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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휘 Feb 03. 2022

손가락 틈으로 빠져나가는 기분이야

딸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아빠의 마음이란

헤어졌대”

아내가 하늘이의 이야기를 전했다.

4년 넘게 사귄 남자 친구와 헤어졌단다.

백미러로 하늘이의 모습을 살짝 훔쳐봤다.

딸아이의 표정은 덤덤해 보였는데,

막상 내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차 안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지는 기분이다.

잔소리 들을 각오를 하고

아이코스 담배 한 대를 꺼내 물고

차창을 조금 내렸다. 바깥바람이 차다.




"그래, 그 친구가 좀 답답하긴 했어" 하늘이가 (불과 며칠 새 '전남친'이 되어버린) OO의 단점을 늘어놨고 나는 맞장구를 쳐줬다. 그래 맞아, OO가 뭐 엄청 똑똑하거나 눈치가 빠르거나 머리가 영민하진 않았지. 결정이 빠르고 결단력이 있어서 리드를 하는 타입도 아니었어. 주관이 뚜렷하고  말솜씨가 있어서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펼쳐 놓지도 못했고, 그래서 자신의 의견을 말해야 하는 순간에는 늘 진땀을 흘리곤 했어.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한참을 주저하다가 답답한 마음에 내가 먼저 침묵을 깼다. 오랜 시간 동안 고민을 하다가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란다. 그래, 그래도 4년이라는 시간이 있지, 막상 헤어진다는 결정을 내리기가 하늘이라고 그리 쉬운 일이었을까.


우리 부부는 그 아이를 참 좋아했다. 인사성 하나는 그 누구보다 좋았다. 언제나 보자마자 고개를 한참 숙여 "어머님, 아버님 안녕하세요" 큰 소리로, 깍듯한 존댓말로 인사를 했다. 짜장면 한 그릇을 같이 먹어도 너무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거른 적이 없었고, 밥을 먹다가 나나 아내가 이야기를 꺼내면 늘 수저를 내려놓고 이야기를 들었다. "애가 밥을 못 먹잖아, 밥 다 먹고 이따가 좀 말 시키라고" 서로 핀잔을 주면서도 귀를 쫑긋 세우고 우리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OO의 모습이 너무 좋았다.


"하늘이 성질이 웬만해야지 말이야" 우리는 하늘이 몰래 그 녀석 편을 들기도 했다. 가끔 둘이 다투기라도 한 날에는 톡으로 OO에게 따로 위로도 해줬다. 누굴 닮아서 그런 건지 (정말 몰라서 이러는 건 아니다...) 고집도 세고, 자기주장이 유난히 강한 하늘이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으면 잘 못 참는다. 그런 점에서는 나나 아내나 어디 가서 뒤지지 않으니. 그런 하늘이 의견을 늘 찬찬히 들어주고 따라주려고 애쓰는 OO이 참 고마웠다.


제주도, 강릉, 강화도.. 또 어디였지? 아, 홍천으로 글램핑도 같었구나. 그래, 같이 여행도 참 많이 다녔다. 맛난 음식을 하면 꼭 불러서 같이 밥을 나눠 먹었고 생일도 챙겨주고. 집 식탁 위에 못 보던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 케이크나 (아내가 좋아하는) 마카롱 같은 게 보이면 미소가 떠올랐다. "하늘아, 이거 누가 사 온 거야?" 역시나 어디 놀러 갔다가 OO이 사줬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들이 없어서 그런 건지 속으로 딱 이런 아들 하나 있으면 좋겠다 싶었던 적도 있었다.


재작년 추석이었던 것 같다. OO의 부모님이 보내준 명절 선물이 솔직히 처음엔 조금 당황스러웠다. 두 분 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양평에서 다른 사업으로 인생 제2막을 시작하셨다는 소식도 알고 있었고, OO의 부모님이 하늘이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아끼신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었다. 샤인 머스켓 포도 한 박스를 사들고 양평을 찾았다. 두 분 다 참 선하다. 첫인상이 그랬고 그 이후로 몇 번의 만남에서도 늘 따뜻한 마음과 인자함을 느꼈다. OO 이는 부모님을 많이 닮았구나.




