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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봄날 Jul 12. 2019

이제 우리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구나

큰 딸이 결혼을 하고...

이제 돌아오지 않는구나



남들보다 일찍 친정엄마가 되었다. 졸업한 해에 결혼을 해서 친구들 중 가장 먼저 엄마가 되었고 딸도 빨리 취업하고 이듬해 결혼했으니 50에 친정엄마가 되었다.


딸의 연애를 지켜보는 것은 행복했다. 어릴 때부터 시시콜콜 자신의 이야기를 잘하던 큰 딸은 지금도 마음 깊숙한 이야기도 내게 잘 털어놓는다. 그런 딸이 알콩달콩 연애를 하는 동안 지켜보는 나도 연애하는 기분이었다. 사위는 다정하고 속이 깊은 사람이어서 만나기 전부터 호감이었다. 나이 차이가 있는지라 아이가 졸업을 하기도 전에 결혼에 대해 이야기가 오가기에 내가 먼저 만나보았다. 반듯하게 자란 좋은 청년이었다.

주변에서는 아직 어린데 더 좋은 상대가 나타날 수도 있지 않냐는 조언도 제법 있었다. 어떤 면이 더 좋다면 어떤 면은 더 좋지 않을 수도 있다. 현재 둘이 좋다니 그걸로 됐다. 하지만 다들 만혼인 세상에 딸이 일찍 결혼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다른 기회를 잃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도 대학원 때 결혼을 해서 중간에 휴학을 하고 아이를 낳고 졸업을 했지만, 이후 직장생활 2년 만에 그만두었다. 육아와 일의 병행은 쉽지 않았다. 그때는 다들 결혼하면 직장을 그만두던 때라 쉽게 포기를 했지만 나보다 똑똑한 딸이 좋은 직장에 이제 막 취직했는데 결혼으로 딸의 미래가 불확실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가 찬 사위 쪽에서는 결혼을 하길 원했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은 막막했다. 난 맏이에 맏며느리이고 친한 선배나 동네 언니도 없다. 어떤 식으로 진행하는지도 모르겠고 수준도 트렌드도 몰랐다. 주변에 결혼시키는 사람이 있어야 듣는 이야기라도 있는 게 아닌가.


다행히 품이 넓으신 사돈어른들과 현명한 사위 덕에 무리 없이 결혼을 시킬 수 있었다. 딸은 친구 중 제일 먼저 결혼을 하는 거라 전혀 정보나 비교대상이 없었다. 살림살이에도 관심이 없어서 나중에는 사위와 내가 의논해서 골랐다. 그 정도로 결혼에 무지한 아이가 결혼을 했다.


아이들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올 즈음, 남편은 아이들 집에 가서 청소랑 식사 준비를 좀 해주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지만 밑반찬과 남은 짐만 넣어주고 그냥 두었다. 신혼 때 시집에서 7년을 살았던 나는 둘만의 과정이 더 즐거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난 딸의 많은 것을 도와주며 살았었지만 이제 그 집은 ‘딸의 집’이 아니라 ‘딸과 사위의 집’이니 맘껏 드나들 수 있는 곳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아이들이 저희 집에서 보낸 후 첫 출근길에 딸이 전화를 했다. 크면서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도 내게 많은 속 깊은 이야기까지도 하던 딸이랑 정말 오랜만에 하는 통화였다. 아이는 정말 행복한 것 같았다.


‘아~~  출근할 때 내게 전화 하나보다.’


며칠이 지나서야 전화가 왔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다 알 정도로 바쁜 회사에 다니는 딸이라 그 전에도 아이가 전화할 때가 아니면 내가 전화하는 일은 적었다. 전화는 가끔 오고, 2주에 한 번 정도 사위와 함께 밖에서 만나 식사를 했다.

언제나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다녀왔습니다~~” 하며 들어오던 그 아이는 밤이 되어도 우리 집으로 오지 않고, 다음 날도 오지 않고, 이제 자기 집으로 간다.


결혼식 날에도 울지 않았는데

결혼을 시키고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밤.

일을 마치고 운전을 하며 돌아오는 길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 멀지 않은 길인데 나중엔 통곡이 되었다.


머리로는 아이를 떠나보냈지만 마음이 보내지지 않았던 것 같다.

이제 아이는 손님처럼 우리 집에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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