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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야 Nov 04. 2019

서울 사는 것도 스펙이라던데

두 번째, 서울살이 이야기

나의 서울살이는 나름 순항이었다. 사실 입사하자마자 너무나 바빠서 매일 밤 10시까지 야근을 했고, 주말 출근하는 일도 있었기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아닌지 돌아볼 겨를이 없었던 게 사실이긴 하다. 그랬기에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고시원 작은 내 방은 내 휴식처 역할을 잘 수행해 주고 있었다. 제대로 요리해 먹을 주방은 없었지만 매일 고시원 주인아주머니가 해 놓으시는 반찬은 꽤 만족스러웠고, 옆방의 소리가 너무 잘 들리긴 했지만 대체로 조용했기에 참을 만했고, 방이 좁긴 했지만 내가 더 작아서 괜찮았다. 불편하긴 해도 불만은 없었다.     




고시원에서 지낸 지 두 달 정도 되었을 무렵 확실히 방이 좁긴 좁구나 싶었다. 들여놓는 물건이 점점 늘어나자 물건을 놔둘 공간이 부족해진 탓이었다. 특히 방 한쪽에 TV 받침대 겸 책상으로 놓여 있는 작은 테이블이 있었는데, 그림 작업을 위해 노트북과 타블렛을 동시에 사용하는 나에게는 그 테이블이 좁았다. 상대적으로 TV를 덜 사용하니 고시원 주인아저씨에게 TV를 방에서 빼고 싶다고 하자 아저씨는 TV를 빼기 위해 방으로 왔다.     


아저씨는 좁은 방에서 끙끙거리며 TV선을 모두 뽑으며 나에게 지낼만하냐는 질문을 했다. 지낼만하다는 나의 말에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다.     


“나중에 아빠, 엄마한테 이렇게 말해요. 왜 서울에 안 살고 대구에 살아서 이렇게 고시원에 살게 하느냐고.”     


그저 고시원에서 직장 다니는 내 모습이 안타까워 건넨 말이었겠지만, 그 말이 내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불쾌하면서도 묘하게 공감하고 싶은 이상한 기분. 나는 그간 한 번도 부모님에게 처지를 원망해 본 적 없었다.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와 정착하기까지 본인들 역시 고단한 삶을 살았을 것이고, 그 와중에 자식 낳고 키우느라 고생했을 것이 안 봐도 눈에 선했다. 부모님은 나름의 노력으로 여기까지 온 거니까 원망하지 않았다. 그럴 시간에 어떻게 하면 내가 스스로 해 나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게 먼저였다.     




내가 서울에 올라올 때쯤엔 ‘서울에 사는 것도 스펙이다.’라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았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서울에 살지 않아서 별생각 없었는데, 막상 서울에서 두 달 정도 살아보니 그 말이 피부에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졌다. 일단 본가가 서울에 있다면 본가에서 직장을 다닐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월세 32만 원 정도를 아낄 수 있었다. 내 월급의 4분의 1 정도를 아끼는 셈이었는데, 그 돈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투자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서울에 오면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기며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월급을 타면 월세며 교통비며 월급은 통장에서 나가기 바빴다. 그러니 서울에 온 두 달 동안 문화생활의 ‘문’자도 꺼낼 겨를이 없었다. 바쁜 일상에 모른 척 넘어가 버렸지만, 그런 실망감이 내 안에 쌓여 ‘서울에 사는 것도 스펙이다.’라는 말에 묘하게 공감하게 만든 것 같다.     


고시원 주인아저씨에게 그 말은 들은 날 처음으로 ‘아빠, 엄마가 서울에 정 했었으면···.’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 봤다. 물론 너무 부질없어서 금방 잊어버리려 했었지만, 서울살이의 고단함을 조금 느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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