책으로 인테리어를 한 '북테리어Bookterior'가 성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츠타야 서점과 다케오 시립도서관을 기획한 마스다 무네아키는 "서적이나 잡지는 그 한 권, 한 권이 그야말로 제안 덩어리"이기 때문에 "그런 서적을 집적한 서점이나 도서관의 이노베이션Innovation이 각지에서 진행된다는 것은 결국 각지에 지적자본을 고양할 수 있는 거점을 마련하는 것이다"라고 정의했다. 그는 츠타야 서점이 이런 '문화 인프라Culture Infra'라고 생각했고 이를 공급하는 일이 자신이 대표로 있는 Culture Convenience Club(CCC)의 존재 의의라고 봤다.

그럼 마스다 무네아키는 왜 서적을 통한 제안을 하려는 걸까? 그는 수많은 플래폼Platform이 존재하는 지금 "고객이 인정해 줄 만한 것은 '선택하는 기술'"이고 "각각의 고객에게 높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상품을 찾아 주고, 선택해 주고, 제안해 주는 사람이 써드 스테이지Third stage에서는 매우 중요한 고객 가치를 낳을 수 있으며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게 해주는 자원이다"라고 봤다. 즉, 써드 스테이지Third stage에서 사람들은 '제안'을 원하는데, 서적이나 잡지야말로 제안 덩어리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점이 사양하는 이유는 서적이 담고 있는 제안이 아닌 서적 그 자체를 팔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대안은 "서점의 매장을 고객 우선으로 생각해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지금까지 유통의 입장에서 분류해 왔던 잡지, 단행본, 문고본 등의 분류가 아니라 제안 내용에 따라 모든 형식을 재분류했다. 이를 마스나 무네아키는 '서점의 리노베이션Renovation'이라 했다《지적자본론, 마스다 무네아키, 민음사》.


그런데 그가 이야기한 서점의 리노베이션을 하려면 서적 하나하나가 담고 있는 제안의 내용을 서점의 운영자가 파악하고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래야 비슷한 제안 내용을 현 분류체계와 상관없이 재그룹핑Regrouping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부분이 책으로 채워진 공간을 만드는 본질이다. 다케오 시립도서관은 서점의 리노베이션이 적용된 공공도서관이다. CCC는 다케오 시립도서관의 책을 재분류하기 위해 1년 반의 시간을 들였다. 츠타야에는 고객에게 책을 제안해 주는 '북 컨시어지Book Conciege'가 있다. 물론 우리 공공도서관에도 사서司書는 있다. 물론 책으로 채워진 공간을 만드는 주체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문제는 그 본질을 실행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1년 이상의 시간을 투자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책의 내용을 파악하는 일도 쉽지 않은데, 그 내용을 고객이 원하는 제안에 맞게 재구성한다는 일은 솔직히 티 안나는 일이다. 그러니 이런 본질을 빼고 눈에 보이는 모습이라도 비슷하게 -이는 티 나는 일이니까- 책을 진열해 놓는다. 책이 진열된 공간을 찾는 사람들도 자신에게 필요한 제안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SNS에 올리기 위한 인증샷을 찍기 위해 이런 공간들을 찾는다. 물론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여러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한 지자체에서는 '시민의 지식서재'라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데, '시민이 원하는 주제'라는 기준으로 책을 재분류해보려는 시도다. 시민참여라는 측면에서는 박수를 보내고 싶지만 책의 제안은 운영주체가 직접 해야 강력하다. 아마도 이런 측면에서 최근 독립서점, 동네서점이 주목받고 있지 않나 싶다.