“ 어, OO아... 잘 지내지?

하늘이한테 이야기 들었어.."

설 날 저녁 시간 휴대폰에 OO의 이름이 떴다.

헤어진 전 여친의 부모에게 명절이라고 전화를 한다?

나 같으면 절대 이렇게 못한다.

아 이 녀석이 정말...

목소리는 자꾸 잠기고, 말을 이어가기가 힘들다.

아내가 전화기를 건네 달라고 하네. 다행이다.

전화기를 붙들고 있는

아내의 눈가가 촉촉해지고 있는 걸 지켜보다가

나도 따라 울컥할까 싶어 침을 삼켰다.

고개를 돌려 허공을 바라봤다.

"응, 그래 건강하게 잘 지내고

언제 한번 보자꾸나"

다시 볼 일이 있을까?




우리는 "마음이 아프다"는 표현을 은유적 표현이라고 배웠다. 문턱에 발을 찧어 눈물이 핑 도는, 그 아픔을 사전적 정의로 "아프다"라고 배웠다. 영어도 다르지 않다. "Heartache"는 heart와 ache(통증)의 조합이지만, 가슴이 아프다(chest pain)는 뜻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면 그게 heartache다. 하지만,  <Psychology Today>의 기사(https://www.psychologytoday.com/intl/blog/the-mindful-self-express/201603/is-your-brain-breakup)가 전하고 있듯이, 많은 뇌과학 연구를 통해 이제 우리는 사랑의 상처로 느끼는 아픔이 손가락을 다쳤을 때 느끼는 신체적인 아픔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잔인한) 콜롬비아 대학교의 연구진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원치 않는 이별을 한 실험 대상을 모아 놓고, MRI 기계에 누워 있는 (불쌍한) 이들에게 전 남친/여친의 사진을 보여줬다. 그렇게 얻은 fMRI 뇌 스캔 사진을 신체적인 고통을 느끼는 사람의 뇌 스캔과 비교했다. 역시나 똑같은 부위가 점화됐다. 그러니 "마음이 아프다"는 표현은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건 손가락을 베이는 것만큼 실제로 아픈 거다.


(아,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감정도 전염성이 있다. 인류가 무리를 지어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타인의 감정을 공유하는 능력은 생존에 매주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사나운 맹수의 울음소리를 먼저 듣고 공포에 떨고 있는 옆 사람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공감하지 못한다면 배고픈 사자의 저녁 식사 테이블에 올라갈 확률이 훌쩍 올라갔을 것이다. <공감은 지능이다>의 저자 자밀 자키는 공감을 조금 더 자세히 분류하고 있는데, (1) 다른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인지하는 것(인지적 공감), (2) 그들의 감정을 함께 느끼는 것(정서적 공감), (3) 그들의 경험을 개선하고 싶은 마음(공감적 배려)이 그것이다. 공포에 떨고 있는 옆 사람의 감정을 알아차리고(인지적 공감), 나도 함께 공포를 느끼고(정서적 공감), 나 혼자 도망가는 게 아니라 옆 사람의 어깨를 흔들며 정신 차리라고, 같이 도망가자고 알려주는(공감적 배려) 것 까지가 모두 작동해야 진정한 공감이다. 인지적, 정서적 공감에 그치면 다쳐서 울고 있는 아이를 보며 나도 따라 울고 있는 것과 같다. 같이 따라 울 때가 아니라 우는 아이를 먼저 달래주고 다친 상처를 치료해줘야 한다. 안다. 아는데... 그런데, 아무리 책을 많이 보고 공부를 해도 막상 하늘이가 아프면, 하늘이와 OO의 마음이 아프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냥 따라서 아프다. 이게 참...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하루하루가 놀라움과 기쁨으로 가득 찼던 순간들도 있었다. 처음 옹알이를 하고, 몸을 뒤집고, 걸음마를 하고, "아바바" 아이가 처음으로 나를 부르고. 안타깝게도 (인생의 모든 기쁨의 순간들이 그렇겠지만) 환희의 순간은 너무 짧다. "훅~" 하고 사라져 버린다. 어느새 또박또박 말대꾸를 하기 시작하고, 고집을 피우고, 급기야 소리를 버럭 지르더니 방문을 쿵 닫고 들어가 버리는 날도 온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청소년기 뇌에 관한 연구들을 많이 봐서 왜 그러는지는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생글생글 웃기만 하던 하늘이가 갑자기 이러는 건 아무래도 이해가 안 됐다. 중2병이 괜히 중2병이 아니더라. 고3이 지나면, 대학생이 되면 얼굴을 좀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는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코로나 덕분에 학교도 안 가고 온라인 수업만 한다는데 대체 뭐가 이리 바쁜 걸까? 오랜만에 같이 밥을 먹다가 (속으로만) 깜짝 놀란다. 머리 색깔은 대체 언제 이렇게 바뀐 거지? 왜? 궁금하지만 물어볼 수도 없다. 언제...라고 물어보면 또 나만 관심 없는 나쁜 놈이 되니까. 늘 지나고 나면 그때가 좋았는데, 아이를 키우는 일은 떠나버린 열차 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듯한 아쉬움의 연속이다. 그러다 이런 순간도 온다. 딸아이와 헤어진 남자 친구 녀석을 떠올리며 설날 저녁 부부가 몰래 눈물을 훔치고 있는, 그런 순간 말이다.




