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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시마 신혼여행 03_야쿠스기랜드와 기겐스기

2006.5.30

by 조운

여행기간 : 2006.05.29 - 06.02
작성일 : 2006.07.07
동행 : 같이 살아 주시는 여자분
여행컨셉 : 신혼여행을 빙자한 백패킹 + 렌트카 여행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에 일어났다. 신혼여행 동안 대부분 우린 누군가의 노크 소리에 눈을 떠야 했다.


원래 신혼여행은 다 그런 거 아닌가?

이번엔 낯선 여자의 일본말.
'아참 여긴 일본이구나.'
나가보니 렌트카회사에서 나온 사람이었다. 8시 밖에 되질 않았는데, 참 일찍도 출근하는구나 생각했다. 나를 태우고 회사로 가서는 여러 대의 차 중에서 골라란다.
렌트는 자가용 밖에 되질 않았다. 사실 오토바이가 이런 때는 최곤데... 없었다. 차는 거진 새것처럼 보였다. 실지로도 거의 소음이 들리지 않았다. 가까운 주유소로 가서 기름을 채우고 다시 회사로 와서 서류를 작성했다.
가격은 30시간에 7500엔이었다. 내가 고른 차는 니싼의 마치(March)라는 신형모델인데 1000cc 짜리였다.

600cc면 같은 조건으로 1000엔이 쌌지만 렌트 중이라 없었다. 혹시나 해서 2000엔짜리 운전자 보험도 들고 10% 할인기간이라고 해서 총 8750엔을 주었다. 30시간이라지만 저녁 7까지 해서 34시간이 되는 셈이고 또 6시면 퇴근하기 때문에 그 다음날 아침에 찾으러 오겠다고 하니 실지로 렌트한 시간은 48시간이었다. 히다카상이 잘 말해 준 덕분이 아닐까 생각했다. 혹시 야쿠시마에 갈 사람이 있다면, 공항근처에 있는 이 회사를 한번 가보라. 이름은 NAVI(나비-なび)였다. 노란 잠바를 입은 아줌마들만 일하는 특이한 곳이었다.

일본은 우리와 차선이 반대로 되어 있어서 운전자석도 반대이다. 처음만 좀 이상하지 오토고 해서 운전은 금방 익숙해진다. 다만 조금만 정신을 딴 데 쓰면 역주행 하고 마는데, 이것은 이틀 내내 고쳐지지 않았다.



야쿠스기랜드


스키(すぎ)란 삼나무라는 뜻이다.
메이지시대 이후 삼나무 산지로 광각을 받던 야쿠시마는 너무 심한 개발과 착취로 거진 황폐해지기 시작했단다. 그런 야쿠시마가 일본에서는 최초로 세계문화유산 지정 가능성이 높아지면 적극적인 보존을 모색했단다. 그 와중에 동사무소 직원에 의해서 나이가 7000년(신석기때부터 살았다는 소리다)으로 추정되는 ‘죠몬스기’를 비롯, 몇 천 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수많은 삼나무들은 톱날이 닿기 전에 보호수목으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일본에서는 봄마다 삼나무 꽃가루로 인해 알러지가 심하다는 뉴스를 더러 봤을 것이다. 히다카상의 설명으로는 야쿠시마의 삼나무는 그런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신다. 실제로도 우린 아무런 느낌을 못 받았다.
아직도 야쿠시마는 유명한 삼나무 산지인데, 수종보호지역은 산을 중심으로 구분해 놓고 그 외의 지역에 조성한 삼나무밭(?)을 벌목하고 있단다. 그래서 강에는 아직 삼나무 운반선들이 오고가지만 산에 있던 과거의 삼나무 운송용 철도는 그대로 방치되어 관광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새 차를 타고 우리가 처음으로 가기로 한 장소는 ‘야쿠스기랜드’였다.
섬 중앙의 큰 산을 중심으로 남동쪽 능선에 해당하는 곳인데 입장료는 들어가서 볼 수 있는 것들에 비하면 턱없이 쌌다.
차를 길가에 주차해 두면, 매표소 바로 앞에 매점 같은 것이 있는데, 거기 공중전화박스는 통나무로 되어 있었다.

