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걸어온 길들이 여기로 나를 이끌었다? 다사다난했던 직업정착기
능력(能力). 사전에서는 '일을 감당해낼 수 있는 힘'이라고 의미 설명을 하고 있다.
일을 감당하려면 첫째로는 선천적인 재능이 필요하고, 둘째로는 잠재력을 발현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어릴 때를 돌이켜보면 내가 가장 감당할 수 없는 일은 '정리'였다. 물건을 원위치에 돌려놓고, 언제나 찾을 수 있게 구조화하는 행위인 '정리'를 못한다는 것을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그냥 나의 원천적인 컴플렉스이자 나태함 따위로 치부했었다. 하지만 ADHD 등 뇌의 의과학적인 질병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공간을 정리화하는 것이 organizing 즉 조직화 능력과 큰 연관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 조직화 능력이 떨어지게 되면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거나 중요도를 선별하는 등의 작업 '능력'도 떨어지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런 나에게 앱 기획자, 서비스 기획자라는 일은 어쩌면 기존의 컴플렉스나 약점을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여러 직장을 전전하면서 일을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인정도 받았지만, 스스로 일을 구조화하거나 정리하는 법을 잘 몰라서 현재의 직업을 선택하기 전까지는 스스로의 '능력'에 대해서 항상 의심을 하는 상태였다. 많은 일들을 했음에도 유일하게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어요.'라고 자신할 수 있는 일은 서비스 기획 일이었다.
사실 서비스 기획을 하게 된 과정도 원래 나의 특성처럼 무척 어수선했다. 영화를 좋아하던 어린 시절의 내가 무턱대고 화려한 영화계를 동경하게 되었고, 고등학교 때 동경하던 세계에 들어가고 싶어 시립 영화 동아리에 찾아가게 되었다. 다시 돌아보면 체계적인 정리와 학습이 필요한 '입시'라는 과정을 회피하기 위해 했던 선택이었다. 학교라는 시스템의 정상궤도를 약간은 벗어나고 싶었던 어린 치기였기도 했고.
대학교에서 처음 영화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에도, 졸업하고 상업 영화 현장에 처음 참여해봤을 때에도 재미는 있었지만,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정확히는 몰랐던 것 같다. 어쩌면 어릴 때부터 동경하던 그 화려하고 빛나는 이미지에만 주목하고 있어서, 더 본질로부터 멀어졌던 걸 수도 있다. 현실의 쓴맛을 보게 된 20대의 나는 누구나 한 번씩 거치는 진로에 대한 방황기를 거치게 되었다. 결국 그 구불구불한 길이 현재의 나로 이끌었고, 지금 보면 영화를 공부하고 업으로 삼았던 그 시기가 없었으면 서비스 기획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애초에 만들 수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영화 연출가가 하는 일은 it 업계에서의 PO,PM이 하는 일과 유사성이 상당히 높다. 영화는 관리해야 하는 인력이 훨씬 많고, 프로세스도 더 복잡하기 때문에 어쩌면 PM이 관리하기에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규모 면에선 훨씬 크다고 볼 수 있다. 한 줄의 스토리와 그걸 풀어 쓴 시놉시스가 상세한 트리트먼트가 되고, 그 트리트먼트가 시나리오가 되어 캐스팅과 각 분야 전문 스탭 구성을 통해 한 편의 작품이 되어 가는 영화계에서 '어리둥절' 상태로 부딪쳐가며 배운 것들이 지금으로서는 자산이 되기는 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내 미래를 걸었던 영화를 그만두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명확한 계기는 사실 없다. 그냥 그 일을 감당해낼 수 있는 힘이 어렸던 내겐 없었을 뿐이다. 조직화된 사고를 할 줄 모르는 채로 성인이 된 상태였기에 전공을 무엇으로 선택했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어영부영 전공을 조금이라도 살려보자 해서 마케팅 영상과 브랜드 마케팅 업계에서도 일을 하면서 '전략'이라는 것에 대해 오리엔테이션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IT 업계에 뛰어들게 된 것은 정말 우연한 계기였다. 재직했던 마케팅 회사에서 내 잠재력을 본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홈페이지 리뉴얼 프로젝트에 대한 책임권한을 나에게 부여했고, 외주 개발자, 디자이너와 협업을 하게 되면서 첫 시작을 하게 되었다. 프로젝트 진행을 하면서 급격히 친해진 개발자, 디자이너가 나에게 프리랜서 팀으로서 협업을 제안했고, 그대로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무작정 뛰어들었다.
별다른 학습 없이 실무로 뛰어들었기 때문에 그냥 무작정 'DO IT' 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허술했지만 영화와 마케팅을 통해 쌓았던 기획력을 어느 정도 살려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는 있었다. 그럼에도 이론적으로 쌓인 거 없이 한 것이었기 때문에 부침이 많았고, 처음부터 배우자는 심경으로 고경력의 상급 기획자를 사수로 든 앱 프로덕트 기획 프로젝트에 조인해서 많이 혼나가면서 본격적인 기획 프로세스를 배우게 되었다.
많은 것을 얻어왔지만 프로젝트를 마친 나는 너무 초심자의 상태였기 때문에 인하우스로 들어가서 제대로 된 협업을 해보기 시작했고, 어쩌다보니 프리랜서와 인하우스를 모두 경험해본 기획자가 되어 있었다.
작년 말까지도 몇 년간 재직했던 인하우스 회사에서 아주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드디어 무턱대고 쌓아왔던 나의 자산들을 조직화하고 정리하는 방법을 익히게 되었다. 돌고 돌아서 아주 오래 걸려서 스스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능력'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자기 유능감을 맛보고 나니 내가 스스로 상황과 환경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더 키우고 싶어져서 고심 끝에 퇴사를 하게 되었고, 이제는 진정한 프리랜서 서비스 기획자로서 다시 시작을 해보고자 한다.
나의 선택도 물론 있었겠지만 어쩌다 보니 이 일을 하게 되었는데, 당연하게도 그 동안 했던 모든 선택들이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조직화라면 잼병이었던 꼬마아이가 이제 구조와 체계를 만들고 관리하는 일을 업으로 삼게 되다니. 아이러니하면서 개인적으론 감격적이기도 하다. 내가 왜 그렇게 자기 확신을 갖고 일하는 것이 힘들었었는가? 돌아보면 엄연히 조직화의 문제였다.
일단 냅다 까라 해보는 추진력과 대범함만큼은 뒤지지 않던 나였기에, 이제 또 다른 것들을 추진해보고자 한다. 겁도 나지만. 내 인생도 프로젝트 단위로 관리를 하기로 했고, 그 첫번째 프로젝트가 브런치에 100개의 글을 발행하는 것이다. 이 분야의 전문가로 더 성장해나가는 발자취이자 내가 원하는 내 미래의 모습에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기도 하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가면 언젠가 만나게 된다는 그런 동화같은 말을 예전부터 참 좋아했다.
멈추지 않고 자꾸 걷다 보면 TO BE의 내 모습과 AS IS의 내 모습이 점점 닮아가지 않을까.
이 글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은 UIUX, 서비스, 앱 기획자로서 이 분야에서 의심받지 않는 프로페셔널리스트가 되는 것이고 업계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해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우선 짜치더라도 써보는 것이다. 어쨌든 무언가를 해나간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100개의 글을 다 쓴 후의 내 모습이, 그 변화가 궁금하다. 그런 호기심을 원동력으로 못먹어도 고 해보고자 한다.
일을 조직화해나가고, 감당해내는 게 힘든 많은 사람들에게 내 글이 용기이자 어떤 계기가 되면 더더욱 좋겠다. 항상 우리 존재 화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