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마지막에 비로소 느낀 것들
아사쿠사에서 빠져나온 뒤 향한 곳은 긴자였다.
이왕 도쿄에 왔으니 일본 명품거리의 근본, 구도심과 신문화가 교차하는 긴자를 일정에서 빼놓을 수 없었다.
하지만 긴자식스 같은 백화점은 애초부터 이번 여행의 배제 대상이었다.
도쿄가 얼마나 현대적인지, 긴자식스 같은 백화점이 브랜드를 입점시키는 기준은 얼마나 까다로운지, 한국의 백화점과는 또 뭐가 어떻게 다른지 등을 살펴보는 일은 부모님의 관심사와는 0.000001%도 닿아있지 않았던 탓이다.
대신 내가 선택한 목적지는 마로니에 게이트 긴자에 위치한 다이소였다.
우리나라 다이소의 전신이 되어준 바로 그 다이소.
일본의 다이소에선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만물상 다이소 외에도 20~30대 1인가구 여성에 초점을 맞춘 '다이소 스탠다드 프로덕트', 300엔샵 '쓰리피'를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긴자의 마로니에 게이트에선 이 세 유형을 모두 경험할 수 있다.
지난번 긴자에 왔을 때 이런저런 물건을 구경하며 쇼핑했던 기억이 떠올라 당당하게 부모님을 모시고 갔는데 아뿔싸, 나의 착오였다.
이미 하루의 절반을 소비한 시점에 부모님은 한눈에 보기에도 너무나 지쳐 있었다.
게다가 엄마는 속이 안 좋아 하루종일 먹은 거라곤 킷사텐에서 마신 달달한 코코아가 전부였다.
여차저차 긴자 다이소에 도착하긴 했으나 지친 부모님 눈에 다이소의 이러쿵저러쿵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결국 난 긴자의 메인 거리를 보여드리는 것도 포기하고, 또 손으로 뚝딱뚝딱 만들기를 좋아하는 아빠를 위해 살포시 일정에 껴넣었던 문구점 이토야도 과감하게 스킵한 채,
마지막 목적지 시부야로 향했다.
아사쿠사에 가기 전 불현듯 킷사텐을 찾았던 것처럼 '불현듯' 머릿속에 신호등 하나가 깜빡 켜졌다.
'슈프림에 가야겠다!'
고즈넉한 킷사텐이 부모님을 위한 경유지였다면, 갑자기 내 머릿속에 떠올라 불빛을 터뜨린 슈프림은 한국에 남아 열일하고 있을 신랑을 위한 아이디어였다.
슈프림은 전 세계에 16개 매장이 있는데 그중 무려 6개가 일본에 있다.
신랑을 놔두고 일본에 갈 때마다 편집샵이나 오모테산도에 즐비한 패션 플래그십 스토어에 들러 신랑과 실시간 전화를 나누며 선물을 사오곤 했는데.
이번 여행에서 여러모로 배려를 해준 신랑을 위해, 멋진 선물을 주고자 급하게 시부야 슈프림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러나 역시
시부야는 시부야였다.
중학교 시절 크리스마스마다 친구들과 명동을 찾았다가 느낀 '구름떼 같은 인파'를 간만에 시부야에서 느끼게 될 줄이야.
엄청난 인파를 뚫고 왠지 껄렁껄렁(?)해 보이는 청년들이 담배 꽁초를 툭툭 버려대는 으슥한 골목길을 따라 올라 마침내 도착한 슈프림.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건 웨이팅이었다.
줄을 서있는데 맘이 편치 않았다.
어느새 오후 6시. 모두 내 또래 젊은이들 뿐이었다.
잠바를 껴입고 힘들게 골목길을 올라 딸 옆에 꼭 붙어있는 60대 부모님은 왠지 이곳과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또 부모님도 젊음의 성지인 이곳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실 것 같았다.
"엄마 아빠는 요 근처 카페 아무데나 가 있어! 언제 들어갈지 몰라."
"왜~ 우리도 가서 봐야 사위 예쁜 옷 사주지."
"나 혼자서도 봐줄 수 있어!!"
"같이 봐야 더 예쁜 걸 고를 수 있지 않을까?"
"아 그래도 어디든 가 있으라니까?"
"어디 갈 데도 없고 갈 줄도 몰라. 엄마도 이런 거 경험해보고 싶어~"
일단 모시고 오긴 했는데, 매장의 분위기와 부모님의 모습이 어딘지 매칭되지 않아 마음이 불편하던 찰나, 엄마의 마지막 말에 이번엔 마음속 양심 신호등이 깜빡 켜졌다.
맞다. 엄마도 나이만 예순이지, 해보지 않은 것에 호기심도 관심도 애정도 있을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단지 마음이 불편하단 이유로, 부모님을 나의 라이프스타일 경계선 밖으로 밀어내려고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짧은 웨이팅을 거쳐 우리 셋은 시부야 슈프림에 ‘당당히’ 입성했다.
'엄마 의견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보는 눈이 다르니까'라고 단정지었던 과거를 까맣게 잊고, 이 옷이 괜찮을지 저 옷이 괜찮을지 호들갑스럽게 엄마를 불러댔다.
다른 옷을 구경하느라 엄마가 멀리 가 있기라도 하면 왜 붙어 있지 않냐고 투정도 부렸다.
계산대에 다 와서야 음악 소리 때문에 귀가 아프다며 부모님이 먼저 매장을 나가셨다.
"어휴 귀 아파라. 그래도 좋았어. 요즘 애들은 이런 데서 쇼핑하는구나~"
"근데 꼭 다 힙합하는 애들 같아."