음악으로 먹고사는 입장에서 ABBA의 음악을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데는 사실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백스트리트 보이스부터 브리트니 스피어스, 그리고 지금의 K-POP까지 사실 전 세계 팝 음악을 먹여 살리고 있는 스웨덴이지만 그 모든 출발선에는 ABBA가 있었다. 음악성... 같은 거 따지려 들지 말고 그냥 멜로디에 귀를 맞기고 가사에 마음을 열고 듣다 보면 아바의 음악은 그냥 좋다. 화려한 프레젠테이션에 독특한 조리법으로 완성된 오마카셰나 미슐랭 투스타 레스토랑의 요리는 아니어도, 배가 고프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맛집 같은 음악이다. 10살쯤 되었을까 용돈을 받고 처음 레코드 가게에 가서 샀던 '카세트테이프'가 아바의 히트곡 모음집이었다. 그리고 그런 아바의 노래로 만들어진 주크박스 뮤지컬 <Mamma  Mia>는 메릴 스트립과 아만다 세이프리트, 투 톱 주연으로 2008년 영화로 만들어졌다. 지중해의 멋진 풍광과 아바의 흥겨운 디스코 트랙들은 참 잘 어울렸다.  


https://www.youtube.com/watch?v=2a6viOdDf9w


추석 특선이었는지 설날 특선이었는지 티브이에서 영화 <맘마 미아>를 다시 보게 됐다. 하늘이가 중학생쯤 되었을 때였나. 결혼식 전 날 메릴 스트립이 딸아이의 방에 들러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아이가 자라온 모습을 회상하며 부르는 노래다. <Slipping through my fingers>, 노래의 제목이다. 유치원 소풍이었나? 내 손을 꼭 잡고 있는 하늘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 어떤 순간이 오면  하늘이도, 하늘이와 함께 했던 모든 추억도 손가락 사이 틈으로 사라지듯 내 곁을 떠나겠지.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중학생 하늘이를 두고 대체 언제일지도 모를 하늘이의 결혼식, 그 전날 밤을 미리 떠올리는 건 또 뭐지.


24살 하늘이, 또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그러다 또 헤어지고 그럴 거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흐르다 보면 웨딩 마치를 따라 내 손을 잡고 발맞춰 걷고 있는 순간이 오겠지. 마주 잡았던 그 손을 건네는 순간, 그 순간을 떠올리게 되면 늘 다짐을 한다. 절대 울지 않을 거야. 아니 결국 엉엉 울지도 몰라. 그건 아마도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라서, 아바의 노래가 귓가에 맴돌아서 그런 걸 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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