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나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만, 인간은 역시나 사회적 존재이다. 30이라는 나이는 여간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 아직까지 집이 회사와 가깝다는 핑계로, 월세나 전세가 비용이 많이 든다는 핑계를 들어 여전히 집에 살고 있다.
물론 낭만을 꿈꿔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름 내 공간을 채우고자 하는 욕망을 실현하고자 노력을 하고 있다. 열심히 자원을 모으고, 미리 예행연습을 진행한다. 코로나 기간에 진행된 대체적 공간의 실현인 홈 오피스 꾸리기는 이와 일맥 상통하는 바가 있다.
매해, 이맘때쯤이면 항상 생각하는 것. "반년이 지났는데 생각보다 변화를 이룩한 것은 없구나."이다.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진전은 아주 조용하고 천천히 이뤄진다. 타인의 삶을 반추하면 인생이 더욱 초라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 나에게는 가족과 그리고 내가 일을 도모할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한다.
최대한 안락한 의자, 그리고 이전에 상상하던 기기들과 가구를 하나둘씩 꾸리면서 욕망은 현실화가 되기도 한다. 허먼밀러의 에어론 체어는 건강을 핑계로 구입했지만, 이만큼 더 큰 만족을 주는 가구 구매는 없었기도 했다. 이런 현실화가 더해지면서 더 넓은 곳으로 이동하고, 내가 생각하는 작업 공간이 갖춰지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려면 조금 더 열심히 살아야 함은 전제 조건이 되겠다.
내 공간을 상상하며 타인의 공간을 레퍼런스 삼는 것은 상당히 재밌는 과정이다. 그래서인지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기반으로 한 인테리어 매거진인 '아파르토멘토'를 좋아한다.
매번 영문 저널을 띄워서 보기도 하고, 심심할 때는 간행지를 띄엄띄엄 구매하기도 한다. 여전히 영문 읽기는 학부 때나 지금이나 나아지지 않고 있지만, 조금씩의 진전은 보이는 듯하여 기분은 조금 괜찮다. 들뜬 목표는 가라앉고 다시금 낭만을 이야기해야 남은 이번 연도를 잘 살았다는 보람찬 느낌을 얻을 수 있겠다 싶다. 요즘은 '레질리언스'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을 맴돈다.
레질리언스는 탄력성 회복력 등을 의미하는 용어로 인문사회적으로는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힘과 가능성을 의미한다고 한다. 보다 빠르게 회전하는 세상에서의 즉각적인 피드백과 예측 불가능한 역경들은 개개인들을 좀 더 강하게 밀어붙인다.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 자세나 혹은 빠르게 무너지고 다시 빠르게 만들어 내는 능력이 더더욱 중요해진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조금 더 난장판이 된 세상에서 더 잘 버티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신적 레질리언스를 키워야 한다. 빠르게 돌아가는 판에서 적응하여 살아남거나, 혹은 그 안에서 나오는 비효율적 문제들을 개선하여 나만의 스트렝스를 키워야 한다.
자생력의 측면에서, 나를 유지할 수 있는 혹은 내가 아끼는 이들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안정된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예로부터 집은 거주의 목적도 있지만, 정신 혹은 육체를 보호하는 수단으로써의 개념도 강했다. <홈 오피스는 낭만인가?>라는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사실 이건 공간을 확보하는 개개인의 어쩌면 소소한 투쟁일지도 모르겠다. 공간에 대한 책임과 함께 어쩌면, 나라는 개념을 지키려는 수단을 확보하려는 것이 주된 목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