2017년의 마지막 날 책을 통한 제안을 제대로 하고 있는 도서관을 발견했다. 크지 않은, 정말 동네 도서관이다. 일단 도서관 구석구석에 꽂혀 있는 책들도 도서관의 일반적인 분류 기준인 KDC(한국십진분류법)를 따르고 있지 않다. 그래서 어떤 책장 구석에는 '분류난감'이라는 분류 기준도 있다. 이 도서관에서 백미는 가운데 놓인 책들이다. 도서관 운영진이 정한 주제에 따라 모여있는 책들의 분류 기준을 보면 -내가 방문했을 때- '결혼하지 않고 가족을 구성할 권리',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인공지능은 더 이상 SF가 아니다' 등이다. 나한테 특히 와 닿았던 분류 기준은 '기본소득, 복지에서 권리로'였다. 방문 당시 직업의 소멸과 함께 '기본소득'에 대해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난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뤼트허르 브레흐만Rutger Bregman, 김영사》라는 책을 알게 됐다. 가장 센스 넘치는 코너Corner는 '툭'이다. '툭'의 분류 기준은 '서가에 꽂으면 툭! 튀어나오는 키 큰 책들'이다. '오늘 반납된 책'이라는 코너도 인상적이다. 이 코너는 단순히 반납 시기에 따른 분류가 아닌 최근 반납된 책들을 통해 이웃들이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알아보자는 도서관 운영자의 청유다. 책을 통해 커뮤니티 간의 공감대 형성을 유도해보려는 시도다.

이 위대한 도서관은 바로 '용인 느티나무 도서관'이다. 2007년 11월 17일에 준공된 이 도서관은 앞서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의 평균 이용자 수가 4년 연속 감소했던 것과 달리 2014년 이후 3년 연속 증가했다(2014년 70,131명 → 2015년 85,994명 → 2016년 99,487명). 물론 2017년에는 87,365명으로 감소했다. 이 보다 내가 더 주목한 수치는 2017년 증가한 도서자료 3,231권 이다. 용인 느티나무 도서관이 앞서 언급한 자신들이 정한 기준으로 책을 재분류하려면 결국 2017년에 들어온 3,231권을 전부는 아니더라도 상당 부분 봤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럼 도대체 이 도서관의 운영주체는 누구일까? 용인 느티나무도서관의 운영주체는 비영리공익법인 '느티나무도서관재단'이다. 느티나무도서관재단의 전신은 2003년 설립된 '느티나무문화재단'이다. 그리고 '느티나무문화재단'의 시작은 2000년 2월 19일 용인시 수지 현대성우아파트 지하상가를 매입해 개관한 사립문고 '느티나무어린이도서관'이다. 도서관을 만든 이는 박영숙으로 자신의 사재를 털어 3,000권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 박영숙은 느티나무도서관 관장이자 이사장이다. 설립 동기는 "대학시절 빈민촌에서 어린이 공부방을 운영하면서 책이 있는 공간의 소중함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에도 그녀는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의 학년과 관심 분야에 맞춰 책을 추천해 주었다고 한다([수도권]용인 수지에 어린이도서관 연 박영숙씨, 2002.10.13, 동아일보).


재단 홈페이지에 밝히고 있는 '미션Mission과 가치'는 정말 멋있다. 재단은 "누구나 꿈꿀 권리를 누리는 세상! 도서관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라는 미션과 "도서관은 공공성의 마지막 보루이고 '가르치지 않아서' 더 큰 배움터이며, 만남, 소통 어울림의 커뮤니티"라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도서관 '서비스헌장'은 쿨Cool하다. 가장 공감하고 싶은 쿨함은 "이용자를 '왕'처럼 모시지는 않겠습니다""'음식물 반입금지'나 '정숙' 같은 규칙을 내걸진 않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분명하게 알리겠습니다"이다. 2005년 3월 재단은 새 도서관 건립을 위해 기금 모금을 시작했다. 이듬해 9월 건축사무소 도움채에서 도서관건축 자문을 받고 11월 대지를 매입했다. 설계는 민병운&POS A.C.건축에게 맡겼다. 2007년 4월 25일 착공된 새 도서관은 11월 준공됐다. 