나무 둘레에 기겁을 하지만 입장하고 나면 그 정도 둘레의 삼나무는 심심찮게 볼수 있다. ‘랜드’라는 말이 주는 선입견 때문에 좀 그렇지 않을까 걱정도 했는데 그냥 원시의 숲이었다. 산책로 수준인 30분코스를 비롯해서 50분, 80분, 150분 코스가 있고, 그것과 상관없이 다추다케산(중심 산)으로 가는 등산로도 있어서 시간만 허락한다면 무한정 트래킹도 가능한 곳이었다. 물론 야쿠시마에서 등산을 위해서 '야쿠스기랜드' 코스를 굳이 이용하는 사람을 보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150분짜리 코스를 선택해서 제법 오랜 시간을 산책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여유있는 시간에 만족해 했다.

산책로는 노인이나 애들도 쉽게 걸을 수 있도록 나무 데크로 길을 만들어서 걷는데 수월했고, 등산로도 곳곳에 나무계단이 있어서 등로이라기 보다는 산책에 가까웠다. 중간에 조그만 여자애를 데리고 하산하는 젊은 부부를 보고 있자니, 참 좋은 부모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손을 꼭 잡고 다니는 연세 지긋하신 부부는 이제 갓 '함께'를 결정한 우리들에게 흐믓하면서도 남다른 감정을 주었다.
야쿠시마에 오는 대부분의 이유가 '죠몬스키'를 만나기 위한 등산이라 모든 사람이 꼭 방문하는 곳은 아니지만, 길이 평이해서 오히려 시선을 자연스럽게 주위로 돌릴 수 있어서 여유 있게 사색하기에는 그만이다. 그러면서도 삼나무 원시림을 충분히 경험할 수도 있고... 시골촌놈인 우리들은 연방 사진찍는다고 오후 3시가 다 되어서야 출구로 나오게 되었다.

출구는 입구와 3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나오자마자 정말 한 무더기의 야쿠사루들이 나타나서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그리고 통나무 공중전화가 있는 그 매점 앞에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야쿠시카 한 마리가 유유자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람이 그렇게 가까이 서 있어도 도망가지도 않는다. 혹시 거기 묶여있는 짐승이 아닐까 생각도 했는데, 전혀 그렇지는 않았다. 산으로 난 차도에는 곳곳에 ‘동물주의’ 표지판이 있는데, 여기 동물들은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경계하지 않아 보였다.



고작 3,000년 정도, 말하자면 청장년층 "기겐스기"


고작 3,000년 된 '기겐스기'


우리는 3000년 된 ‘기겐스기’가 있다는 곳까지 가기 위해서 차도를 따라 더 들어가 보았다. 거의 도로가에 있는 이 나무는 높이가 15미터가 넘고 둘레도 장난이 아니었다. 스기랜드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관계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지는 않았지만, 장관이었다.
신기한 것은 기겐스기 주위에 새들을 비롯해서 동물들이 많다는 점. 사루, 시카, 심지어 뱀까지 한 마리 봤다. 오래된 나무라서 신령스런 어떤 기운이 동물들을 부르는 모양이었다.

기겐스기 근처에서 만난 뱀


기겐스기 근처에서 만난 사루


기겐스기 근처에서 만난 시카


스기랜드에서는 사진을 별로 찍지 못했다. 일본은 110볼트라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갔는데, 전날 너무 늦게 숙소로 돌아오는 바람에 정신없이 골아 떨어져서 충전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바야의 똑딱이로만 찍었는데 그것도 좀 아쉬웠다.

원래 계획은 거기서 돌아와서 해변을 따라 차를 몰고 해수욕장으로 갈 생각이었다. 보통 이맘때는 해수욕이 가능할 정도로 날이 덥다고 했는데, 올해는 유난히 더위가 늦다고 히다카상은 해수욕은 안되겠다고 했다.



