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5.31
여행기간 : 2006.05.29 - 06.02
작성일 : 2006.07.07
동행 : 같이 살아 주시는 여자분
여행컨셉 : 신혼여행을 빙자한 백패킹 + 렌트카 여행
미야노우라항은 섬의 북쪽인데 다음으로 간 곳은 최남단에 있는 ‘센피로폭포’였다. 지도상에는 ‘지히로폭포’라고 되어 있는데, 두가지로 부르는 모양이었다. 전날 밤에 봤던 오코폭포와는 또다른 맛이 있었다.
하나의 거대한 바위경사면으로 떨어지는 폭포수의 낙차는 오코폭포 만큼 크지 않았지만 조망할 수 있는 규모가 더 컸고, 그 위에 또 폭포가 있어 2단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관광객이라고는 우리 밖에 없었다. 그 모든 것이 우리를 위해 히다카상이 준비해 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비가 살짝 날려서 얼른 돌아와야만 했다.
차는 계속 달렸다. 유도마리온천도 지나서 나카마라는 마을로 갔다. 뭐라고 설명을 해도 잘 못알아들으니 아저씨도 일단 무조건 목적지부터 가버렸다. 벵골보리수라는 것이 있었는데 나뭇가지가 땅을 보고 거꾸로 자라나서는 땅에 박혀서 뿌리를 내리는 독특한 식물이었다.
슬슬 배도 고프고 이제 정말 돌아가야만 했다. 그러나 아저씨는 하나라도 더 야쿠시마를 보여 줄 욕심으로 도로키폭포로 또 데려갔다. 바다로 바로 떨어지는 폭포인데, 아저씨는 ‘키모로 타키’라고 불렀다.
관망하기 좋은 위치로 우릴 데려가는데 해안쪽으로 난 좁은 소로를 걸어들어가서 출입금지라는 푯말을 넘어야 했다. 아저씨도 개의치 않았고... 물론 우리도 그런 쪽으로는 풍부한 경험이 있어서... 별 거부반응은 없었다. 그래서 도달한 곳은 바로 바닷물이 닿는 곳이었는데 규모는 작지만 숨겨져 있는 보석같은 폭포였다. 낙조의 바다도 아름다웠다.
올라와서 바로 길건너에 도농간 농산물 교류장 건물이 있었다. 간단하게 둘러보았는데 신선한 야채, 과일들이 많았다. 우리가 생과일쥬스를 시켜서 대접했더니 야쿠시마산 파인애플을 하나 사서는 우리를 주신다.
이걸로 오늘은 끝... 아니죠.
돌아오는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어딘지 정확하게 모르는(히다카 상 덕분에 과도한 일정 소화하느라 사실 집중력이 흐려지고 있었던 게다) 운동장으로 안내되었다. 야쿠시마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이라는데 축구장 4개도 들어갈 잔디밭과 테니스장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는 도라쿠(삼나무운반용 철도의 화물차를 여기선 그렇게 부른다)가 세워진 곳으로 가서 멀리 보이는 안보강 상류의 붉은색 구름다리도 보았다. 첫날 드라이브차 갔던 곳이었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 본 계곡도 좋았는데, 다리자체도 아름다웠다.
다시 차를 몰고 간 곳은 ‘단깡’농장.
조금 낯익은 곳이었다. 자세히보니 온천을 하고 밤에 서리했던...
주인아저씨도 계셨다.
범인은 반드시 범행장소에 다시 온다?
농사일로 깡마른 아저씨가 장화바람으로 히다카상과 인사를 했다. 둘은 아주 막역해 보였다.
농장주는 우리를 망고, 패션후루츠(듣도 보도 못한 과일이었다)가 자라고 있는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었다. 어딜가나 '최지우 상' 한마디면 다 통했다.^^
우리가 사진도 찍고 꽃밭(임파첸스도 작물로 기르는 것이라고 했다)도 구경하고.
둘러보는 사이... 안된다고 웃으며 만류하는 주인을 따돌리고 또 앞섶에 가득 ‘단깡’을 들고 오는 히다카상이 보였다. 그렇게 황급히 차를 타고 뒤에서 고개를 저으며 웃으시는 주인장의 배웅을 받으며 농장에서 떠났다. 히다카상은 이 동네 개구장이 악동?
