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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자의 휴식 Jun 06. 2020

일드기록2_#언내추럴

내 직업에 대해 미친듯이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기자가 맞지 않다. 어떤 점이 맞지 않지? 직업이 틀린걸까 회사가 잘못된 걸까. 그럼 나는 뭘 해야하지? (지금도 그 질문은 현재진행형이지만) 골똘히 고민하던 중, 나는 그 직업을 가진 내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대학시절부터 꿈꿔왔던 직업이지만 보람도 0, 당연히 노력도 0였다. 하루 어떻게든 대충 말고 싶어서 안간힘을 쓰고 같은 직업을 가진 다른 사람들과도 만남을 꺼렸다.


그러던 중 '미스미 미코토'라는 캐릭터를 [언내추럴]에서 만났다. 직업은 법의학자. 1년에 100건이 넘는 시체를 부검하며 연애도 포기할 정도로 바쁘게 산다. 연애도 결혼도 포기하는 삶은 언뜻 보니 나랑 비슷하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직업에 대한 자부심. 후배인 쿠베가 죽어있는 사람보단 살아있는 사람을 대하겠다며 직업군을 무시하자 미스미는 발끈한다. 법의학은 미래를 위한 학문이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대사가 멋있어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자신의 직업에 그리도 떳떳할수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언내추럴의 스릴러적 요소, 잘 짜여진 캐릭터, 흥미돋는 사건 에피소드들을 좋아하지만 나는 미스미 미코토의 직업정신이 이 드라마의 묘미라고 생각한다.


18년 1분기 방영작 중 꽤 수작이다. 이사하라 사토미 외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고 스토리들도 짜임새 있다. 드라마의 제목인 '언내추럴'은 말그대로 부자연스러운 죽음, 그 죽음들을 조사하는 법의학자들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미스미의 직업정신에 감명받은 건 의대생인 극중 쿠베도 마찬가지. 일련의 사건들을 겪고(스포가 될까봐 말을 삼가겠다) 법의학자의 길을 걷게된다. 에피소드 10편 내내 미스미는 올곧음을 유지한다. 사건에 흔들리고 고민할때도 있지만 본인이 정해놓은 직업정신에 맞지않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 당당함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고 바뀌게했다. 내가 어떤 일을 하게되던 남들에게 "내 일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하며 나만의 기준을 갖고 살아가야겠다는 다짐. 참 시기적절하게도 고마운 드라마였다.


탈의실에서 일하기 전 급하게 규동 먹는 미스미. 이렇게 사소한 회사 속 일상마저 부러웠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굳이 하나 고르자면 꿀케이크 편. 노동시간을 지키지 않고 직원들을 혹사하던 한 케이크 공장에서 직원 1명이 배송 중 교통사고로 사망. 산재로 볼수있냐에 대해 변호사, 회사, 법의학자의 의견이 갈리는 편이다. 에피소드 후반부, 직원이 오토바이 교통사고 후 바닥에 누워 불꽃놀이를 바라보는 모습이 압권이었다. 동시간대 그의 가족들이 집에서 같은 불꽃놀이를 보는 연출도 좋았고 함께 나오는 OST도 잘 맞물렸다. 이 에피소드를 보고 나서 강렬히 다른 시청자들과 드라마 얘기를 나누고싶을 정도였다. (주변에 일드 보는 사람이 없으므로 늘 혼자서 삭히거나 SNS를 뒤적거려본다)


또 하나 빠트릴 수 없는게 바로 OST다. 보통 한 드라마를 볼때 극중에 빠져 OST들을 즐겨듣곤 하지만 드라마가 끝나면 또 금방 인기가 식어버리는게 OST다. [언내추럴]의 또 다른 묘미는 요네즈 켄시의 'Lemon'이다. 시체 냄새를 없애기 위해 사용되는 레몬, 부검의가 가장 많이 맡는 냄새다. 가사와 드라마 내용이 완벽히 동기화되는 기특한 곡이다. 드라마가 끝난지 2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도 사랑받는데는 이유가 있다. 일드나 jpop에 딱히 흥미가 없는 사람들도 많이들 감상하니 한번쯤 들어보시길 바란다. 물론 드라마를 보고 들으면 감동은 배가 된다.

많이들 꼽는 명대사. 이렇게 열정적이면서도 때로는 무심하게 살아야 사회생활 해나갈수 있을것 같다


언내추럴 (일본TBS, 2018)

(※본 글은 N회차 감상시 그때그때 바뀔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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