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혜임 Jan 11. 2022

아빠의 편지

나의 힘과 위안이 되는 아빠의 사랑

    결혼식이 끝나고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친정집에 처음으로 갔던 날이었다. 1층에서 남편과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저 멀리서 아빠가 걸어오고 계셨다. 그렇게 남편과 아빠는 처음으로 단둘이 어색한 인사를 하며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다.

         아빠는 남편을 결혼식날 처음 봤다. 아빠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상견례에 나오지 못하셨다. 아빠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 결혼하고 싶다는 얘기만 듣고 결혼을 허락했다. 물론 내가 나이가 들어 늦게 결혼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딸이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말만 믿고 얼굴도 보지 않고 간단한 얘기만 듣고 기뻐하면서 결혼을 허락해주셨다.

       아빠는 결혼식날 처음 본 사위와 엘리베이터에서 앞에서 마주쳐서 딸과 같이 어색한 침묵 속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결혼식날은 정신이 없이 인사만 했기 때문에 아빠와 남편은 처음으로 둘이 마주 보고 얘기를 나누는 상황이 되었다. 우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아빠가 침묵을 깨고 나한테 아침에 일어나서 꼭 남편 아침 잘 차려주라고 했다. 아빠는 아침잠이 많아서 아침 먹는 것을 귀찮아하는 딸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사위에게 딸이 밥을 안 차려 주면 밥을 차리라고 소리 지르라고 했다. 그리고 나한테 너는 남편이 말하면 군소리 없이 차려주라 했다. 물론 내가 아침에 늦게 일어나고 밥을 잘 안 챙겨 먹긴 하지만 나의 아빠인데 남편 편을 드는 듯한 말에 살짝 서운했다. 아빠는 그리고 나한테 남편한테 함부로 화내지 말고 잘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남편한테 얘가 화가 나면 생각 없이 말을 한다면서 이해하라고 했다. 남편 앞에서 왠지 나의 단점을 얘기하는 거 같아서 그 순간도 결국 아빠한테 나는 그러지 않는다면서 벌컥 화를 내었고 당황한 남편도 그러지 않는다고 내 편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13층에 도착하고 우리의 어색한 첫 번째 대화가 끝나고 집에 도착했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알았다. 아빠가 우리한테 한 말들이 철없고기쎈 딸과 나이어린 사위를 향한 아빠의 진심 어린 사랑의 조언이었다는 것을…

        결혼한 지 벌써 7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아빠의 예견대로 나는 늦게 일어나서 남편의 아침을 챙겨주지 못한 적도 있고 화가 나서 생각 없이 얘기해서 남편과 싸우기도 많이 했다. 캐나다에 이민 와서 처음으로 남편과 사소한 걸로 싸우면서 남편한테 생각 없이 얘기하지 말라고 야단맞은 날 많이 울었다. 남편과 싸운 것보다 예전에 부모님이 같은 말을 했을 때 듣지 않고 화를 냈던 나의 모습이 후회되고 나를 사랑해서 고쳐주고자 했던 부모님의 마음을 알게 되어 더 울었다. 부모님의 잔소리라 생각했던 말을 남편에게 들으니 그것이 자식을 향한 부모의 진심 어린 사랑의 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결혼 후 처음으로 집에 가서 남편과 인사했던 그날 아빠는 나와 남편에게 이쁜 편지지에 직접 쓴 편지를 주셨다. 집에 돌아와서 편지를 읽으며 울고 웃었다. 70살이 넘은 할아버지가 딸과 사위를 위해서 아이들이 가는 문구점에 가서 꽃 그림이 그려진 편지지를 사 오는 모습을 생각하며 웃었고 돋보기를 쓰고 한 글자 한 글자 아빠의 마음을 담아 쓴 내용을 읽으며 새삼 큰 사랑에 감동하며 울었다. 아빠는 언제나 나에게 편지를 많이 써주셨다. 엄마랑 싸우고 방에서 안 나올 때도 아빠는 편지로 내 마음을 달래주었다. 펜을 들 힘조차 없이 병상에 누워있었던 그때에도 외국에 있어서 만나지 못하는 딸과 사위에게 사랑한다는 마지막 편지를 쓰신 뒤 정신을 잃고 중환자실로 들어가셨다고 한다. 이제는 더 이상 아빠의 편지를 받을 수 없지만 가끔 아빠가 생각나고 힘들 때면 아빠가 준 편지를 읽는다. 아빠의 글자체만 봐도 반갑고 사랑하는 우리 공주라는 단어만 봐도 아빠가 목소리가 옆에서 들리는 것 같아 좋다.

         그렇게 힘들 때면 아빠의 편지를 읽으면서 기운을 낸다. 그리고 아빠가 나한테 항상 얘기했던 것처럼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 아빠는 한번도 공부 열심히 하라는 소리도 하지 않고 언제나 내가 건강하게 즐겁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하셨다. 아빠의 편지를 읽으면서 나는 오늘도 마음을 다시 잡는다. 아빠의 말대로 힘들어도 참고 견디며 겸손히 배우고 가족을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 사랑하는 아빠가 하늘나라에서 기뻐하면서 나를 바라볼  있도록... 그리고 아빠를 다시 만나서 아빠랑 약속한 대로  열심히 즐겁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얘기할 것이다.



사랑하는 우리 공주.

너를 낳은 지가 벌써 3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구나.

참으로 너무 빨리 지났구나.

사랑하는 딸, 아빠의 마음이 허전하면서 행복하구나.

그동안 아빠는 너의 손을 잡고 딴따라, 딴따라

음악 소리를 언제쯤 들어볼까 많이 조마조마하면서 살았단다.

그런데 늦게나마 아빠 마음을 아니 소원을 풀어줘서 고마우면서 밉다...

사랑하는 딸아 너를 붙잡고 한발 한발 걸어가면서

절대로 울지 않으려고 입을 꽉 물고 걸었는데,

너를 안고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자

나도 모르게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단다.

사랑하는 우리 딸,

아빠, 엄마는 하루도 아니 잠시도 너를 잊지 못한단다.

아빠와 엄마가 집에 와서 한참을 울었단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우리 공주,

앞으로는 살아가면서 엄마, 아빠 눈물을 보이지 않게 살아다오.

사랑하는 우리 공주,

이제는 엄마 아빠 곁을 떠나 너희들만의 보금자리가 만들어졌구나.

사랑하는 딸, 잘살아야 한다. 행복하게!

앞으로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다가와도 참고 또 참고 이겨나가야 한다.

참고 견디면 반드시 좋은 날이 돌아온다.

사랑하는 딸아 아빠는 너에 대한 걱정이 있단다.

말을 생각나는 대로 하는 걸 제일 걱정된다.

화가 나서 한마다 말을 할 때는 꾹 참고 또 참고 생각을 하면서 말을 해다오.

우리 공주는 아빠 유전자를 받았기 때문에 아빠 성격과 똑같다.

사랑하는 딸아,

세상은 크나큰 학교란다.

배우면서 살아다오.

사랑하는 딸아,

둘만의 행복도 좋지만

시댁에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와 온 가족이 화목해야 딸이 사랑을 많이 받는다.

딸이 잘못해서 욕을 먹게 되면 엄마, 아빠가 욕을 먹는다. 알았지?

사랑하는 우리 공주,

너는 잘하리라 믿는다.

행복하게 잘 살아라.

사랑하는 우리 공주!

두서없는 글 고쳐가면서 읽어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