"한국 가면 양평, 퇴촌, 팔당댐 이런 데만 갈 게 아니라 아빠랑 지하철 타고 홍대랑 이태원도 가봐야겠어. 재밌네."
엄마 아빠의 감상평에 또 한번 무릎을 쳤다.
우리 부모님, 이렇게나 힙할 줄이야!
시부야 히카리에 쇼핑몰에서 저녁을 먹고, 마지막 목적지 시부야 스카이 전망대로 향했다.
쇼핑몰과 이어진 건물인데 그마저도 찾지 못해 길을 지나가던 일본 학생들에게 길을 물어물어 도착했다.
그러나 미리 티켓을 예매했던 것도 무색하게 몸이 좋지 않은 엄마는 춥다며 전망대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아빠는 이 좋은 걸 왜 안 보냐며 엄마를 나무라셨다... 하하
춥기도 하고 하루를 꽉 채운 일정에 피곤함이 확 몰려왔다.
짧게 둘러본 뒤 아래층으로 내려와 엄마를 찾는데, "이리 와봐! 여기가 더 좋아!"라는 엄마의 들뜬 목소리.
실내 전망대에서도 충분히 시부야의 야경을 즐길 수 있던 것이다.
우리 가족은 실내에서 야외 못지 않은 뷰를 즐기고 가족사진도 한 방 찍은 뒤, 둘째날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다.
사실 이날 아침, 나는 눈을 뜨자마자 아빠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빠 코고는 소리 때문에 한잠도 못 잤잖아!"
내 말이 신경 쓰였던 걸까, 그날 밤 아빠의 코골이 소리는 조금도 들려오지 않았다.
나 때문에 조심하느라 제대로 못 주무시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그때 귓가에 들려오는 엄마의 새근새근한 코골이 소리.
전날밤 아빠의 코골이에 비하면 천사의 자장가나 마찬가지였지만, 나는 여전히 잠들지 못했다.
그렇게 한 순간도 잠들지 못하고 새벽을 지새웠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이틀밤을 연속으로 잠들지 못한 건 아빠의 우렁찬 코골이 때문이 아니라, 부모님과 완벽한 여행을 보내고 싶다는 혼자만의 부담감 때문이었음을.
이제라도 아빠에게 달려가 "실컷 코 골아도 좋으니 편하게 주무세요!"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여행의 공식적인 마지막 날은 후지산 투어였다. 후지산의 오이시 공원, 오시노 핫카이의 아기자기한 마을, 사이타마현의 코에도 마을을 돌았다.
가이드 투어다 보니 이전 날들과 다르게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긴장이 한꺼번에 풀린 탓일까, 점심 시간이 되기도 전부터 배가 아파왔다.
처음 느껴보는 배뭉침이란 고통이었다. 버스에서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는데 눈물이 났다.
임신하고 처음으로 배속 아가에게 미안하단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아가야. 미안해. 엄마가 욕심을 부리느라 우리 아가를 힘들게 했나봐.'
부모님만 신경 쓰다가 나를, 우리 아가를 미처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게다가 일본 고속도로 바닥은 왜 이리도 거친 건지. 혹여 아기에게 무리가 갈까 배를 두 손으로 감싸고 건강하게만 있어달라고 얼마나 빌었는지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통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시간이 지나서일 수도 있지만 부담감과 책임감에서 벗어나, 맘을 편하게 먹은 게 복통이 줄어든 진짜 비결 아니었을까.
좀 부족해도 괜찮은데. 우리가 함께 있단 것만으로 이미 완벽한 여행인데.
최고가 아니라도 부모님은 엄지 손가락을 치켜올려 주실 텐데.
내가 밀어붙여서, 내가 주도한 이 여행이 부모님께 실망을 안겨드릴까봐 나도 모르게 잔뜩 날이 서 있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잠들었다.
그래, 범인은 바로 나였다.
스스로 부여한 중압감 때문이었다.
아침을 먹고 호텔 근처 돈키호테에 들렀다.
또 사르르 배뭉침이 느껴져 엄마에게 말했더니 나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쇼핑에 여념없던 엄마 왈, "아프면 너 혼자 호텔 들어가 있어!!"
배를 어루만지며 유난떠는 나도 웃기고, 평소 '자식만' 생각하는 우리 엄마가 이리도 쿨하게 받아치니 속이 시원해 웃음이 나고, 엄마도 아빠도 나도 오롯이 본인에게만 충실한 그 순간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또 웃음이 났다.
공항으로 가는 고속열차 안.
풍경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풍경을 좋아하는 내가 창가 자리를 양보해드렸다.
30년 평생 엄마가 나에게 해줬던 것이다. 양보.
귀국 비행기는 우리 세 가족 모두 비즈니스 클래스로 플렉스했다.
비즈니스 클래스를 처음 타보는 엄마는 완전히 곯아떨어졌고, 아빠는 조작법을 몰라 수시로 뒤를 돌아보며 나를 찾으셨다.
나는 또 "아 이렇게 하나하나 다 알려줘야 돼?" 인상을 쓰면서도 아빠가 물어보지 않은 것까지 다 알려드렸다.
승무원들의 선반 창고를 화장실 문으로 착각하고 손잡이를 자꾸만 잡아당기는 아빠를 보면서는,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에휴, 하는 답답함 반. 그래도 우리 아빠 성공했네 비즈니스도 다 타보고, 하는 뿌듯함 반.
조금씩 부족하고 어설픈 나처럼, 부모님도 서툴 수 있음을, 그것에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도 그것을 안타까워 할 필요도 없음을, 우리 모두는 슈퍼맨일 필요가 없음을 깨달으며.
3일 동안 못다 든 잠에 나는 퐁당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