하루종일 우리 때문에 고생하신 히다카상도 조금 피곤해 보였다. 고마움을 표시할 겸 외식을 대접하고 싶다고 제안을 했더니 ‘시오노가오리’라고 유명하다는 선술집겸 초밥가게로 안내했다.
영화 ‘킬빌’에서 처럼 일본의 초밥집은 들어서면 회칼 들고 있는 주인장이 큰 소리로 사람을 놀래킨다.
“이랏사이... 오, 히다카상.”
역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아저씨.
식사는 화려했다. 섬앞에서 잡아온 사바(고등어, 사바사바-뇌물의 어원이란다) 스시(여기는 고등어가 제일 비싼 고기란다. 날치가 가장 흔하다니...)며, 숙주나물무침, 어린마늘순으로 만든 초무침, 다코야끼(한국에서 먹어 본 것 보다 맛있다고 하니, 나중에 만드는 법도 써 주셨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튀김에 초밥까지 나왔다.
우리 둘에게만 초밥이 왔길래 히다카상이 미안해서 자기 꺼는 안 시켰구나 생각하고 바로 일하는 아가씨를 불러 하나 더 달라고 했다. 처음부터 아저씨가 주문을 했고, 시킨 메뉴가 어떤 건지 잘 몰라서 두 개만 시켰는지도 나중에 알았다. 그리고 시원한 정종도 한 잔했다. 따뜻하게 먹는 것이 있고 시원하게 먹는 것이 있는데 여기는 그게 유명하다고 해서 먹었다. 그래도 역시 정종은 따뜻한 게 나은 듯.
히다카상은 그 종업원아가씨한테도 최지우상이 어쩌구저쩌구 그러더라. 불쌍한 야쿠시마 사람들. 최지우 실제 얼굴을 잘 알기에, 다들 영혼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그 아가씨가 우리 동생을 닮아서 깜짝 놀랐다. 같이 사진을 찍으면서 얘기했더니,
그 말에 고맙다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드디어 패션관에 도착했다. 사위는 벌써 어두워졌고...
우리는 히다카상과 함께 식당으로 들어가서 술을 한 잔 더 했다. 식당에는 남정네 두 분이 식사 중이셨다. 히다카상의 성격으로 봐서 막역하게 지내는 이웃이리라. 길에 다니면서 아무한테나 우리가 한국에서 온 신혼부부이고 신부는 최지우를 많이 닮았다고 소개를 하시는 것으로 봐서는 큰 자랑거리라도 되는 듯이 보였을 정도니까, 최지우상 보러 오라고 불렀는지도 모른다.^^
아리무라 아줌마는 여전히 한국어공부 삼매경.
언제떠나느냐. 배표는 예약을 했는냐 등을 우리말로 물어셨다. 히다카상과 함께 술한잔하는 동안에도 주방에서 계속 공부중이셨다.
고구마로 만든 소주에 뜨거운 물을 타서 먹어보라고 주었는데 별 맛은 없었다. 다만 분위기에 취해서 술맛도 모르고 넙죽넙죽 받아먹고 조금 취했나 보다. 우리 방으로 건너가서 사가지고 갔던 ‘천국’을 들고 와 모두에게 대접했다. 히다카상은 술을 드시지 않았지만 식사중이시던 두 분은 맛이 좋다고 하시면서 잘 드셨다. 자연스럽게 양국의 음식 얘기가 화제가 되었고, 주방에 계시던 아주머니도 들어와 앉으셨다. 우리가 가지고 온 멸치조림에 육장, 깻잎장아찌, 김치를 다 드렸다. 어차피 내일 아침 떠나면 호텔로 갈 테니 우리에게는 짐이기도 했다. 신기한 듯 맛도 보시고... 그렇게 시간이 많이 흘러버렸다.
숙소로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웃의 험상궂게 생긴(하지만 순둥이 아저씨) 미야자키상이 방문을 두드리며 "똑똑"(신혼 여행이라면 으례 동네사람들이 아무때나 그러는 거지 뭐...).
사진을 찍자고 청해서 그렇게 한 번 더 흰 런닝의 아저씨도 볼 수 있었다.
술 많이 먹는다고 핀잔 주는 바야가 그렇게 미워보이지 않았다. 따뜻하고 좋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