도서관이 지어진 대지는 2003년 12월 31일 준공된 <용인동천지구 택지개발사업>으로 조성됐다. 대지는 지금도 점포겸용 단독주택용지로 지정돼 있다. 대지 동쪽으로 그랜드백화점 물류센터를 비롯한 유통시설들이 밀집돼 있지만 이를 제외하면 반경 500m 이내에 초중고 4곳을 포함한 주거지역이다. 도서관과 인접해서는 북쪽으로 손곡중학교와 동천체육공원이 바로 붙어 있다. 현재도 이 일대에는 몇 곳의 작은도서관 밖에 없다. 유종필(2018년 기준 관악구청장)은 용인 느티나무도서관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로 '입지'를 꼽았다. "(박 관장은) 현재의 위치에서 500m만 뒤로 가면 총비용을 1/3로 줄일 수 있고, 조금 더 가서 뒷산 밑으로 가면 1/5로 줄일 수 있었는데도 많은 비용을 무릅쓰고 현 위치를 택했다고 했다. 이것은 박 관장이 도서관의 핵심적 요소인 접근성을 간파한 것이다. 아무리 건물을 잘 지어놓아도 이용자가 적다면 훌륭한 건물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세계도서관 기행, 유종필, 웅진지식하우스》." 공공도서관을 포함해 공공시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언급하는 내용이 바로 '입지'다. 공공이 쉽게 이용하라고 만드는 시설인데 공공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대지에 지어지는 상황. 아이러니Irony해 보이지만 사실 아주 간단한 원인으로 벌어지는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그 상황이 계속 반복된다는 것. 용인 느티나무도서관은 이 당연한(?) 상황의 부정에서부터 새로운 도서관의 입지를 결정했다. 그런데 재단의 비전 중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꿈Dream을 보면 그 결정이 오히려 당연했다고 보인다. 재단은 "마을마다 도서관이 만들어져 모든 도서관이 삶터 속으로 가까워지고 도서관문화로 일상의 삶이 달라지기를" 꿈꾸고 있다. 재단은 비전 달성의 시작이 마을 안에 있는 도서관임을 알고 있었다.


서현은 "권력과 지식이 빚어내는 애증의 역사는 길고도 길다. 이 땅에서도 지식은 소중하면서 위험한 것이었다. 책은 권력을 쥔 제한된 소수의 소유였다"라고 했다. 그래서 "책을 담은 건물이 이를 표현해야 했으니 전면에 열주와 계단이 근엄하게 들어서 있는 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도서관의 전형이 되었다"라고 썼다《빨간 도시, 서현, 효형출판》. 하지만 현재 지식은 위험하지도 않고 그것이 빚어낸 애증의 역사도 더 이상 없다. 오히려 현재 우리에게 지식을 담은 책은 누구나 접근 가능한 매체다. 용인 느티나무도서관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공공도서관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며 책으로 채워진 공간이 무엇을 전달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정말 제대로 된 도서관을 접하게 해 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 무렵 방글이가 말을 걸어왔다.

"아빠! 나 여기 매일 올래요."

"응? 우리집은 여기서 먼데. 왜? 여기가 좋아? 크기는 우리집 근처 도서관이 더 크잖아."

"그런데 우리집 근처에는 이런 곳도 없고 저런 곳도 없잖아요."

방글이는 느티나무 도서관 이곳저곳에 있는 열람 공간을 가리켰다. 모두 구석져 있지만 아늑하고 조용해 마치 자기만의 아지트 같은 장소였다. 방글이 나이대 아이들은 자기만의 공간을 꿈꾼다. 이곳의 열람 공간들이 그런 느낌이었다. 새로운 주제로 책을 분류하는 것이 어른들을 위한 느티나무 도서관의 제안이라면 이 선택 가능한 구석들은 아이들을 위한 제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계자: 민병운&POSCO A&C(2007)

주소: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수풍로116번길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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