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전화 한 통
"꿈자리가 뒤숭숭하다. 이번에 안 내려와도 되니 오지 마라."
어머니가 신신당부를 하십니다.
다음 주가 아버지 생신이다 보니 이번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고향에 내려가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머니가 전화를 주셨습니다. 어젯밤 통화였습니다.
그래서 눈을 떠서도 계속 고민이 됩니다.
내려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그러셨습니다.
꿈자리가 안 좋은 날에는 가족들에게 항상 당부하고 조심시켰습니다.
"오늘은 조심해라."
"오늘은 멀리 가지 마라."
"오늘은 차 조심해라."
처음에는 그냥 미신쯤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시는 날에는 항상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괜히 어머니 전화를 받고 나니 마음이 싱숭생숭합니다.
저는 서울에 있고, 부모님은 경상도에 계십니다.
1년에 얼굴 몇 번 뵙기가 힘듭니다. 그러다 보니 부모님의 생신 같은 중요한 날에는 꼭 찾아뵈려고 합니다.
올해는 특히나 이래저래 일들이 많아 자주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연말도 되고, 아버지 생신이기도 하고, 그래서 꼭 내려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전화 한 통에 괜히 마음이 흔들립니다.
부모님 두 분은 모두 팔순을 넘기셨습니다. 이제는 하루하루가 추억입니다.
함께할 수 있는 날들이 생각보다 많이 남아있지 않은 연세입니다.
집에서 갑자기 전화만 와도 깜짝깜짝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감기라도 걸리시면 괜스레 걱정이 되어 안절부절못하게 만드는 그런 연세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내려오지 말라는 어머니 말씀에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한 번이라도 더 뵈어야 하는데......"
어머니도 커가는 손주 녀석들을 보고 싶으실 겁니다.
몸이 안 좋다가도 아이들과 영상통화하면 없던 힘이 생기는 그런 분입니다.
화면으로 손주를 보면서도 "많이 컸네, 많이 컸어" 연신 감탄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자식 걱정에 또 내려오지 말라고 하십니다.
평생을 이렇게 자식 걱정만 하십니다.
정작 저는 그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하는데 말이죠.
며칠 전 전화드렸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는 기뻐하셨습니다.
"이번 주말에 내려갑니다"라고 했을 때, 들뜬 목소리로 대답하셨습니다.
"그래, 그래. 조심해서 와라." 하시면서 한껏 기대 가득하고 설레는 표정이셨습니다.
그 표정과 목소리가 잊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젯밤 어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안 내려와도 되니 오지 마라." 목소리에 기운도 없어 보였습니다.
내려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머니 말을 듣지 않고 내려가자니 마음이 찝찝합니다.
안 내려가자니, 들뜬 목소리와 표정이 자꾸 떠오릅니다.
참 못난 자식입니다. 어머니의 걱정을 덜어드려야 하는데, 오히려 고민만 더 깊어집니다.
팔순이 넘은 부모님을 1년에 몇 번 뵙지도 못하면서, 내려가는 것조차 망설이는 자식.
자식으로서 참 못난 마음이기도 합니다.
부모님과 함께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하루하루가 소중하다는 것을.
한 번이라도 더 뵈어야 한다는 것을.
다 알고 있는데도 망설여집니다.
아직 결정을 못 했습니다. 내려가야 할까, 말아야 할까.
어머니의 걱정을 덜어드려야 할까, 아니면 뵈어야 할까.
어쩌면 이 고민 자체가 답일지도 모릅니다.
어머니는 자식 걱정에 말리시지만, 그래도 가고 싶고 가야 할 것 같은 자식의 마음.
못난 자식이지만, 그래도 부모님을 걱정하고 그리워하는 마음.
아마 오늘 아침 다시 전화를 드려볼 것 같습니다.
"어머니, 그래도 내려가도 될까요?"
조심히 다녀오겠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그래도 생신인데 내려가겠다고 말씀드릴 것 같습니다.
눈 뜨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고민이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이런 고민을 할 줄 몰랐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자식의 마음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새벽에 고민이 이어진 것 같습니다.
부모님을 향한 걱정, 죄송함, 그리움. 그리고 조금은 못난 마음.
그 고민으로 오늘 하루를 시작하게 되어 마음을 정리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