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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씨 Aug 04. 2020

어쩌다보니 시골, 어쩌다보니 동거 #22

: 마트 알바 한 달 체험기 

안녕하세요! 청정 라거 ** 이벤트 행사 중입니다~!  


6주 간 대형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공유가 선전하는 맥주 회사 이벤트로, 해당 맥주를 구입하면 룰렛을 돌려 선물을 주는 일이었다. 금, 토, 일 주말 3일만 일할 뿐인데 일주일이 어찌나 빨리 가던지. 7월이 순삭됬다.

 

20대 때 잠깐씩 했던 알바인데다, 좋게 말하면 붙임성이 좋고 다르게 말하면 낯 두꺼운 성격 덕에 크게 어렵지 않았다. 닌나 씨는 사람 대하는 일에 스트레스 받지 않는 성격도 복이라고 말했다. 닌나 씨는 편의점에서 알바하며 서비스 직을 경험중인데, 봉투 드릴까요, 안녕히 가세요 같은 인사말이 잘 안나와서 초반에 고생했다고 했다. 반면, 난 낯선 사람에게도 말을 잘 붙이는데다, 호객행위도 적극적으로 하는 편이다. 



마트에서 일을 하면 자연스레 사람들을 관찰하게 된다. 가족 단위로 장을 보러 많이 오는데, 놀라울 만큼 부모와 자식들의 상관관계가 높았다. 부모가 패셔너블하면, 애들도 패피 뺨치고, 예의 바른 부모 밑에는 예의 바른 아이들이 있었다. 


룰렛을 돌려 상품을 주게 되어 있는데 3등은 참가상 격으로 물티슈가 나간다. 어떤 가족이 맥주를 사고 꼬마 남자 아이가 룰렛을 돌렸다. 3등이 나왔다. 그러자 부모님이 말했다. 

"우와, 우리 **이 3등이나 했어요?! 대단해요!" 


순간 멍해질 만큼 감동적이었다. 아이는 물티슈를 받아들며 활짝 웃으며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보통 3등이 나올 경우 꼴등이네, 좀 더 잘 돌리지 이렇게 직간접적 아쉬움을 표하거나 한 번 더 하겠다며 떼를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이들도 물티슈를 받고 전혀 기뻐하지 않는다. 


같은 결과를 받고 한 아이는 성취감을 느끼는 반면, 다른 아이는 실패감을 느끼게 만드는 어른들의 말 한 마디.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곱씹어보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안타깝게도 부정적인 상관관계도 높았다. 부모가 살집이 있으면, 대부분의 자식들도 그렇고, 부모가 진상이면 아이도 진상이었다. 누가 봐도 고도 비만인 여자 아이가 카트에 타고 있었다. 그 소녀의 한 손에는 계산도 안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조리코너 통닭의 닭다리가, 다른 손에는 시식컵을 들고 있었다. 


투실한 아이의 엄마는 카트를 내쪽에 두고 옆 주스 시식 코너에 쥬스를 받으러 갔다. 아이가 기름기 가득 묻은 손으로 증정 인형 샘플을 마구 주무르는 동안 난 소리없는 비명을 질렀다. 먹던 닭다리도 버리고 갈까바 조마조마했다. 돌아와 그 모습을 본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인형을 내려놓은 뒤 아무말 없이 유유히 카트를 끌고 사라졌다. 그 외에도 다짜고짜 물티슈를 그냥 달라고 하는 아주머니, 이를 계속 쑤시며 상품들을 들었나 놨다 하는 아저씨, 찾는 물건이 없다고 신경질을 내는 사람(심지어 맥주도 아님) 등 세상은 넓고 진상은 다양했다. 


: 알바 후 떡실신한 나의 모습 :


어느 마트에나 있는 시식맨이 여기에도 있었다. 시식맨은 오로지 시식만을 위해 마트를 오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3주차쯤 되니 정규적인 시식맨 두 명이 눈에 띄었다. 시식맨 1은 바지를 배 위까지 끌어입은 제법 큰 키의 어르신이다. 일하는 동안 정말 매일 왔다. 와서 두 세바퀴 둘러보는데 절대 한 개만 먹지 않는다. 만두도 세 개는 기본, 비빔면도 호로록 호로록, 주스도 여러 잔, 맥주도 마시고, 유산균도 몇 개씩 털어넣는다. 주위 이모님에게 물어보니 몇 년째 오고 있다고 했다. 


알바 첫날 (그 땐 몰랐지만) 시식맨 1이 내게 오더니 다짜고짜 말을 던졌다. 

"맥주 좀 줘바." 

