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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배 Dec 26. 2024

너는 나의 별이야

[리보와 앤] 독서논술 수업일기


도서관을 배경으로 한 책을 펼쳤다. 책 제목은 "리보와 앤." 아이는 천천히 책 표지를 손끝으로 쓸었다. 나는 아이에게 조용히 물었다.

"우진아, 이 책에서 배경이 되는 공간은 어디일까?"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도서관이요."

"맞아. 도서관. 공간적 배경은 도서관이지. 그런데 시간적 배경은 어떨까?"

아이의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그러더니 곧바로 말했다.
"도서관이 열려 있는 시간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도서관이 열려 있는 시간에 일어나는 이야기야. 그런데 이 도서관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사람들이 못 와요. 플루비아 바이러스 때문에요."

나는 아이의 대답에 귀를 기울였다. 플루비아 바이러스라는 설정이 아이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왔다. "플루비아 바이러스라... 뭔가 떠오르는 거 없어?"

잠시 생각하던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코로나 같아요. 그때는 사람들 많이 못 만났잖아요."

"맞아. 코로나19와 비슷하지. 우진이는 코로나19 때 몇 살이었어?"

"음... 잘 기억 안 나요. 아마 유치원 다닐 때요."

코로나라는 단어가 아이에게 그렇게 깊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아이는 마스크를 썼던 기억을 이야기하며, 마스크를 쓰는 게 얼마나 불편했는지를 덧붙였다.

"그래도 많이 써보니까 익숙해지긴 했어요."

그 대답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책을 읽으며 33쪽에 다다랐다. 나는 아이에게 책을 넘기며 말했다. "우진아, 여기 이 문장 한번 읽어볼래?"

아이의 목소리가 책 속 문장을 따라 천천히 흘러나왔다.
"난 가만히 앤을 바라보았다가 가로등 불빛이 비치는 창가로 갔다. 까만 밤을 아르네 별이 있었다. 뒤를 돌아봤다. 깜깜한 도서관에 앤이 있었다. 어둠 속에 떠 있는 별처럼 앤이 있었다."

책을 덮은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물었다.
"이게 무슨 뜻일까?"

아이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가, 이내 자신 있게 말했다.
"앤이 별 같다는 뜻이요. 까만 도서관이 밤이고, 앤이 별이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볼 수 있지. 그런데 별이라고 하면 어떤 느낌이 들어?"

잠시 생각하던 아이는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행성이요."

나는 웃음을 참으며 되물었다. "그럼 누군가 우진이한테 '너는 나의 별이야'라고 말하면, '너는 나의 행성이야'라는 뜻이야?"

아이도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건 좀 다른 거 같아요. 별은 특별하니까요."

우리는 함께 책의 다음 장을 넘겼다. 나는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그런데 로봇인 리보가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아이의 시선이 책으로 돌아갔다. 책에서 '감정 센서'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아이는 단번에 손가락으로 문장을 짚었다.

"여기요! 감정 센서가 있대요."

"맞아.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센서가 있다고 했지. 그럼 리보는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아이의 목소리가 자신감 있게 울렸다.
"네! 여기 보면 감정을 느꼈다고 나와요."

아이의 손끝이 책의 다른 문장 위로 옮겨갔다. "왼쪽 가슴에서 진동이 울렸다고 했어요. 그게 감정이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리보도 감정을 느낄 수 있네."

책을 덮으며 아이는 말했다. "그래도 리보가 앤을 좋아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그냥 친구 같아요."

나는 아이의 말에 동의했다. "그렇지. 리보와 앤은 서로 친구야. 꼭 사랑하는 사이라고 할 필요는 없지."

수업이 끝날 무렵, 나는 우진이에게 물었다. "우진아, 이 책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문장은 뭐야?"

아이의 눈빛이 반짝였다. "너는 혼자 있으면 안 돼. 그건 엄청나게 무서운 일이거든. 이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 문장이 이 책에서 정말 중요한 문장이지."

아이와 함께한 이 시간이 나에게는 별처럼 반짝이는 순간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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