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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링기 Jul 14. 2022

무질서한 마스크 회고록

22년 7월이면 벗고 다닐 줄 알았건만.

#1. 느낌이 묘했다. 


  나는 황사와 미세먼지가 하늘을 뒤덮어도 마스크를 끼지 않는 무던한 사람이었다. 미세먼지가 폐는 물론 건강의 전반적인 상태를 망친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으나 당장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물론 이와 같은 무신경함이 나의 자세 부정합에 기여했겠지. 그러나 20년 1월 말,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냅다 kf 94 마스크 50장을 24,900원에 구매했다. 얼마 뒤 본격적인 코시국이 시작되었고, 그때는 50장이면 되는 줄 알았다. 

   


#2. 어른은 영원히 철들지 않는다. 


  50장이 웬 말이냐. 그 이후로 마스크 500장을 넘게 쓴 것 같다. 겪어보지 못한 세계였다. 하늘이 맑아도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활보했고 대중교통에서는 끊임없이 마스크를 쓰라고 안내가 나왔다. 허나 하루가 멀다 하고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며 난동을 피운 사람들이 언론에 나왔다. 신기했다. 저게 그리도 싫은가. 


  그러나 이와 같은 현상은 회사에서도 반복되었다. 다 큰 어른들이 모여있는 공간인데 주기적으로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는 음성 방송을 지속했다. 하루에 세 번 정도 방송을 했으니, 말 다했지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지 않은 임직원이 꽤 많은 것 또한 놀라웠다. 다들 목숨이 3개인가. 시간이 흐르고 나서는 아예 인사팀에서 주기적으로 층마다 패트롤을 돌며 마스크를 쓰지 않는 임직원에게 경고를 날리는 것을 보며 내가 회사를 다니는 건지 학교를 다니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사람들, 참 말 안 듣는다. 


#3. 지금은 이 정도는 아니지만. 


  안타깝게도 나라와 회사에서 마스크 착용을 권해도 쓸 수 있는 마스크가 충분하지 않았었다. 코로나 초기에는 장당 몇 천 원으로 마스크 가격이 올라갔고, 그마저도 구할 수 없어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나 또한 쿠팡에서 많은 판매자에게 기만을 당했다. 개당 2,500원이라 싸다며 클릭하면 배송비가 5,000원이었다. 망할 놈들. 묶음배송도 되지 않아 결국 개당 8천 원에 가까운 가격에 구매하는 셈이었다. 몇 차례의 기만 이후 인터넷에서 마스크를 사는 건 포기했다. 


  다행히 회사에서는 주에 2개의 마스크를 배급했다. 나라에서는 요일에 맞추어 마스크 구매 횟수와 수량을 제한했다. 네이버 지도에서 마스크 재고가 있는 약국을 찾아 길을 나섰다. 약국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한 손에는 돈을, 한 손에는 신분증을 들고 줄을 서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이것이 공산당의 삶인 걸까,라고 생각했다. 마스크 가격이 어느 정도 정상화된 요즈음의 쿠팡을 보면 그 시절이 꿈만 같다. 



#4. 마스크도 새옹지마 


  천만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신기하게도 나는 마스크가 답답하지 않았다. 마스크가 커서 그런가, 싶어 마스크 줄을 팽팽하게 줄여도 봤고 줄을 한 번 꼬아서 밀착시켜보기도 했는데 여전히 마스크는 쓸 만했다. kf94를 끼면 답답해 숨이 막힌다는 주변 사람들도 많았는데 나는 예외였다. 한 여름에도 쓸 만했다. 그냥 뭐, 쓰지 뭐. 덕분에 마스크의 단점이 더 느껴지지 않았다. 


  밤이 되면 고개를 드는 마피아처럼 마스크의 장점은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화장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물론이요, 무표정으로 상사의 농담에 맞장구칠 수도 있었다. 자리에 앉아서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조용히 립싱크로 따라 불러도 아무도 몰랐다. 유튜브에 유명한 Sake_L의 노동요 시리즈를 들으며 입을 벙긋거리면 업무 효율이 어찌나 오르던지. 두 시간은 걸리는 자료가 한 시간으로 줄어드는 기적이 발생했다. 안타깝게도 정확도는 조금 떨어졌지만. 짜증 날 때 마스크 아래에서 구시렁거리기도 했었다.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였지만 누군가 너 욕하는 게 보인다고 말해서 그 이후로 주의를 기울였다. 입이 움직이며 마스크가 흔들리는 것이 패착 요인이었다. 이제는 요령껏 입술을 작게 움직여서 티 안 나게 욕을 한다. 


#5. 적응이 된 줄 알았지. 


  마스크 착용 후 2년 동안 감기 한 번 걸리지 않는 것을 보면서 그동안 얼마나 비위생적인 환경에 노출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코로나 이후에도 마스크를 쓸 테야,라고 생각했지만 얼마 전 해외여행을 다녀오면서 생각을 고쳐먹었다. 숙소에서 밖으로 나갈 때, 마스크를 찾느라 허둥대지 않는 것. 나의 후각을 온전히 이용해서 풀냄새를 맡는 것. 마스크 위로 삐져나온 눈만 보고 누가 누구인지 유추하지 않아도 되는 것. 잊고 있던 마스크 없던 삶이 파도처럼 몰려들었다. 좋았다. 부직포로 가리지 않은 사람들의 맨 얼굴을 보는 것이. 그래, 원래 삶이란 이런 거지. 새삼 마스크 없는 세상을 마주하니 잃어버렸던 기억이 우르르 돌아왔고 급격히 마스크 없는 삶이 그리워졌다. 이제 좀 벗나, 싶은데 또 변이가 발생했단다. 이런 변-이. 


#6. 마스크 회고록을 마치며.


  두서없이 마스크에 대한 추억을 주섬주섬 담아보았다. 웬만한 마스크 tmi 토크는 다 한 것 같은데,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사족처럼 붙여본다. 코로나 직전, 폐업 위기에 쳐해 있던 마스크 공장이 있었다고 한다. 버티고 버티다 코로나를 통해 떼돈을 벌었다고 하더라. 거래처의 거래처 이야기였다. 역시 성공은 운빨이다. 돈은 돌고 돈다는데 왜 나에게는 돌지 않는지 궁금해지는 저녁이다. 기승전 금전으로 이어지는 글, 이것이 직장인의 글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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