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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i Kim Dec 17. 2019

직장인도 예술가처럼 일할 수 있다

포드v페라리


<포드v페라리>는 전율을 준다. 일단 카레이싱이라는 소재가 그렇다. 영화에서는 7000rpm이 여러 번 나오는데 경기용 차의 속도로 치환하면 시속 약 400km이다. 시속 400km의 질주가 2시간 30분의 러닝 타임 내내 극을 이끈다고 생각해보자. 오금이 저릴 정도로 짜릿하다. 일상에서 400km는 금기의 속도다. 웬만한 고속도로의 제한 속도도 시속 100km다. 금기의 영역을 넘을 때 그 장르가 무엇이든, 인간은 짜릿함을 느낀다. 땅바닥에 줄을 긋고 넘어가지 말라고 하면 슬쩍 운동화 코를 선의 중간 부분까지 갖다 놓게 되는 것처럼.


영화는 또 다른 각도에서 전율을 준다. 영화를 본 누구라도 켄 마일스를 부러워할 것이다. 왜냐, 그는 정말 행복해 보이니까. 멋진 남편에 존경스러운 아빠, 세계 유수의 스포츠 경주 챔피언인 캐롤 셸비에게 멋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남자이자 천재적 재능을 가진 레이서.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여러 자격을 당연하게,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수행한다. 그런데 나는 다른 것들을 조금 못하더라도 단 한 가지 자격을 뺏고 싶었다. 천재적 재능을 지닌 레이서가 아니라 즐길 줄 아는 레이서.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알고, 그걸 할 때 황홀경에 빠지는 레이서.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돈이 쫓아오는 레이서.


제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은 운이 좋은 사람이다.
평생을 일을 안 하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캐롤 셸비는 연설 중에 이런 말을 한다. 세계 최고의 모터스포츠 감독이자 자동차 디자이너가 된 캐롤 셸비도, 전설적인 대회 우승을 한 해에 세 번이나 휩쓴 켄 마일스도 '운 좋은' 사람들이다.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 세계에 빠져들듯 그들은 레이싱의 순간에 빠져든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계'는커녕 '한국'의, '이 시장'의, 아니 적어도 '이 회사'의 '최고'도 되지 못하는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은 저런 경험을 절대로 할 수 없나. 우리는 '운 좋은’ 사람들 군락에서 불행히도 탈락한 '운이 운명을 피해 간’ 사람들일까?


악독한 인물로 나오는 포드 부사장 리오 비비는 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켄의 사회 부적응적인 모습, 감정 표현을 그대로 얼굴에 노출하고 말과 행동으로 드러내는 거친 모습 때문이다. 그는 켄이 '지나치게 순수해서' 르망24에 출전할 수 없다고 말한다. 즉, 켄은 비즈니스를 할 줄 모르는 무식하고 순수한 영혼이라 언제 어디서 돌발 행동을 할지 모르니, 대기업의 브랜드 경쟁에 참전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영화 초반부에 나오는 이 대사가 나를 붙들었다. 어쩐지 리오 비비의 말은 기업인을 다 머저리로 만들고, 예술가를 천상의 직업으로 만들었다. 근데 그 지점에서 나는 무릎을 탁 쳐서 무릎이 얼얼해질 만큼의 통쾌함을 느꼈다. 


지나친 순수함' 평범한 우리에게 투영할  있을  같았다.


정말 황홀경에 빠지는 예술가처럼 일한다면, 아니지, 일한다는 표현도 부적합하다. 예술가처럼 오늘을 산다면 우리는 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축. 합격!


1966년 데이나톤에서 우승한 켄 마일스와 캐롤 셸비 ⓒ매일경제


회사는 능력과 돈의 가치 교환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이론상으로는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 가치 교환의 정도나 기한이 100%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능력과 돈의 가치 교환 이론'에 매몰돼 회사 생활을 한다면 어떨까? 욕심이 많은 만큼 열심히 일할 거고, 배우려 할 거고, 성과를 내고 진급하고 돈도 벌고 가족 부양도 하고 지인들 앞에선 의기양양하고 임원진의 칭찬에 힘입어 더 열심히 일하고 배우려 하고 성과를 내고 진급하여 돈을....... 그러다가 숨이 막히는 지점이 온다. 일하는 마음이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요인, 예컨대 일에 대한 특정한 기준이나 타인의 평가로부터 촉발됐기 때문이다.


레이싱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셨겠죠.
그만큼 차를 완벽하게 몰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차에 대해서 잘 알아야만 하죠.

그건 켄만 할 수 있습니다.
켄은 직접 이 차를 만들어 왔기 때문이죠.


켄은 최고의 레이서지만 자동차의 설계 구조와 엔지니어링에 대해 전문가적인 지식을 갖고 있다. 레이서로 분하는 동안엔 그 능력을 향상하는 데 충실하다. 그가 운전 실력을 갈고닦으면서 엔지니어링을 숙련한 것은 평범한 우리가 직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과 같다. 다른 것은 동기일 뿐이다.


좀 거창하게 마무리를 해보겠다. 나는 동기가 영혼을 깨끗하게 해 준다고 생각한다. 동기가 나의 중심에서 나왔다면 내가 하는 생각, 직장에서의 이동 동선, 타인을 대하는 태도, 퇴근 후의 사고방식이 pure해진다. 뭔가를 하고 있다는 황홀경에 빠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고 잡생각을 머리에 주입하지 않는다. 그건 영혼을 갉아먹는 일이니까.


7000rpm 어딘가엔 그런 지점이 있어.
모든 게 희미해지는 지점.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자격이 주어졌든 7000rpm의 속도로 달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하여 그냥 pure 말고 'too pure'해서 사람들이 손사래를 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경험 한 번쯤 하는 인생이면 정말 멋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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