오다테댐


산길을 따라 드라이브를 즐기다가 어느새 도착한 곳이 오다테댐이었다. 야쿠시마의 전기를 여기서 공급하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댐 낙차나 물의 량이 거대했다. 사실 ‘출입금지’라는 철망이 있어서 댐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바야가 무던히 철망을 넘어서 들어가는 바람에 지나는 차들 망본다고 조금 진땀을 흘렸다. 한마디로 못 말리는 부부였다. 덕분에 거대한 높이의 댐의 민낯을 자세히 볼 순 있었지만.



죠몬스키로 가는 길


다시 길을 따라 조금 더 내려오니 관광차를 비롯해서 차들이 즐비했다. 아무리 비수기라지만 우리가 탔던 비행기에도 그렇고 야쿠시마에 관광객들이 좀 들어오는 편이던데 다들 어디에 있는 걸까 궁금해 했더니, 여기 다 모여 있었다.

죠몬스기로 가는 과거 도라쿠 철로 터널


그곳은 7000년 된 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는 등산로 입구였다. 야쿠시마에 오는 첫번째 목적이라 보면 되리라.

‘도라쿠’라고 지금은 놀고 있는 삼나무 운반용 철도가 시작되는 곳인데, 벌써 하산을 해서 그을린 얼굴로 앉아 있는 많은 등산객들을 만날 수 있었고, 막 도착하는 인원들도 보였다. 등산화는 졸라신었는데 땀 한 방울 없이 낭창낭창 걸어서 이제 막 여길 온 우리를 다들 유심히 보는 눈치였다.

등산화 바람으로 햇반 좀 챙겨서... 다른 그렇게 신혼여행 가지 않나?^^

거기 레인저들이 무슨 설문조사지를 주면서 해달라는데... 회화도 힘겨운데 설문지는 어림도 없지 않는가. 대충은 레인저들의 활동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는 내용인 듯 했다.

사실 히다카상이 등산코스에 대해서 조금 겁을 줬었다. 시간도 8시간 정도라고 했고, 죠몬스기하나 보려고 그 시간을 투자한다는 게 좀 걸리기도 했거니와 나 혼자였다면 당연히 갔겠지만, 신혼여행을 이렇게 촌구석으로 데려온 것도 겨우 달래고 얼러서 정한 건데, 산을 타고 난 이후에 그 원망을 감당할 수 없을 듯해서 포기 했던 거였다. 그런데 등산객 중에는 중년을 비롯해서 나이 많은 할머니들도 보였으니... 아까웠다. 그렇다고 다음날 등산으로 하루를 소비하고 바로 가고시마로 간다는 것도 그렇고 해서... 7000년 된 나무는 사진으로만 만족해야 했다.


아쉬워야 또 오지!

다시 안보항 쪽으로 돌아왔다. 내려오는 길, 마침 출출했던 차에 어제 지나가면서 봐두었던 우동가게를 다시 지나게 되었다. 허름하고 작은 가게였는데 손님은 없이 고양이들이 늘어지게 자리를 잡고 잠들어 있었다. 온통 삼나무로 지어진 집이었다. 아주머니가 반기긴 했으나, 되는 것이 몇 개 없다고 하셨다. 우리는 그냥 우동을 달라고 했다. 텔레비에 더빙된 우리나라 연속극이 나오고 있었다. 한국에서 왔다는 것을 알고는 시킨 것보다 비싼, 생선을 얹은 우동을 가져다 주셨다.
우동맛 정말 죽였다.
바깥 분은 안계셨는데, 취미로 삼나무 공예를 하시는 듯 했다. 여기저기 완성되거나 완성되기를 기다리는 공예물들이 잔뜩 놓여 있더라.
저녁을 먹기 전에 시간이 좀 있어서 다시 나갔다. 이번에는 동쪽 해안을 따라서, 공항을 지나 미야노우라 강 쪽으로 갔다.

가다가 여기 저기 시가지를 둘러보고 가게에도 들어가서 과일도 조금 샀다. 여기서는 흔한 바나나와 망고. 그래도 역시 일본이라 가격은 비싸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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