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나 같은 사람도 글을 써도 될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저 그런 오피니언이라도 괜찮을까? 이런 생각의 시초는 그냥 나 같은 사람도 글을 써도 될까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거기엔 나 같은 사람도 읽어줄까?라는 의미도 담겨있다.
템플 그랜딘이 말하길 언어적 / 인지적 사상가가 있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생각이 언어로, 또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생각이 이미지로 일어난다고 말한다. 사실 시각적인 입력값은 생각보다 더 강렬하기 때문에, 우리는 시각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고 주장하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좀 더 서사적이고 점층적인, 언어적 표현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다고 생각한다.
언어적 생각을 주로 하는 나는 생각(나를 보는 사람들은 멍 때린다고 표현한다.)이 잦다. 비언어적 표현보다는, 언어적 표현이 조금 더 세상을 깨우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의 시대는 나에겐 생각보다 좀 어려운 상황이 아닐까 싶다.
요즘 세상의 거의 모든 크리에이터는 이미지로 경연에 참여한다. 그리고 보다 더 짧은, 강렬한 자극을 가진 무기를 선보인다. 이런 경연의 양상에서 내가 졌다고, 혹은 참여가 어렵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다. 모바일 기기에 익숙하지 않았던 엄마의 모습을 기억하던 나는, 이렇게 빠르게 엄마가 아침에 식탁에서 유튜브 숏츠를 오랜 시간 동안 보고 있을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또, 신문을 파지하고 뉴스를 읽던 아빠가 넷플릭스를 보고 있는 일상을 무심코 발견한다.
현재 거의 모든 표현의 영역은 뒤섞이고 복잡하고 짧다. 이게 그들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인지 의문을 지닐 때도 많다. 물론, 대중이 가치 판단에 중심에 서 있다고 생각은 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런 말초 신경의 끝단을 태우는 과도한 양상의 인식 소비는 결과론적으로 좋은 결과를 낳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우선적으로 나는, 이런 식의 짧은 콘텐츠 소비에 죄책감을 느낀다. 창의성과 에너지가 말라붙는 느낌이 들고, 영양가 없는 초콜릿을 계속 먹는 느낌이 든다. 유희의 측면에서는 장점이 있겠지만, 자아의 성장과 지적 가치 인식의 향상에 있어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활자가 인간과 멀어지는 세상이 오고 있다고 느꼈다. 창작물이 여운을 주기보다는 보다 직관적이고 직설적일 때 좀 더 환영받는 세상이 되었다. 정보는 많고 그것을 받아들일 우리는 빠르게 모든 것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복잡하고 치이는 세상에서 생각을 비울 수 있는 스낵용 영상들이 좀 더 뇌가 맛있다고 느끼기 때문인 걸까.
표현은 갇히고 글은 세상에 나오지 못한다고 느낀다. 요령을 꾀하는 일들이 많아지고, 남들의 아이디어를 훔치거나 도구를 이용해서 즉시적 이익을 산출하는 일이 인생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흘러가는 영상들과 함께 머리가 텅 비어있다고 느낀 적이 많다고 호소한다. 그저 그런 오피니언도 괜찮을까?는 생각은 그저 그런 생각도 곧이곧대로 써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아무리 환영받지 못할지라도 언젠가 좋은 가치를 인식할 사람들이 읽을거리를 주고 싶다. 창의적이라 함은 연관성이 희미한 것을 엮어서 새롭고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을 일컫는다. 글은 순발력을 주고 문장력을 준다. 우리에게 글이라는 가치 인식의 함양 도구를 주었으니, 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는 우리가 정할 수 있다.
그저 그런 오피니언이라도, 가치 인식을 담으면 다른 이의 생각에 반응 포인트를 줄 수 있다. 그건 어떠한 동기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