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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사람 Oct 03. 2023

구겨진 얼굴을 마주하는 법

슬픔을 위로하는 짓궃은 방법

" 00에게 갈까? 여기서 15분이면 갈 수 있어"

저수지가 내려다 보이는 카페 루프탑에 할머니와 나란히 앉아, 추석 연휴 마지막날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아침부터 사우나에 가서 목욕을 하고, 점심으로 집에서는 먹을 수 없는 청국장을 배불리 먹고 나온 뒤었다.

"나들이하기 좋은 날씨네"라는 할머니의 말에 평소 혼자 가던 좋은 경치가 보이는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연인과 좋은 하루를 보내고 이별을 말하는 심정으로, 적당한 때를 기다렸던 말을 무심히 내뱉었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날 저녁을 먹으며  "할머니 어디 가고 싶은 데 있어? 놀러 가려고 해도, 차가 막혀서 멀리는 못 가겠네"라고 내가 물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갑자기 비밀 이야기를 전하는 소녀의 얼굴을 하더니

" 내가 어디 가고 싶은 데가 있지 " 라며 조용히 속삭였다. "어디길래 그렇게 몰래 속삭여? 아빠 몰래 가야 하는 데 인가 본데?" 할머니의 비밀스러운 속삭임이 귀여웠던 나는 일부러 짓궂게 그녀의 속삭임이 소용이 없게 큰 소리로 떠들었다. 멀리서 듣고 있던 아빠는 마치 아직 나타나지도 않은 그 장소를 알고 있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마시던 물을 계속 마시며 "거기 길 많이 막혀. 나중에 내가 데려갈 테니까 오늘 가지 마."라고 말했다. 그런 아빠의 모습에 그 장소가 어딘지 모르는 다른 가족들을 "뭐야... 어디길래 그래? 할머니 어디 가려고 했어?"라며 할머니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궁금해 죽겠다는 가족들의 표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 그러네, 연휴에 가면 사람이 너무 많겠네"라고 혼자 나지막이 말할 뿐이었다.


" 어차피 할머니 거기 가도 00이 높이 있어서 할머니는 보지도 못해 " 언제나처럼 할머니의 작은 키를 놀리려는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할머니는 앞에 놓인 커피를 홀짝 마시며 " 거기 가면 계단 있어. 계단 올라가서 보면 되지 "라고 평소처럼 받아쳤다. 그렇게 실없는 농담이 오가는 평범한 대화였다. 일상을 깬 건 이어서 내뱉은 할머니의 말이었다.  " 내 휴대폰에 있어. 그거 보면 돼 " 라며 양손가락 10개를 서로 부딪히며 무심히 말했다. 그녀가 속에 있는 말을 꺼낼 때 하는 버릇 같은 행동이었다.

" 무슨 사진이 있는데? 납골당 사진이 할머니한테 있어? " 내심 할머니가 유골함 사진 같은 걸 들여다보고 있었을까 하는 마음에 일순간 마음이 심란해져 다그치듯 물었다.


" 00이 군대 갔을 때 휴가 나와서 찍은 사진 있어. 혼자 사진 하나, 나랑 같이 찍은 사진 하나... 생각날 때마다 그거 보지... 밤에 잠 안 올 때도 보고, 자다 깨서도 보고... " 태연한 듯 말하던 목소리가 떨리더니 순식간에 할머니의 얼굴이 구겨지고 새빨간 눈에서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어린 손자를 잃은 깊은 슬픔과 고통, 그리움  같은 무거운 감정들이 할머니 얼굴 위로 떠올랐다.  낯선 얼굴이었다.  순식간에 내 옆에 앉아 가을 날씨의 즐거움을 함께 느끼던 할머니는 사라지고, 수년 전 장례식장에서 마주친 낯선 노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 우는 거야? 카페에서 그렇게 갑자기 우니까, 사연 많은 할머니 같잖아. 휴지 가져와야겠네 " 장난치듯 우는 할머니를 놀렸다. 나의 실없는 농담에 그녀의 표정은 금세 나에게 익숙한 귀여운 할머니의 얼굴로 돌아왔다.

" 그렇게 우니까 아빠가 할머니 00한테 안 데려가는 거야 " 짓궂게 웃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외국 갔다고 생각해. 어차피 외국 갔으면 똑같이 못 봤을 거야. 할머니도 어차피 곧 갈 거잖아" 할머니가 90세가 넘은 뒤로 우리는 늘 장난처럼 웃으며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날을 함께 이야기하곤 했다. 그녀는 그런 나의 농담에 언제나처럼 웃으며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더니 홀가분해진 표정으로 "맞네. 그래야겠다."라며 나의 농담을 받아줬다.  


할머니는 결국 00에게 가지 않았다. 일상을 살기 위해 깊이 넣어둔 묵은 감정을 털어놓고 싶은 날이 있다. 할머니에게 그런 날이 필요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학원에서 상담심리를 공부하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마주하기 불편한 감정이 줄었다는 사실이다. 그 불편한 마음이 나의 것이던, 내가 마주한 다른 사람의 것이던 피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만 있다면 무엇이든 얼마든지 와도 좋다는 마음이다. 이 글을 쓰며 할머니가 했던 말을 옮기면서 그때는 전혀 나오지 않던 눈물이 났다. 할머니의 말을 그대로 옮기며 그녀의 말에 담긴 감정과 똑 닮은 나의 감정이 건드려졌기 때문이다. 그 순간 눈물이 나지 않은 건, 그녀의 슬픔을 위로하고 싶다는 나의 의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상대방의 감정을 복사 붙여 넣기 해주면서 위로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위로는 상대방이 어떤 감정을 표현해도 괜찮다는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당신의 구겨진 얼굴을 마주할 수 있으니 안심하고 드러내도 된다는 단단함을 보여주는 일이다. 깊은 슬픔으로 구겨진 얼굴에 짓궂은 농담을 던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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