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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i Kim Feb 09. 2020

OK!Ready, set, go!

가라사대 너 자신의 스타일을 알라

조직 변화가 있었다.

기존 사업부와 신사업부, 마케팅팀, 매니지먼트팀, 경영지원팀으로 네 개의 조직도가 완성됐다. 이와 함께 전사적인 OKR(Objective, Key Results)이 도입됐다. OKR은 연간, 분기, 월, 주별 목표와 이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핵심 결과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문자 도표다.


핵심 결과는 말 그대로 '결과'를 나타내야 하기 때문에 5개 이하의 측정 가능하고 구체적이며 마감이 결정된 문장으로 설정해야 한다. 예컨대 IT기업의 KR이라면 '프리미엄 버전을 2020년 4월 1일까지 출시한다'가 된다.


회사는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OKR 모드로 전환됐다. 신사업부에선 새로 벌려놓은 일들이 많았다. 우선순위를 매기고, 각각에 대한 OKR을 정하는 데 2주가 걸렸다. 아직 OKR을 시작도 못한 사업 분야도 있다. 입에 단내가 날 만큼 회의에 회의에 회의를 계속했다.



‘인생에서 가장 치열한 60일을 보낸다.’


우리 팀의 목표다. OKR을 정하고 일주일이 흘렀다. 회사 안에서 나름 열심히 살았으나 정말 치열하게 살았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적당하게 치열하게 살았다.


꼭  그렇게까지 일을 해야 하냐?


친구들을 만나 OKR 얘기를 하면 이런 질문을 받는다. 회사는 그저 돈 주는 곳이지만,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넘기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열심히 한다는 애도 있고, 책임감이 좌우명이라 루팡이 될 수는 없고, 그런데 상사 선생님이 문제라며 한숨을 푹푹 쉬는 친구도 있다. ‘치열한 일터’는 개뿔, 당장 회사에서 하는 일이 인생에 도움이 되는지도 모르겠다고 고민의 파도에 빠졌다가 허망하게 일중독의 짠맛만 마시는 친구도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동감이 되는 부분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언제든지 팽 당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혼자서 치열했다가 똥쌀 수도 있다. 회사에서의 성공이 인생의 성공을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정체성을 가진 라이프스타일의 시대라고들 하지 않나. 회사원으로서의 자아는 수많은 자아의 하나일 뿐이라고.



또 둘러보면 기본적인 의식주를 제외한 모든 시간을 일에 쏟아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몰입해 일하고 주 40시간 이외의 시간을 알뜰하게 지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정답은 없다. 전자처럼 한다고 일 잘하냐. 후자처럼 한다고 월급 루팡이냐.


결국 스타일의 문제다. 확실한 것은, 내가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선호하는지 알고 나만의 업무 스타일을 세팅해 실행하는 것이다.


OKR을 논의하는 2주 동안 유의미한 지표들을 얻을 수 있었다. 먼저 이 사업의 목적이었고, 그다음은 이 일이 나에게 중요한 이유였다. 나는 왜 이걸 하는지, 그래서 내가 얻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회사의 목표를 개인의 목표와 연결시킨다는 OKR의 취지를 성공적으로 이행한 셈이다. 그리고 뜻밖의 정보를 하나 더 얻을 수 있었는데 일을 하며 내가 느끼는 즐거움의 지점이었다.


나는 회사의 일이 즐겁다. 신사업부에서 진행 중인 애니메이션 시놉시스를 구상하고 아티스트의 앨범 프로모션을 기획하고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성과를 내기 위해 달리는 일이 즐겁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도록 회의를 하다가 급기야 아무 말이 튀어나오다가 과자를 사러 우르르 편의점에 몰려가는 것도, 혁신하자며 어딘가에서 비닐 전지를 사 와 뚝딱 OKR 로드맵을 가내 수공으로 만드는 것도.



OKR로 시작된 회의가 아니었다면, 일과 나의 상관관계 따위는 고려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장 성과를 내기 위해 움직이는 게 중요했을 테니까. 하지만 OKR을 정하겠다고 탁자에 앉아 머리를 싸매는 동안 중요한 것을 얻었다. 앞으로 일을 하면서 멘붕에 빠지거나 현타가 올 때마다 방향타를 조종해 하늘을 나는 파일럿처럼, 경로 이탈 없이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쏘아질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내 옆에 동료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그들은 고통과 기쁨을 분담하고, 서로를 채찍질하고 독려할 스포츠 팀이다. 이 모두가 치열하게 일하겠다는 목표 설정이 가져다준 교훈이다.


다시 한번 지난 일주일을 치열하게 살았느냐고 물으면 그렇지 않다. 아무래도 반성을 좀 해야겠다. 회사가 나의 인생을 책임져주는 것은 아니지만, 내 커리어와 즐거움의 상당 부분을 책임져주는 것은 사실이니까, 나는 우리의 OKR에 책임을 다할 이유가 있다. 나의 라이프스타일이자 업무 스타일은 세상에서 가장 치열한 60일을 보내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지금처럼 즐거운 업무 현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먼 미래에 얽매여서도 안 되고(회사가 나의 인생을 책임져주진 않아!라는), 과몰입으로 지쳐서도 안 된다(할 일이 산더미라 도무지 쉴 수가 없네. 하루빨리 모든 일을 부러뜨려겠다!는). 그리고 동료를 사랑해야 한다. 머리를 차갑게 하고, 우리 팀의, 나의 OKR을 진심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치열한 60일을 보내기 위한 나의 OKR은 KR로 가득하다. 잘 정돈된 수납장처럼 그 KR들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정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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