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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씨 May 26. 2020

어쩌다보니 시골, 어쩌다보니 동거 #17

: 도시 음식이 먹고싶을 때- 

: : 동거 100일 기념으로 만들어 본 감바스 & 포테이토 스킨 ::
오늘 뭐 먹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먹으려 산다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나와 닌나 씨는 먹는 것을 좋아한다. 맛있는 음식에 술 한 잔 곁들여 먹는 순간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큰 낙으로 꼽는다. 한식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다양한 맛을 즐기는 편이다. 


그런 우리에게 시골살이의 가장 아쉬운 점 중 하나는 외식이다. 이곳에서 잘 먹지 못하는 음식들을 우리는 도시음식이라 부른다. 흔한 프랜차이즈 햄버거부터 꼭 식당에서 먹어야하는 탕이나 전골 등 집에서 만들 수 없는 각종 요리들이 전부 도시음식에 속한다. 


물론 방법은 있다. 첫째, 왕복 50키로를 달려 원주나 충주 시내로 나가 먹고 오기. 하지만 운전 때문에 술을 마실 수 없기에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두번째 옵션은 포장이나 택배이다. 요즘은 유명한 맛집들이 포장이나 택배 서비스를 많이 이용해 전화나 인터넷으로 쉽게 주문가능하다. 용두동에서 쭈꾸미 볶음도 시켜먹고, 대구 동인동에서 매운갈비찜도 주문해먹었다. 세상 참 좋아졌다를 연발하며! 


것도 작년얘기다. 코로나로 급 벌이가 쪼들리는 상황에서 외식이나 배달은 사치가 되었다. 하지만 낮은 소득에도 왕성한 식욕은 줄어들 줄 모른다. 여전히 유튜브 먹방과 네이버 푸드 판을 보며 맛있겠다,를 연발하는 우리. 이런 상황은 우리를 집밥 요리왕으로 만들었다. 찜닭은 물론, 찹스테이크와 파스타, 피자까지 차근차근 접수했다.  




먼저, 배달 음식의 정석 치킨! 요즘처럼 날이 더워지면 치킨과 생맥주가 이보다 간절할 수 없다. 어느 날 단카에 지코바 치킨이라는 이름이 등장했다. 물어보니 요즘 핫한 치킨이란다. 찾아보니 과거 한 때 유행했던 숯불구이치킨과 비슷한거 같다. 레시피들도 많고 튀기는 것보다 간단해보여 패기롭게 치킨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우리에겐 에어 프라이어가 있으니까!!! 남동생이 결혼선물로 두 개를 받아, 하나 나눔해주었다. 받기 전에는 뭐 쓸일이 있으려나 했는데, 요물도 이런 요물이 없다. 어찌나 유용한지 개인적으로 에프 개발자는 노벨상을 타야한다고 생각한다. 손질한 닭을 두 번 정도 나눠 에어 프라이어에 튀겨 준 뒤, 소스에 넣고 버무려주면 끝이다. 


맛은?! 내가 했지만 정말 맛있었다.  오리지널을 먹어보지 않았으니 알 수는 없지만, 맵단맵단한 맛이 맥주를 불렀다. 매운 맛을 달래줄 조개탕과 작년 수확한 무로 만든 피클도 곁들였다. 사먹으면 2만원 가까이 하는데, 집에서 만들면 단 돈 5천원으로 양껏 먹을 수 있다. 둘 다 양이 많은 편이 아니라 두 끼를 배부르게 먹었다. 집밥 만세! 


: 집밥 지코바 치킨 :


며칠을 냉파에, 채식 밥상으로 차려줬더니 닌나 씨 입이 점점 나오기 시작한다. 꼬기, 꼬기 타령이다. 큰 맘 먹고 장 보면서 돼지 등갈비뼈를 담았다. 계속되는 한식 퍼레이드에 슬슬 질리던 차라 양식 스타일로 도전했다. 그 이름도 찬란한 바비큐 폭립! 