"죄송합니다만, 저희는 시음 행사가 아니라서요~" 뭐가 죄송한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사과부터 하고 이벤트 설명을 이어갔다. 그러자 말을 뚝 끈고는 

"에이~ 뭐야. 맥주도 안주면서. 이런걸로 어떻게 팔아~" 딴지를 걸었다. 맥주를 주면 살 것도 아니면서. 뒤쪽 클라우드와 카스 시음 코너로 가서 두 잔씩 마신 뒤 사라졌다. 나중에 보니 나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다니면서 꼭 태클을 건다고 했다. 오늘은 미숫가루가 덜 다네, 이번 만두는 기름지네 등 등;; 


시식맨 2는 1에 비해 점잖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진한 쌍커풀의 큰 눈을 가지고 있다. 조용히 와서 돌면서 소리 없이 먹는다. 시음이 없는 내게는 눈길 조차 주지 않는다. 알바 마지막 날 충격적인 사실을 알았다. 그날도 어김없이 점심 때쯤 시식맨 1이 나타났다. 한 바퀴 돌고 두 바퀴 째, 친구와 함께온 시식맨 2와 내가 서있는 모퉁이에서 마주쳤다.  

 

갑자기 반갑게 인사를 하는 두 사람. 이야기를 나누더니 세 사람은 사이좋게 맥주를 마시러 맥주 코너로 향했다. 세상에나. 두 사람이 아는 사이라니! 여기서 알게 된걸까. 게다가 저 친구분은 뭐지. 이렇게 새로운 시식맨이 등장하는 건가. 자기들만의 리그? 커뮤니티 같은 게 있는 것일까. 온갖 상상을 다해본다.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사람들과 스쳤다. 예전에도 그랬는데, 처음 막 알바를 하러가면 모든 사람들이 까칠하다. 특히 오래 일한 이모님들은 초장에 군기를 잡는다. 매번 행사때 마다 사람이 바뀌니 친절하게 대할 이유도 없거니와 일을 대충대충 건성으로 하는 알바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나면, 그 후부터는 무척 잘해준다. 인간 관계에서 미소만큼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없다. 웃으면서 인사하고, 말 한마디라도 더 건내면 된다. 내 자리 옆에는 주스 이모님이 있었는데, 제법 친해졌을 무렵 행사가 끝나 떡갈비 코너로 가셨다. 그 후에도 일부러 지나가며 안부를 물었다. 


어느날 배고프다는 내 하소연에 갓 구운 떡갈비 몇 개를 몰래 쥐어주고 갔다. 원래 하면 안되는 행동으로 본사 직원에게 걸리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죄송스럽고 감사했다. 몰래 숨어 먹는 떡갈비 맛이 어찌나 달달하고 따듯하던지! 알바 마지막 날, 인사 하러 갔는데 어긋나서 못만나고 온것이 아직까지 아쉽다. 다음에 마트에 가면 그 이모님이 무엇을 팔든 꼭 사올 예정이다. 


마트에서 일하면서 가장 나쁜 점은 바로 지름신! 20대 때에는 살림에 관심이 없으니 세일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특가, 타임세일 뭐 이런 방송만 나오면 어찌나 귀가 쫑긋 거리는지. 어쩔때는 일하다 말고 뛰어가 찜을 해 사온 적도 있다. 9시 일이 끝나면 신선 제품 코너에서 할인을 많이 하는데, 생선 가게를 그냥 못지나치는 고양이가 된다. 오징어도 사고, 장어도 사고, 평소 언감생심이었던 소고기도 사고...결국은 이것저것 다 지르게 되어 일당만큼 쓴 날도 있다. 


마트에 사람이 많을 때는 목이 아파 힘들지만, 시간이 잘 간다. 반면, 사람이 없을 때는 정말 시간이 멈춘 듯 하다. 체감 1시간은 지났는데 10분 아니 5분 밖에 지나지 않은 현실에 좌절한다. 말을 많이 하니 편도에 염증이 생겼는지 침 삼킬때마다 따갑다. 하루 종일 서있으니 저녁이 되면 발바닥 아치 부분이 불난듯 후끈 거리고 다리가 퉁퉁 부어 닌나 씨가 주물러줬다. 


그래도 열심히 산다고 상을 준 것일까. 잊고있던 본업에 대한 문의가 들어오더니 7월 한 달만에 계약을 두 건이나 했다. 하반기는 좀 더 본업에 충실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에 벌써 8월. 2020년의 2/3가 지나갔다. 남은 1/3, 더 열심히 달려봐야겠다.  


: 왠지 모를 사명감에 테라만 열심히 사서 마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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