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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아 Jul 14. 2023

여행자가 된 것처럼

언니에게 보내는 열여섯 번째 편지

고생한 게 아깝지 않게 너무 아늑한 공간이다 언니! 집 랜선투어 시켜줘서 고마워~ 언니 편지 보니까 몇 달 전 내 이삿날 생각나서 그맘때쯤의 설렘이 생각나기도 하고 벌써 집 같은 이곳이 새삼스럽기도 하고 그래. 언니의 새 보금자리에서 더 많은 행복과 추억을 쌓을 수 있길 바랄게!

난 이번 주에 뉴욕 나가는 게 목표였는데, 어제 정말 눈 뜨자마자 긴 외출을 감행했어. 지하철, 버스를 오가며 무려 하루동안 만 보나 걸었어! 내가 앞서 말했듯이 나는 미국 대도시의 대중교통은 이용한 경험이 많이 없어. 한국이었으면 쉽게 택시나 버스를 탔겠지만, 뉴욕의 도로 특성상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지하철이라 내게 선택권이 많이 없었어. 뉴욕 지하철은 한국보다 훨씬 복잡하고 불친절해서 꽤 긴장했던 것 같아. 근데 그게 오히려 대수롭지 않게 지나칠 수 있는 많은 순간을 더 확실히 느껴볼 수 있게 해줬어.


애플페이로 결제가 가능한 지하철 패스,

열차 사이가 좁은 승강장 구조 그리고 출구로 나올 땐 티켓 확인이 별도로 할 필요가 없는 쿨함까지

내가 가진 오감을 모두 살려 지하철 경험을 했어. (지하철이 뭐라고!)


근데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 한국을 방문한 외국 관광객이 김밥천국 앞에서 기념샷을 찍는 것도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한 부분이 누군가에겐 '여행'이기 때문이겠지?


누군가가 삶을 여행자가 된 것처럼 살아보라 그러더라, 그러면 놓치고 있는 것들을 보게 된다고. 진정한 의미의 여행자로 산다는 건 매일 특별한 곳을 가고 매번 새로운 것만 하는 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아. 지하철로 시작했던 하루는 내가 도시 속을 걸을 때 조금 더 작은 순간들에 많이 집중하게 만들어줬어.


랜드마크는 없어. 하지만 귀여운 순간들이야


나는 새로운 경험과 자극을 사랑하는 사람이야. 장점은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삶이 정체되 있게 내버려 두지 않는 단거야. 그렇게 하루를 주체적으로 채워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비로소 내가 잘 살고 있구나 싶기도 해. 반대로 단점은, 항상 마음속 어딘가엔 지금보다 더 나은 ‘유토피아’가 있다고 믿고 눈앞에 놓인 순간에 만족하는 법을 잘 모른다는 것일지도.


내가 놓치고 있던 소소한 일상 속 충만감은 어떤 걸까


언뜻 비슷해 보이는 하루하루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일 같은 날은 없는 게 맞는 거 같아. 우리 매일을 '특별한 일'로 채우려 노력 안 해도 반복되는 일상 속 특별함을 찾고 감사하는 법을 배워 가자, 여행하듯이!


또 편지할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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