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보다 배꼽
전기공사 업체 사람들 다 테슬라 사이버트럭으로 차 바꾼 거 알아?
책상에서 만나는 미국 공사판
내 직무는 데이터센터가 지어지고 있는 미국 전역의 현장 공사비를 모니터링하고 관리하는 일이다. 직무 특성상 나는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미국 남부, 중부, 서부는 물론 캐나다, 남아메리카 현장에 있는 동료들과 미팅을 한다.
얼마 전 미국 서부에 위치한 현장에 있는 동료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클레어, 전기공사 업체 사람들 다 테슬라 사이버트럭으로 차 바꾼 거 알아?”
이 한마디에 우리는 동시에 빵 터졌고, 웃음이 잦아들 즈음엔 괜히 부러운 마음에 혀를 끌끌 찼다.
겉보기엔 비슷해 보여도
여느 건설 현장이 그렇듯 건설비용의 두 개의 축은 인건비와 자재비다.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는 디자인보다 기능이 집중된 시설로 분류되기 때문에 우리나라 아파트를 찍어내듯 그 모양새가 비슷하다. 단순한 입면과 건물 구조만 보면 “생각보다 공사비가 많이 들지 않겠구나”라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물론 내부를 채우는 전력 설비, 냉각 장비, 각종 IT 인프라가 비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모든 장비를 담아내는 ‘건물 자체’ 역시, 결코 가볍지 않은 비용을 요구한다.
“하늘 아래 같은 프로젝트는 없다”
나와 내 매니저가 종종 하는 말이다. 테크 회사 내에 자리한 인하우스 EPC 조직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외부는 물론 내부에서도 우리가 하는 일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건설업과 거리가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저기 A 현장 데이터센터랑 B 현장 데이터센터, 똑같이 생겼는데 왜 비용 차이가 이렇게 커요?”
이런 물음표 앞에 설 때마다 나는 늘 같은 대답을 한다.
“하늘 아래 같은 프로젝트는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양이 같아 보여도 각 프로젝트는 저마다 고유한 스토리를 지니고 있다.
인건비, 그중에서도 전기
각 프로젝트의 ‘고유성’은 건설비용의 두 축, 인건비와 자재비만 들여다봐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인건비에서는 그 편차가 훨씬 극명하다.
내가 주로 보는 포트폴리오가 미국 내 위치한 현장이 많아서일 수도 있겠지만, 데이터센터 건설 인건비 중에서도 가장 큰 편차를 보이는 공종은 단연 전기공사다.
전기를 끌어와 서버를 가동하고, 서버가 뿜어내는 열을 식히기 위해 냉각 장비를 돌려야 하는 데이터센터의 구조상, 전기 공종은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건설의 핵심이다.
그만큼 비중도 크고, 비용도 크다.
전기 공사 인건비를 리뷰하다 보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숫자가 맞나?’ 싶어 다시 데이터를 들여다보는 순간이 종종 있다. 그만큼 전체 공정 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크다.
숫자를 의심하게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지역별 편차다. 같은 전기 공사인데, 지역에 따라 인건비 차이가 너무 크다.
오픈 마켓과 규제의 세계
어떤 지역은 비교적 단순하다. 입찰 공고를 내고, 제안서를 받아 가장 낮은 금액을 제시한 업체와 계약을 진행한다. 흔히 말하는 최저가 낙찰 방식이다.
인건비에 특별한 규제나 제도가 없기 때문에, 들어온 입찰가를 비교해 보면 그 지역의 인건비 시장가가 그대로 드러난다. 구조는 깔끔하고, 시장 가격을 파악하기에도 명확하다.
하지만 모든 시장이 이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미국 내 위치한 몇몇 주들은 조금 다른 구조를 가진다. 이 지역들은 Prevailing Wage라는 임금 규제의 영향을 받는다.
Prevailing Wage는 미국 노동부에서 산정하는, 해당 지역 유사 직종 근로자들의 평균 임금이다. 한국의 시스템을 직접 겪어본 적은 없지만, 개념적으로는 ‘건설노조’의 임금 체계와 비슷한 규제라고 보면 이해가 쉽다.
이 제도는 모든 산업에 적용되지만, 인력이 대규모로 투입되는 건설업에서는 특히 영향이 크다. 공사업체들은 노동부가 산정한 임금표를 기준으로 인건비를 책정해야 한다.
오픈 마켓 vs 임금 규제 지역
오픈 마켓에서는 경쟁입찰이 기본이다. 최저 입찰자가 되기 위해 건설사들은 인건비를 최대한 조율한다. 반면 Prevailing Wage 규제가 있는 지역에서는, 정해진 임금 기준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인건비를 낮추는 데 명확한 한계가 있다.
이 제도는 현장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실제로 효과도 있다. 다만 비용을 관리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 두 시장의 인건비 격차는 과장 없이 최대 두 배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Prevailing Wage는 연방, 주정부의 최저임금보다 시간당 임금이 훨씬 높다. 오너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생긴 셈이라, 건설사와 인건비를 두고 다툴 여지가 줄어든다.
하지만 전체 예산을 놓고 보면, 다른 주에 비해 인건비가 100% 이상 차이 나는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솔직히 혀를 끌끌 차게 된다. 울며 겨자 먹기인 셈이다.
특히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가 우후죽순으로 지어지고 있는 요즘 같은 시장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데이터센터 시장이 과열되면서, 전기 라이선스를 가진 인력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데이터센터의 8할은 전기 설비다. 그래서 전기전자 라이선스를 보유한 업체와 인력을 얼마나 빨리 확보하느냐가 프로젝트 성패를 좌우한다.
때문에 오픈 마켓에서도 이미 ‘부르는 게 값’인 상황을 종종 보는데, 임금 규제가 있는 지역에서는 전기 공사 인건비에 더 이상 ‘적정가’라는 개념이 남아 있지 않는 것 같다.
빅테크 3사의 땅따먹기 같은 부지 경쟁, 그리고 동시에 몰리는 건설 타이밍까지 더해지면서 요즘은 오픈 마켓이든 규제 지역이든 전기 업체를 ‘모셔와야’ 하는 상황이다.
배보다 배꼽이 커진 시장
가끔은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 시장 한가운데에 서 있는 건 아닐까, 요즘 부쩍 그런 생각이 든다.
여담이지만, 컴퓨터 앞에 앉아 숫자를 들여다보는 나는 가끔 공사 예산을 리뷰하다가 “이 중 100분의 1만 내 통장으로 들어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현장에서 협력업체를 진두지휘하는 우리 팀 현장 인력들은 업체 사람들 개인 차가 업그레이드될 때마다 얼마나 더 씁쓸할까, 그런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