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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온 May 05. 2024

헤드윅

존 카메론 미첼 감독의 헤드윅(2000)


헤드윅을 얼마나 잘 받아들였는가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들었던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내가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어찌 보면 헤드윅은 단순하다. 한때는 남자였으나 지금은 어느 위치에도 있을 수 없는, 수많은 이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는 아티스트. 그의 심정을 담아낸 것이 이 영화다. 소재와 스토리 같은 큰 맥락은 뚜렷하게 잡혀있다. 그 때문에 여기서 관객이 길을 잃기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만큼 보여주고자 하는 바가 충실하고 깔끔하게 담겨 있다.


그러나 좀 더 작은 것에 집중해보면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다. 난 이 영화의 전부라 할 수 있는 헤드윅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연기력이 부족했다거나 플롯이 엉성했다거나 영화 자체의 표현력이 부족했다거나 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저 헤드윅이란 인물을 이해하기엔 아직 내가 덜 성숙한 탓이다. 그의 감정선은 매번 이해한 듯싶다가도 금세 모호해지고 만다. 그의 표정과 제스쳐, 그 모든 것이 보이는 것 이상으로 복잡하다. 다양한 경험과 감정, 사고가 갖춰진다면 그땐 헤드윅이 보여주는 모든 것을 지금보다는 잘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아직은 내가 부족하기만 하다.



당당하고 유쾌하게 몸을 부풀리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과거를 통해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는지,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 영화 헤드윅은 헤드윅이란 사람, 그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무대이다. 대부분의 씬이 무대 위(너무나 다양하고 이색적인 무대였다)에서 노래와 퍼포먼스를 하는 헤드윅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도 어쩌면 현재, 과거 그리고 미래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까발리기 위함일 것이다.


헤드윅의 이야기는 다양한 색감으로 채워져 있다. 그의 지난날, 그때의 심경은 가사에 새겨져 로큰롤을 타고 흘러나온다. 정체성의 혼란, 다수와는 다른 모습의 나를 발견할 때 느끼는 불안감과 소외감은 그리 유쾌하지 못하다. 그런데도 이를 화려하고 경쾌하게, 당당하게 발산시키는 헤드윅.


그러나 그의 의도와는 달리 그가 더욱더 안쓰러워 보인다. 주류의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있는 힘껏 몸을 부풀린 채 안간힘을 쥐어짜 내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만 같다. 그런 그의 모습이 더 큰 불안감을 형성한다.



엉망진창인 인생


쭉 뻗은 인생을 달리는 나를 상상해봤다. 일단 자신감에 차 있으며 어떤 일이든 긍정적으로 바라볼 것이다. 늘 기쁜 마음으로 온화하게 사람을 대할 것이다. 세상은 나에게 이롭기만 하다 여길 것이며 세상에 배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믿을 것이다. 그렇게 좋은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내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내 뜻대로 되는가 싶다가도 엇나가기 일쑤다. 사람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세상은 내가 아닌 주류 또는 힘과 영향력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헤드윅은 평범한 사람의 눈엔 뒤틀릴 대로 뒤틀린 인생이다. 굉장히 다사다난하다. 사람들은 이런 복잡하고도 어려운 인생을 산 사람에게 경험이 풍부하다며 좋게 평가한다. 글쎄. 이젠 잘 모르겠다. 그게 정말 좋은 것인지. 그의 아픔이 그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만 했을까. 쓴맛의 존재를 알게 되면 다시는 그 맛을 보지 않기 위해, 자기방어를 위해 자신을 경직된 인간으로 만들어버리진 않을까.



나의 위치


사회가 정해준 몇 가지 기준으로만 나의 위치를 결정짓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 세상은 회색으로 가득 차 있다. 또한 몇 가지 특성만으로 자신을 규정지을 수도 없으며 설령 규정짓더라도 시간과 상황에 따라 그마저도 변한다. 우린 그런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세상을 칼로 자르듯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구분할 수 없고 그에 맞춰 살 수도 없단 사실을.


그런데도 늘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나를 남자와 여자로 가르고, 직업으로 가르고, 내가 속해있는 집단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로 가른다. 그렇게 매번 나란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것과 저것으로 갈라댄다. 그렇게 자신을 난도질해대며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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