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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i Kim Nov 25. 2020

언더독이 한바탕 울고 나면

5개월짜리 프로젝트를 망쳐버렸다

회사 생활이 구겨져버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


잘 풀어 보면 쉽게 풀리기도 하고, 어쩔 때는 도저히 손을 댈 수 없을 만큼 잔뜩 꼬여서 그대로 엉망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참 이상한 일이다. 처음 입사할 때의 (주로 근거 없는) 자신감, 철썩 같이 지켜낼 것 같은 워라밸, 일과 삶의 구분, '깨끗하고 온전한 상태의 나' (나는 이 업무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하지만 알려만 준다면 이 비상한 습득력으로 선배님들을 놀랠 수 있어요. 테스트해보세요, 라고 할 정도의 당돌함)는 어디로 가고, 찌들고 멍들고 구겨지다가 결국 문제를 풀 수 없는 멘붕 상태에 도달하고 만다.


그래서 입사 3년 차, 5년 차 7년 차 마케터나 개발자가 전하는 훌륭한 글이나 강의들을 보면 감탄부터 나오게 된다. 저렇게 깨끗하고 온전한 상태로 저 수많은 세월을 보냈다고? 그것도 훌륭한 성과와 민첩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제시하면서? 그냥 참고 견딘 게 아니라? 어려움에 부딪혀 넘어져본 게 아니라?


사람들은 생각보다 이분법적 사고를 습관적으로 한다. 나 역시 그렇다. 초등학교 때는 스케줄러에 오늘은 운수 좋은 날, 다음날은 운수 나쁜 날, 이렇게 동그라미와 엑스자 표시를 그려 넣곤 했다.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알게 모르게 습관이 되어 성인이 된 지금까지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잘 해왔는데, 이번엔 망했어. 이번 (회사에서의) 생은 망했어. 자책하고 무너진다.


거의 5개월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일시 중단됐다.

그것도 여러 사람과 협력하는 가운데 나에게 전적으로 임무가 주어졌던 프로젝트다.

그래서 '나 때문에'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속상하고 분하고 자존심도 상하고... 그런데 그런 것보다 더 마음이 아팠던 건 '내가 그렇게 못났을까'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결국 증명해 내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프로젝트의 A to Z를 책임지던 사람에서 A와 Z를 담당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 사이의 무수한 bcdefghtij....가 나에게는 무척이나 소중했는데. 정말 끝까지 잘 해내고 싶었는데.

내가 그렇게 못났나? 그렇게 무능력하나? 정말 상사의 말마따나 한계에 봉착한 걸까?

그 말을 들으며 수긍하면서도 어찌나 오기가 생기던지. 질질 짜거나 속상함을 다 표 내고 다니기에는 너무 어른이 되어버려서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게 이 일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나에게 맡겨진 새로운 일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힘이 빠졌다. 그건 어쩔 수 없었다. 스스로를 일에 갈아 넣었던 모든 시간들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나를 움직였던 에너지가 한꺼번에 빠져나간 것 같았다. 동기 부여에서 점점 멀어지는 게 느껴졌다.


신뢰하는 한 선배에게 잠시 시간을 빌려 달라고 했다.

그리고 코로나가 2단계로 격상해 금방 쫓겨나야 할 카페 안에서, 얼마나 펑펑 울었는지 모른다. 난 스물여덟이나 먹었는데 쪽팔리게.

하지만 선배가 해준 조언들이 그 어떤 공감과 위로보다 도움이 됐고, 나는 생각의 전환을 조금은 할 수 있게 됐다.


그의 말을 요약하자면,"그대는(즉 나는) 잘못이 없다"다.

1년 전 상사가 던진 업무를 언제나 근자감이 넘치는 나는 덥석 물었고, 그렇게 힘들어하면서도 어쨌든 소정의 결과물을 냈고, 그게 우리 큰 프로젝트의 첫 단추가 되어 주었다. 그 성과는 무시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후의 성과는 미미했고 시간은 자꾸 흘렀다.

나는 그래도 안일하게 '하면 되겠지' 마인드로 열심히 했다.

정말 열심히 했다.

그런데 회사는 열심히만 하는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건 비단 우리 회사뿐만 아니라 모든 회사에 적용되는 이야기다. 오히려 나에게 최상의 조건을 제공해주었던 우리 회사에 감사하다.


그가 전한 또 하나의 조언은 "일은 일"이라는 것이다.

일에 과몰입해, 그것이 마치 나의 전부인  생각하고 행동하기 시작하면, 나는  세계에 갇히게 된다. 그것도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일 때 그런 상황을 겪으면 더더욱 위험해진다. 나라는 개체 안에 단단한 심지 같은 자아는 없고 회사와 연결된 헐렁헐렁한 자아만 남게 되니까.

그리고 실력 없는 자존심을 부리기 딱 좋으니까.


나는 이번 일로 좀 내려놓게 된 것 같다.

많이 속상했고 좀 울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 브랜드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많고 갖다 바쳐야 할 노력도 많다.

내 상사는 열심히만 하면 안 돼, 잘해야 돼, 라고 자주 말하는데 내 생각은 이렇다.

잘하려면 열심히 해야 한다고. 열심히가 충족되지 않으면 결코 잘하는 경지에 오를 수 없다고.


요즘 자기 부스팅이 되는 유튜브 강의들을 찾아보고 있는데, 어떤 억만장자가 이러더라.

자수성가형 부자들은 모두 자기의 일을 정말 잘한다고. 그런데 그 상위 10%의 사람들은 언젠가 모두 하위 10%의 사람들이었다고.


그러니까, 나의 이야기다. 하위 10%가 상위 10%로 올라가기 위한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다.


성장통은 키 클 때만 있었으면 좋겠는데, 나이가 들어서도 이런 경험을 주는 세상이 조금은 야속하다.


그래도 좋은 점은 있다.

이 사건은 나에게 자극이 되었다.


퇴근 후의 나는 세컨드 데일리 라이프를 살고 있다.

스트레칭하고, 영어 공부하고, 내가 프로젝트에서 죽을 쒀 놨던 글을 다시 쓴다.

회사와는 별개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평가받고 성장하기 위한 조치다. 자기 계발이라면 자기 계발이고.

지금 피곤함을 무릅쓰고 이 브런치에 끄적거리는 것도 요 자기 계발의 일환이다.


나는 성과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난 마르크스주의도 아니고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두둔하는 것도 아니지만, 상위 1%의 사람이 재능을 인정받고 사회의 권위라든가 인간적 대우를 받을 권리라든가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까지 모두 쟁취해가는 시스템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회의 다수는 중간자거나 꼴찌니까.

나 같은 이 꼴찌들이 충분히 보람을 느끼면서 스스로를 성장시킬 방법을 찾고 싶다.


있을 것이다.

그걸 우리는 다른 말로 기업 문화라거나 셀프 부스팅이라거나 퇴근 후 또 다른 자아 찾기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난 그걸 하고 싶다. 일과 삶이 내외하는 부부 같은 사이가 되는 것.

일과 삶이 일치되는 완벽한 유토피아를 경험할 수만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아직 그럴 능력이 안 되기에

일은 일대로, 내 삶은 삶대로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위 10%가 어떻게 상위 10%가 되는지 꼭 보여 주고 말 거다.

이번 일이 나의 객기를 건드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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