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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온 Aug 18. 2024

나이브스 아웃

라이언 존슨 감독의 나이브스 아웃(2019)



내 집, 내 규칙, 내 커피


할런 트롬비. 추리 소설가라는 그의 직업과 영화 내내 마주하게 되는 그의 공간을 통해 우린 그가 남다른 세계관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처음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의 컵으로 말할 것 같으면 무려 이름이 “내 집, 내 규칙, 내 커피”다. 그는 자신의 세계관, 자신의 규칙을 주변, 특히 가족이 따르게 했을 것이다.


“참 나를 많이 닮은 놈이야. 자신만만하고 멍청하고 참견 싫어하고 뒤는 생각도 안 하고 인생을 게임처럼 살지. 그렇게 살면 그 차이를 모르게 돼. 무대 소품과 진짜 칼의 차이를. 죽음은 겁나지 않아. 하지만 가기 전에 몇 가지는 고쳐 놓고 싶어.”


나이 듦에 따라 점점 감정은 짙어진다. 짙어진 감정은 시선을 가족에게로, 현실로 돌리게 했다. 그는 진정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족을 들여다보았다. 그들은 마치 작가의 글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는 소설 속 인물처럼 자신이 구축한 세계에 빠져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결국 가족을 그들 자기 세계로 자유로이 날아가게 해야겠단 다짐을 하게 된다. 그의 생일, 그는 그런 다짐으로 더 늦기 전에, 이 모든 것을 바로 잡고자 청소를 시작한다.



진실 관찰자


트롬비 가 분란의 중심엔 블랑이 있다. 그는 그들의 신경을 미묘하게 건드리고 비튼다. 약간의 심기 불편함을 던져주고는 그들 본연의 소리, 행동을 관찰한다. 너무 과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정도는 아닌, 딱 적당한 그의 자극은 이 모든 이야기를 잘 만들어내고 잘 이끌어간다.


영화는 그런 블랑의 시선을 따라간다. 한 발짝 뒤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추한 행태를 눈으로, 귀로 담아낸다. 탐정이란 그의 직업은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한 것을 보다 잘 드러나게 했다. 특정 감정에 치우치지 않게 했다. 그가 중심에 있었기에 어느 한 인물에 완전히 몰입하여 감정이 치우치게 되는 상황이 덜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연출의 힘이 더 컸겠지만. 감정은 인간에게 있어 중요하다. 그러나 때로는 너무 격해진 감정에 의해 본질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위험에서 블랑이 한 역할 했다고 본다.



상냥한 마음


마르타는 유일하게 진실한 사람이다. 거짓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녀의 성실하고 상냥한 마음이 그녀의 진실성을 더욱 빛나게 했다. 그 진심은 심각하고 긴장되는 상황에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 힘으로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트롬비 가에서 진실을 드러낼 수 있게 했고 이 황당한 게임에서 이기게 했다.


그녀는 할런의 세계에 발 담긴 했으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할런의 힘으로 살지 않고, 할런의 재력에 의지하지 않고, 할런의 규칙에 온전히 사고를 지배당하지 않고 할런의 방식으로 게임을 마무리하지도 않았다. 그녀의 방식, 상냥함과 순수함, 성실함, 진실함으로 사건을 마주했고 결국 진실의 종을 울렸다. 그런 그녀이기에 할런의 마지막 바람은 꺾이지 않을 수 있었다.



위치 목격


추리 장르라기엔 용의자의 회상씬이 잦다. 추리는 그저 도구에 불과한 양 인물 하나하나의 특성에 더 집중한다. 그들은 가족. 유난히도 가족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그들이 가족을 강조할수록 그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트롬비 가의 위선을 마주하게 된다. 진심이 빠진 그들의 선의는 있는 자의 여유에 불과했다. 그들은 화목하고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지만 실패하고 오히려 없어 보일 만큼 부족한 인간미를 보여준다. 그들의 그런 한심한 모습은 불편하면서도 한편으론 우습게 연출돼있다.


돈 앞에 장사 없고, 이민자 앞에 선의 없다. 당장 내가 급하면 호의고 뭐고 없다. 여유를 잃은 이들이 정신을 잃고 물고 뜯는 모양새가 그들의 본래 위치를 자꾸만 갈아먹는다. 그러는 새에 할런의 재력까지 얻은 상냥하고 진실한 마르타는 높은 위치로 나아간다.


치밀하지만 치밀하지 않은 척. 영화 자체는 굉장히 치밀하지만 블랑도, 마르타도, 심지어 영화 자체도 허술함을 보여줌으로써 웃음을 자아낸다. 허술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힘을 빼기 좋다. 까놓고 보면 무겁고 불편한 주제도 가볍게, 거부감 들지 않게 한다. 현실 세계에서 우리가 직접 체험 중인 위치는 상당히 불편할 수 있다. 나의 위치도, 나보다 잘난 사람의 위치도, 나보다 못난 사람의 위치도 제삼자에 의해 직접 목격하게 되면 거부감이 든다. 한편으론 우린 위치를 확인하면서 안도하기도 한다. 나의 위치가 저 못난 사람보다 낫다며 또는 잘난 사람과 생각보다는 큰 차이가 없다며 위안으로 삼기도 한다. 실제로는 우리에게 위와 아래는 없다. 그러나 그리 생각해야 한다면서 또 어느새 습관적으로 줄을 세운다. 불편하지만 마주해야 할 우리 본연의 모습 중 하나를 영화를 통해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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