난이도 하 라며??!! 요리 블로거들의 말과는 달리 손도 많이 가고 우왕좌왕 힘들었다. 핏물 빼고, 오븐에 굽고, 중간에 꺼내 소스발라서 다시 굽고 등등. 그래도 야무지게 뜯으면서 손에 양념까지 쪽쪽 빨아 먹는 닌나 씨를 보니 세상 뿌듯하다. 돈 아껴야한다며 한 대만 산게 미안했다. 담엔 일인 일대로 먹자며 토닥여주었다. 




여러 도시 음식에 도전했지만 난이도 최상 요리를 꼽자면 감자탕이다. 인터넷에서 등뼈 2kg를 4400원에 득템하면서... 이 모든 게 시작되었다. 마침 농민돕기 감자 20kg도 성공해 최고의 타이밍이었다. 감자탕에 빼놓을 수 없는 시래기와 들깨가루. 물론 마트에서 손질된 것을 사면 훨씬 편하지만, 가격도 부담스럽고 재료도 있으니 역시 가내수공업으로 직접 만들기로 했다. 


감자탕을 만드는데 꼬박 이틀이 소요되었다. 먼저, 통풍이 잘되는 창고에서 겨우내 말린 시래기를 걷어왔다. 예쁜 초록색으로 잘 말랐다. 옆집에서 빌려온 큰 솥에 푹 삶은 뒤 새벽내내 불려주었다. 동시에 작년 수확한 들깨를 씻어 말려둔 것을 꺼내 볶은 뒤 절구로 빻아 들깨가루를 만들었다. 깨볶는 냄새가 어찌나 고소한지, 갓 짠 참기름 병을 몇 번씩 열어보다 등짝 맞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다음 날 촉실해진 시래기들을 모아 한땀한땀 섬유질을 벗겨주고, 감자탕 용 양념을 무쳐두었다. 날이 더워 상하지 않도록 한 시간에 한 번씩 찬물로 갈아주며 거의 반나절 정도를 핏물을 빼준 뒤 가볍게 초벌로 끓여줬다. 오후 4시부터 큰 솥에 시래기와 감자, 고기, 양념 모든 것을 넣고 삶기 시작했다. 


7시가 다 되서야 맛이 우러나기 시작했고, 8시가 다 되어서야 저녁을 먹었다. 평소 6시 반에 먹는데 반해 상당히 늦었다. 난나 씨는 배고프다며 허겁지겁 발골에 들어갔다. 집에서 만든 감자탕 맛은 대 성공! 잡내는 하나도 없고 감자탕이 이토록 깔끔할 수 있구나 세삼 느꼈다. 듬뿍 넣은 시래기, 우거지, 감자, 파까지 어우러져 감칠맛이 가득했다.  


하지만 우리는 많이 먹지 못했다. 아마 하루종일 맡은 감자탕 냄새때문이리라. 엄마는 닭백숙을 해주면서 정작 본인은 안드셨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술을 부르는 음식이니만큼 맘껏 달리자고 가득 찼던 의욕은 어디가고, 지쳐서 술도 안들어가 한 병 먹고 쓰러졌다. 집에는 감자탕 냄새가, 내 손엔 마늘 냄새가 짙게 베었다. 


:: 가내수공업 현장 ::
:: 한 솥 가득 탄생한 감자탕 ::




감자탕 먹고 싶어~ 


얼마 전 자려고 누웠는데 닌나 씨가 장화신은 고양이 눈을 하고 말했다. 누구냐. 감자탕먹은 유튜버!!! 하, 이 날씨에 불 앞에서 끓일 생각을 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가성비를 따지면 이만한 음식도 없다. 만원 이하에 둘이 고기도 실컷 뜯고 세네끼 든든히 먹으니 말이다.  


다신 안한다고 학을 뗐는데 또 등뼈 특가를 찾아 인터넷을 뒤지는 나를 발견한다. 먹고 싶다는데 해줘야지. 그래도 시래기랑 들깨가루랑 다 준비되어 있으니 지난번 보다 쉽겠지, 자신을 위로하면서. 


그나저나, 오늘은 또 뭐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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