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예울마루, 여수
모든 건축물은 두 가지 시선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바깥에서 건축물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건축물은 주변 환경과 함께 풍경을 이룬다. 다른 하나는 건축물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건축물은 공원뷰, 바다뷰, 시티뷰, 벽뷰와 같은 ‘ㅇㅇ뷰(view)’를 바라보는 조망지점이 된다. 한 도시를 대표하는 건축물은 시민 모두가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 지어지기 때문에 전자의 시선을 더 비중 있게 고려한다. 건축물의 형태도 눈에 잘 뜨일 수 있도록 상징적으로 설계된다.
도시가 바닷가에 면해 있으면 실제로는 바다를 통해 도시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지 않더라도 바다에서 봤을 때 건축물이 잘 드러날 수 있는 자리에 특이한 형태로 짓는다. 부산시의 ‘영화의 전당’이나 통영시의 ‘통영국제음악당’이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바다에 면한 여수시를 대표하는 문화예술시설인 ‘여수 예울마루’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예술의 너울이 넘실대는 마루”라는 뜻의 ‘예울마루’는 여수국가산업단지 내 가장 큰 공장을 운영하는 한 정유 회사의 지역사회 환원 사업으로 지어졌다. 예울마루는 ‘망마’와 ‘장도’로 나뉘는데 2012년 5월 10일 여수세계박람회에 맞춰 ‘망마’가 먼저 준공됐다. ‘망마’는 망마산 남서쪽에 있는데 바깥에서 망마를 바라보면 산기슭에 설치된 125m 길이의 유리 지붕과 그 아래 계단만 보인다. 그래서 얼핏 보면 건축물처럼 보이지 않는다. 기본설계를 맡은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Dominique Perrault)는 예울마루 망마를 ‘유리의 강(Glass river)’이라고 불렀다. ‘유리의 강’은 건축물의 역동적인 흐름이 여수 앞바다로 나아가는 형태를 상징한다.
땅을 건물의 네 옆면과 지붕에 이어 여섯 번째 면(面)이라고 생각하는 도미니크 페로는 건물 주변의 풍경과 조화를 이루고 망마산의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대극장(1,021석)과 소극장(302석) 그리고 3개의 전시실을 모두 땅속에 묻었다. 동시에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친환경 건축물로 설계했는데, 이는 예울마루를 지은 기업이 추구하는 미래 이미지와도 부합된다.
예울마루 망마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면 건물 앞에 있는 장도와 더 멀리 바다 위 섬들이 보인다. 끊길 듯 이어지며 바닷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여수의 땅은 장도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데 그래서 장도 주변의 바다는 호수 같다. 망마에서 장도를 바라보면 유리 지붕을 지지하는 ‘ㅠ’자 형태의 구조체는 호수 같은 바다와 그 가운데에 떠 있는 장도를 담는 프레임(frame)이 된다. 건축가는 이 프레임이 가능한 가볍게 보일 수 있도록 기둥 아래를 더 가늘게 그리고 그 위에 보(beam)의 가운데와 양쪽을 얇게 만들었다.
예울마루 망마가 준공되고 정확히 7년이 지난 2019년 5월 10일, 예울마루 장도가 준공됐다. 처음에는 2017년 11월에 준공될 예정이었지만 장도에서 청동기 시대 집터와 유물, 삼국시대 타날문토기, 조선시대 자기 파편이 발견되면서 사업이 지연됐다.
섬은 남북으로 길게 생겨서 ‘진섬’으로 불리다가 한자 지명을 사용하면서 ‘장도(長島)’로 바뀌었다. ‘진섬’이라는 섬의 원래 이름은 현재 두 시설을 연결하는 ‘진섬다리’에 남아 있다. 장도와 그 서쪽에 있는 가덕도는 뭍 앞에 전진 배치된 함선 같다. 과거 조상들은 두 섬과 그 안쪽으로 움푹 들어간 해안선을 이용해 적에 노출되지 않는 자리에서 군선을 만들었다. 이순신 장군이 배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던 나대용에게 거북선을 만들도록 한 선소유적도 이곳에 있다.
장도에서 망마와 마주 보고 있는 섬 북쪽에는 다단식 정원으로 조성된 다도해정원이, 그리고 그 반대편 바다를 바라보는 섬 남쪽에는 카페, 교육실 등을 갖춘 전시관이 배치돼 있다. 그리고 작가 숙소와 작가 커뮤니티룸 그리고 안내센터 다섯 동으로 이루어진 창작 스튜디오는 종이를 접어 만든 것 같은 형태로 서쪽 해안가에 있다.
장도에서도 규모가 가장 큰 시설인 전시관은 땅속에 있다. 바깥에서 보이는 전시관의 모습은 입구로 내려가는 곧은 경사로와 그 끝에 있는 단순한 육면체 그리고 그 위의 하늘뿐이다. 경사로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반대편 입구와 창을 통해 바다가 보인다. 들어온 방향의 반대로 건물 밖으로 나오면 경사로 끝에 작은 녹지와 다시 하늘이 보인다. 전시관은 하늘과 바다 사이에 놓인 가느다란 ‘선(線)’ 같은 건물이다.
예울마루 망마에서 장도를 바라보듯이 이번에는 장도에서 망마를 바라보면 유리 지붕과 그 배경으로 펼쳐진 망마산 그리고 더 넓게는 산 주변의 여수 시가지가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기존의 자연을 변형해 새로운 자연을 만들기보다 기존 자연 속에 건물을 채워 넣어 자연을 살리는 건축을 추구해 온 도미니크 페로의 지론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페로는 여수 예울마루뿐만 아니라 서울의 이화여자대학교 ECC 그리고 삼성역 주변 강남권 광역복합환승센터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지하공간 설계의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은 페로를 ‘땅을 재단하는 건축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부분의 시설이 땅속으로 들어가 있는 예울마루는 주변 풍경에 녹아들어 주변 자연을 더 도드라져 보이도록 만드는 건축물이다. 동시에 예울마루의 망마와 장도는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새로운 지형(地形)이기도 하다. 상대가 놓인 자리를 서로 바라보는 상황만큼 서로의 입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관계는 없다. 문제는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만큼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도 없다. 장도의 다도해정원이 조성되면서 망마와 마주 보고 있는 풍경이 급격히 변한 상황은 조금 아쉽다. 서로 바라보는 관계의 완성은 마땅히 바라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아직은 주변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다도해정원이 원래부터 있었던 지형처럼 자리잡기를 기다려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