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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i Kim Jul 01. 2024

가장 자연스러운 만남

우리 딸, 세상에 나온 걸 축하해

응애 응애 응애 응애


칸막인지 천인지 무언가 너머로 아기 울음 소리가 우렁차게 들리던 순간.

아, 내가 아기를 낳았구나.

건강한 아기를 낳았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내 두 볼을 잡고 응원을 멈추지 않던 신랑의 울음 소리가 같이 들렸다.

막 태어난 아기를 보기 위해 하반신 마취를 선택했던 나는 당장이라도 오바이트를 할 것 같은, 아니, 당장이라도 숨이 꼴까닥 깰까닥 넘어갈 것 같은 신체적 한계에 아기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잠자는 약을 넣어달라 했다.

2박 3일 내내 함께해주셨던 간호사 선생님도 "마취 넣어드릴게요, 응, 안되겠어. 우리 좀 자자. 그래야겠어"라며 힘겨운 내 상태를 알아봐주셨다.

나는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네네 그래주세요 하며 잠에 들었다.


제왕절개는 나의 선택이 아니었다.

자연이냐 제왕이냐 깊게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아기가 역아라거나 극히 작거나 크지도 않은 평범한 상태로 자라고 있었기에 분만 방법은 자연스럽게 자연분만이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건 나에겐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생명이 몸속에 자리잡기도 전부터 하루빨리 엄마가 되고 싶었고, 그런 내게 ’산통'이란 오직 엄마만이 느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의미있는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자연스레 거쳐야 할, 엄마가 되기 위한 당연한 통과의례.

자연분만이란 진정한 엄마로 거듭나기 위한 성스러운 고통이라고 나는 여겼다.


분만 날이 다가와도 내 배는 별로 처지지 않았다.

분만 전날까지 신랑과 삼겹살 파티를 벌이고 밤에 카페 데이트까지 즐겼다.

나는 폴짝폴짝 뛸 수도 있었다.

소풍을 앞두고 두근거림에 밤잠을 설치는 어린애처럼 가슴이 콩닥거려 그날 밤 한 숨도 자지 못했다.



유도분만 첫날, 자궁문은 거의 3cm까지 열렸고 기계에 표시되는 진통의 세기도 주기적으로 100을 치고 있었다.

진행이 빠를 것 같다며 나는 곧 다인 대기실에서 1인 분만실로 옮겨졌다.

아, 곧 아기가 나오려나 보다.

가슴이 두근댔지만 이상하게 별로 아프진 않았다. 자궁문이 열린 상태나 주기적인 진통의 세기치곤 이상하리만치 아프지 않았다.

그래서 책도 보고 ASMR도 듣고 민희진 기자회견도 라이브로 봤다.

세끼식사도 꼬박 챙겨 먹었다.

복도에 걸린 화이트보드 속 내 이름 옆에는 3cm, 진행률 80%라는 꽤 다급한 숫자가 적혀 있었지만 내 상태는 그저 너무 평온했다.


둘째날, 오늘은 아기를 만나자는 간호사 선생님들의 초롱초롱한 눈빛과 응원을 받으며 분만실에 누웠다. 그러나 오후쯤, 나보다 진행이 더뎠던 산모의 갑작스런 진통으로 분만실을 내어주고 나는 다시 대기실로 돌아와야 했다.


셋째날, 50시간 넘게 링거를 꽂고 있던 탓에 손목이 퉁퉁 부어버렸다.

왼 손목의 고통을 오른 손목에 넘겨주고 어제처럼 그전날처럼 분만실에 미라처럼 누워 있던 내게, 의사 선생님이 조심스레 입을 여셨다.

"제왕절개를 해야 할 것 같아요. 댁으로 돌아가 자연 진통을 기다리는 방법도 있지만 너무 힘드시죠..."

그날 내 자궁은 시간이 거꾸로 회귀하듯 첫날보다 더 튼튼해져 있었다.

아기를 쉽게 세상에 내보내기엔 어림없다는 듯 너무나 안전하게 아기를 지켜주고 있었다.


결국 제왕절개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나는 여전히 손목에 링거를 주렁주렁 매단 채로 분만실이 아닌 수술실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씩씩하게 웃고 농담도 던졌지만 "얘기 들었어요. 에구 힘들어서 어떡해요" 소식을 듣고 찾아와준 조리원 실장님의 한마디에 뚝뚝 닭똥같은 눈물을 흘렸다.


나아 저엉말 자연분만이 하고 싶었다구요.


자연분만에 '또' 실패하고 제왕절개의 가능성이 커져가던 둘째날 밤, 신랑과 이런 이야길 주고받았다.

건강하게 아기를 만나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겠냐고.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산통을 느껴보지 못할 거라는 아쉬움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겠지만.



막상 배를 개복해 아기를 낳고 나니 자연이냐 제왕이냐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었다.

자연분만을 해야만 진정한 엄마가 된 것 같다는 (오직 나에게 있어서만) 요상한 달나라 별나라 신념도 정말 하나도 중요한 게 아니었다.

세상 가장 거룩한 태지를 흰 눈처럼 묻히고 힘차게 울음을 터뜨리는 우리 아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내 속에 막연히 대기를 타고 있던, 온 우주가 감복할 만큼 간절히 간절히 바라던, 엄마라는 세계가 활짝 열렸다.



우리 아이와의 만남은 그렇게 이태껏 내가 경험한 가장 소중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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