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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링기 Oct 29. 2023

치약은 치아만 닦지 않는다.

반짝이는 수전이 주는 개운함이란.

 요즘 학교는 학생들이 청소를 안 한다고 한다. 선생님이 하거나 전문 업체가 한다고 한다. 바닥이 버석버석해질 즈음이면 책상과 의자를 교실 끝까지 밀어놓고 나무 마룻바닥에 왁스질까지 해본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오늘날이다. 이런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세상 참 좋아졌다, 나 때는 말이야, 응? 이렇게 오늘도 라떼력을 올려본다.


 물론 시켜서 했을 뿐이지 나를 비롯한 대다수의 아이들은 청소를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아이들이 싫어하는 구역이 있었으니 바로 화장실이었다. 화장실 청소는 많은 친구들의 기피 구역이었다. 그 곳은 축축한 바닥, 비위생적인 휴지통, 예측 가능한 불결한 이벤트가 도사리고 있는 장소였다. 그렇지만 나는 화장실 청소가 그렇게 싫지만은 않았다. 호스를 통해 물줄기를 뿜어내고 바닥의 먼지나 정체불명의 자국들을 씻어내면 속이 시원해졌다. 휴지통을 비우는 것도 집게를 사용하면 되는 일이고, 손이 더러워지면 비누를 사용해 씻으면 되는 일이다. 다들 싫어하는 화장실 구역을 내가 맡겠다고 손을 들면 안도하는 반 친구들의 얼굴을 보는 것도 아주 살짝 뿌듯했다. 캡틴 아메리카까지는 아니어도 마이크로 미니 타이니 화장실맨 정도 되는 기분이랄까.


 그때의 버릇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건지 잘은 알 수 없지만 지금도 화장실 청소를 좋아하고 곧잘 한다. 하면 티가 나지 않지만 하지 않으면 티 나는 것이 대다수의 집안일이다. 그렇지만 화장실은 더 유난히 티 나는 편이다. 방심하면 분홍색 곰팡이가 피어오르고 줄눈 사이에는 검은 곰팡이가 자리 잡는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씻을 때마다 작게나마 관리를 해본다. 틈만 나면 머리에 트리트먼트를 얹고 헹구기 전의 시간을 이용해서 벽과 바닥을 솔질하거나 배수구를 꼼꼼히 닦아낸다. 머리카락은 수시로 치우고 청소 솔은 주기적으로 교체해서 기능성이 떨어지지 않게 관리한다. 변기 청소는 쿠팡에서 만난 일회용 브러시를 적극 활용해서 최대한 청결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늘 고민이었던 변기 청소를 해결해 준 제품


 화장실 청소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몇 가지 배운 점이 있다. 우선 근본은 근본이라는 점이다. 화려하게 거품을 자아내는 많은 청소용품들을 사용해 보았다. 냄새가 나지 않는다, 거품이 만드는 세정력을 만나보시라 등 다양한 수식어에 넘어갔었다. 그러나 화장실 청소의 근본, 락스만한게 없었다. 몸에 좋지 않다고 하지만, 최대한 환기를 하면서 청소를 진행한다. 락스를 희석한 물을 분무기에 담아 사용하다가 작년부터는 유한락스가 만든 청소용 세제를 잘 사용하고 있다. 뿌리고 한 두 시간 방치한 다음 솔을 집어 삭삭, 밀면 희끄무레했던 타일 사이 줄눈이 하얘진다. 바닥 타일도 원래의 색을 찾는다. 벽도 마찬가지다. 락스 냄새에 살짝 머리가 어지러워도 이만한 보람이 없다.




 여기에 화룡점정으로 치약을 이용해서 스테인리스의 모든 물 자국을 다 지워내면 그날은 어찌나 뿌듯한지 모른다. 과장해서 화장실에서 빛이 난다. 대청소를 마친 날이면 남편을 붙잡고 나의 성취와 화장실의 전후를 상세히 설명하고 집게손가락으로 달라진 스테인리스의 촉감을 느껴보게 한다. 너무 좋지 않냐고. 최상의 상태는 채 일주일을 가지 않지만, 괜찮다. 다시 청소하면 되는 거니까.


 우울한 날이면 청소 솔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뭐든 락스와 세정제로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화장실은 깨끗해지고 내 기분도 좋아질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그날의 청결을 만들어 내는 것, 그 자체가 주는 보람과 의욕이 있기에. 말이 나온 김에 내일은 화장실을 청소해야겠다. 이번에는 벽 사이 줄눈을 중점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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