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사진이다. 우영이 녀석이 필름 카메라로 찍어줬는데, 항상 아이폰 앨범에는 날짜가 가장 최신으로 남겨져 있다. 2336698년 7월 28일 자 사진이다. 가끔은 이런 오류도 추억을 상기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게 신비로울 따름이다. 약 4년 전 인턴 시절 끝나고 살짝 여유 있을 때 방문했던 아모멘토에서의 사진이었다. 차 브랜드 팝업이었고, 고요한 분위기에 햇빛이 창문을 통해 쏟아지고 있었고, 예쁜 컵과 식기가 빛이 나고 있었다.
뉴스에서 또다시 알프스산맥의 눈이 녹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2017년 3월 5일 잘츠부르크에서 보았던 알프스가 기억이 났다. 뉴스의 할아버지는 자기 손자들에게 재앙을 물려준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름다웠던 풍경은 지금 5년이 넘게 지난 후 가물가물해졌지만, 사진의 영속성은 날 또 한 번 그때의 그 장소의 기억으로 불렀다.
많은 여행을 다녔었다. 5년 전 자기소개서의 단골 멘트는 '12개국 41개 도시를 여행하면서 느낀 경험'이었다. 국경을 넘나들며 여권에 도장 찍는 것이 내 훈장이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구시가지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분위기에 취하는 오글거리는 사람이었는데, 어느새 사회인이 되어 매 주를 치열하게 살아갈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저 이국적인 풍경이 좋았을 뿐이었다.
'여행'은 내 취미 중에 하나였다. 태생이 가만히 못 있던 사람이라, 교환학생으로 있었던 그때는 주말에 어디로 여행갈까를 고민했었다. 그때는 계획적인 사람이 못됐었던지라, 무작정 10유로 버스에 올라탔던 적도 많았다. 이상한 카풀 앱으로 아우토반을 타 본 기억도 있고, 로마에서는 오지 않는 열차를 5시간 넘게 기다린 적도 있다. 지나고 보면 다 좋았다는 생각이 드는 추억의 마법이 있는지, 뇌가 속이는 것을 알면서도 옛 사진을 뒤지게 된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변한 삶에서 포기할 것이 많아져 그때로 돌아가기 힘들다는 것을 말이다. 벌이가 나아져도, 지식과 나잇살의 경험이 많아져도, 그때의 그 감정을 되돌이켜 여행이 취미라는 패기를 되살릴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내심 만족하는 것은, 그때의 그 기억이 있다는 것. 영속적인 사진이 남아 계속해서 왜곡된 행복, 또는 행복이라는 감정을 계속해서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조금은 속이는 것일지 몰라도 말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여행은 사상적 취미라고도 볼 수 있겠다. 어떻게 보면, 힘든 일들이 더 많았을지도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되돌이키면 좋아지는, 현실과 동떨어져 낭만을 지속해주는 취미. 이 사실을 지각하고도 이 지독한 취미를 계획하는 것은, 이것만큼 낭만적인 것이 없음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