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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씨 May 31. 2020

어쩌다보니 시골, 어쩌다보니 동거 #18

: 바지런 바지런, 5월의 일기 

: 제법 무성해진 텃밭 : 
사브작 사브작, 뽀시락 뽀시락


시골살이의 소리이다. 힌없이 한가로워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일이 끝이 없다. 텃밭에 심어둔 채소들이 쑥쑥 자라는만큼, 잡초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고추와 토마토가 어느정도 자라 넘어지지 않도록 묶어주는 지지대 작업도 해주었다. 감자잎을 솎아주고 고추 곁순을 따준다. 밭을 고르다보면 어느새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 


올해 첫 수확을 했다. 영광의 주인공은 바로 열무! 3월 말 감자를 심으며 씨앗을 뿌려둔 것이 줄기가 정강이까지 올만큼 컸다. 더 늦음 질겨진다는 주인집 말에 후다닥 수확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맛있게 먹을까를 고민한다. 먼저, 여린 열무들을 골라 숭숭 썰어넣고 고추장에 비벼 삼시세끼 식 생열무 비빔밥을 해먹었다. 아삭아삭한 식감이 여름을 닮았다. 


: 이랬던 새싹들이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
: 먹어본 자만 아는 그 맛, 여린 열무 비빔밥 & 김치말이 국수 :


수확한 양이 제법 돼 열무 물김치를 담갔다. 인터넷 레시피를 보고 따라했는데 맛을 보자 밍밍했다. 망삘이었다. 우선 하루 숙성을 시켜보기로 했다. 여전히 싱겁다. 소금을 조금 더 넣고, 삼일 뒤 맛보니 제대로다. 물김치 국물로 김치말이 국수를 해먹었다.  어찌나 새콤하고 시원한지 다시 생각만해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그 다음주엔 얼갈이를 수확해 얼갈이 겉절이를 담갔다. 


시골에 오기 전엔 김치는 주부 내공 100단의 사람들만 담그는 것인줄 알았다. 내가 아는 최고의 주부인 엄마 역시 할머니가 보내주는 김치를 먹는다. 감히 김치는 담가 먹는다는 음식이라고 생각 해본적도 없는데, 이곳에선 철마다 김치를 담는다. 텃밭 채소들을 가장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주위에서 나눠주는 김치양도 만만치않다. 넘쳐나는 김치를 주체할 수 없어 작년 가을 김치냉장고를 중고로 구입해야 했다. 


: 이번달에 담근 얼갈이 겉절이 & 열무 물김치 : 



집 테라스 앞으로 커다란 소나무가 있다. 평소에는 멋진 풍경을 담당하지만 5월에는 불청객이 찾아온다. 집 안밖을 엄습하는 노란 송화가루다. 송화가루를 모아 꿀에 찍어 먹음 맛있다고 하는데 노동력의 강도가 너무 세서 포기했다. 대신 본격적인 송화 테러 전 여린 새순 솔잎들을 골라 땄다. 역시나 가내수공업이다. 솔잎을 하나하나 손질한 뒤 씻어서 말린 후 담금주를 부어 주었다. 한 달 뒤 걸러줄 예정이다. 올 가을이나 겨울쯤에는 향긋한 솔잎주를 기대하며.  


보릿고개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식재료가 풍성해지는 시기다. 옆집에서 방풍나물을 땄다며 한 가득 나눠주었다.  뒷집에서 아로니아를 받았다며 나눠주었다. 신안에서 농사를 짓는 지인이 마늘쫑과 미나리를 거의 포대자루 수준으로 보내주었다.아무 것도 준 것도 없는데 늘 받기만 한다.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철부지 새댁임에도 다들 예뻐해주시고 잘 챙겨주시니 어찌나 감사한지 모른다. 식재료들 만큼이나 마음도 풍성해진다. 


감사한 마음들을 헛되이 할 수 없어 나역시 정성을 다한다. 방풍나물과 마늘쫑은 장아찌를 담갔다. 이제 장아찌 쯤은 척척이다. 둘 다 고기와 먹음 찰떡궁합이다. (다 있는데 고기만 없다;;) 아로니아는 깨끗히 손질 후 설탕을 넣어 청을 담갔다. 더운 여름을 상큼하게 달래줄 아로니아 에이드를 기대하며.   


텃밭의 가장 큰 즐거움은 나눔이다. 열무를 좋아하는 새언니를 위해 열무와 부추, 쪽파 등을 챙겨 보냈는데 매번 먹을 때마다 사진을 보내며 너무 맛있다를 연발한다.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에 오히려 내가 더 고맙고 신바람이 난다. 매끼마다 쌈을 먹는 부모님을 위해 상추와 함께 각종 쌈채소, 쑥갓, 루꼴라 등을 따서 집에 보내주었다. '택배 받았다.' 답이 왔다. 그 후 답은 없지만 내가 이곳에서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음이 전해졌으면 바래본다.  


: 솔잎주를 담가봅시다! :
: 아로니아 뿌셔뿌셔 & 마늘쫑 장아찌 :




5월의 마지막날인 오늘. 곧 모종들이 들어갈 시기라 부족한 아이들을 채우기 위해 아침부터 시장으로 향했다. 지난번 산 파의 1/3가량 죽어 다시 심어줄 파와 추가로 비트와 상추 모종을 샀다. 파프리카와 가지도 하나씩 더 사고 싶었는데 찾지 못했다. 재난지원금으로 오랜만에 중국집에서 외식도 했다. 


집에 돌아와 모종들 심어줄 자리를 정리했다. 뽑아도 뽑아도 끝이 없는 풀들을 뽑고 흙을 뒤엎어 부드럽게 만들어주었다. 모종들을 옮겨 심고, 얼갈이와 열무 씨를 뿌렸다. 가을에 심은 쪽파들이 축 늘어져 있다. 쪽파 씨앗을 받을 때다. 어찌나 실하게 컸는지 마늘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줄줄이 묶어 처마에 말려두었다. 고추와 토마토 사이사이 복합 비료도 뿌려주었다. 


모기가 달라드는가 싶더니 어느덧 저녁시간이다. 소소한 하루가 이렇게 또 지나간다. 


: 쪽파 씨앗을 받기위해 말려줍니다 :


: 안녕? 6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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