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후원에서

- 다섯 권의 책을 반추하며

by 차거운

비가 내리는 아침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의 고샅고샅을 훑고 다니는 일을 하기 좋은 그런 날이다.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이라는 산문시집에 등장하는 산책자나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떠올리는 것도 좋겠다. 일상적 삶의 거센 흐름 속에 파묻혀 인생의 대부분을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기도 하거니와 가끔은 얼음 구멍 밖으로 숨 쉬러 나오는 물개나 고래들처럼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속살을 더듬어 보는 일은 필요하고 좋은 일이다. 앞으로만 달려갈 것이 아니라 때론 옆으로 게걸음을 해보거나 뒤로 후진하는 일 역시 건강한 삶을 위해 필수적인 일탈적 움직임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은 참으로 귀한 자산이다. 아무리 부유하고 막강한 권력을 지닌 인간이라 할지라도 평범하고 내세울 것 없는 소시민과 공평하게 누리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시간이기에 '메멘토 모리'와 같은 경고성 주문이 도처에서 울려 퍼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집에 쟁여 놓고 읽지 못했던 책들에 대한 부채의식에서 이제 웬만큼 벗어나게 되었다. 많지도 않은 책장에 읽히지 못한 채 놓여 있는 책들을 곁눈질하면서 보낸 시간이 꽤 길었다. 이제 나는 투명한 유리지갑이라고 불리는 직장인으로서 절대적 액수로 보면 많지 않아도 소득 대비 세율로서는 적지 않은 근로소득세와 재산세, 자동차세 등의 각종 세금을 삼십 년 이상 내온 시민으로서 각종 세금으로 운영되거나 관리되는 공공시설과 문화적 자산들을 알뜰하게 활용하여 인생의 남은 시간들을 알차게 채워도 좋은 그런 처지가 되었다. 요즘은 공공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다가 읽는다. 그리고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다 보면 잊고 살았던 약속처럼 떠오르는 욕구들이 있다. 삶을 풍요롭게 해 줄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할 수 있으면서도 엄청나게 큰 비용을 들일 필요가 없는 그런 일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다. 이를 테면 유홍준 관장의 <문화유산 답사기 서울 편>을 읽고서 종묘에 가서 다시 찬찬히 살펴보는 일에는 왕복 전철 요금과 입장료 천 원과 점심식사비 정도가 필요하다. 그래서 지난번에 집사람과 함께 몇 시간을 내어 다녀왔다. 오늘은 혼자서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고 창덕궁엘 갔다. 창덕궁과 그 후원을 보고 붙어 있는 창경궁까지 전체적으로 휘돌아서 보았다. 그리고 점심 식사를 하고 성균관까지 마저 돌아보고 오후에 귀가했다.

창덕궁에 가서 돌아보다 보면 답사기에서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고 사진으로 보여주는 모습과 막상 실제로 가서 볼 수 있고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제한되어 있는 요소들이 많아 꼼꼼하게 살펴보거나 학술적으로 검증하듯 그렇게 답사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사전에 자료들을 충실하게 읽고 간다면 주마간산 격으로 지나치며 보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눈길로 문화유산 답사를 할 수 있다. 하나의 책, 한 사람의 인간, 한 장소에 대해서 접촉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대상에 대한 이해와 관계 맺음의 양상은 변화를 거듭하게 마련이다. 부버가 말하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소유와 존재의 관계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일찍이 헤겔이 그의 <법철학 서문>에서 말하듯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성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지금 나는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 수영이 '역사는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라고 한 그런 의미가 이제는 무슨 뜻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조고각하! 발 밑을 보라.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좀 더 냉철하게 이해하고 긍정하는 토대 위에서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고 꿈꾸지 말라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꿈 없는 현실은 끔찍한 영원회귀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을이 오면 이 창덕궁 후원은 단풍이 물들어 더욱 고즈넉하고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한다. 사실 이 날도 외국인과 내국인 관람객이 우중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많았다. 사계절의 고궁을 볼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지금 그것까지 욕심을 부려 기약할 일은 아닌 듯하기에 오늘은 오늘의 몫만큼 허락된 이 시간을 즐거이 누리는 것이 좋겠다. 아직도 마음의 번잡함을 더 내려놓을 것이 많이 남아 있다고 본다. 더 비워야 하리라.

영조의 긴 재위 기간과 장수를 생각할 때 정조의 아쉬운 죽음과 순조와 효명세자 그리고 헌종으로 이어지는 왕위 계승의 아쉬운 점을 생각하게 된다. 순조가 성장할 때까지 정조가 더 살아서 재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가 요절하지 않고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다면 헌종과 철종, 고종으로 이어지는 조선 말엽의 흔들림이 조금 나아졌을까. 역사에는 가정이 의미가 없다지만 이 후원을 거닐다 보니 이런저런 상념이 솟구치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부용지와 영화당, 규장각, 사정기 비각이 부영지의 사면을 채우고 있는 공간을 지나 효명과 순조의 사연이 집약된 의두합과 연경당 애련정 등이 이어진다. 신분사회의 정점에 해당하는 왕실의 삶에서 다른 차원의 삶을 꿈꾸었을 법도 한데 누구나가 그러하듯 꿈은 쉽게 허락되지 않는 법이다.

연경당을 휘돌아 살피고 후원의 문을 통과해서 산길처럼 한적한 길을 따라가면 승재정, 폄우사, 존덕정, 관람정 등의 정자 건물들이 물가로 잇닿아 있다. 특히 존덕정의 현판에 새겨진 정조의 '만천명월주인옹 자서'는 많이 언급되는 글이다. 정조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며 군왕으로서의 무게를 감당하고 한편으로 자부하였는지를 알게 한다. 월인천강지곡의 종교적인 차원의 맥락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며 바로 옆의 폄우사의 의미와도 연결될 수 있으리라 본다. 내게 사진을 찍어주기를 요청한 외국인의 부탁을 받고 사진을 찍어주면서 만약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에 가서 외국인으로 그곳을 살펴볼 때 스페인의 역사에 대해서 알지 못한 채 외관만 둘러본다면 많이 피상적인 한계가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한 번 가 본 곳에 대한 기억은 알고자 하는 욕구를 촉발시킬 수 있기 때문에 사후적으로라도 학습 동기가 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기억을 생산하는 일이며 그 기억은 그 사람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갱신되며 살아남을 것이기에 직접적인 체험은 가치 있는 일이 된다.

옥류천으로 진입하는 도로는 공사로 인해 출입 통제가 되고 있었다. 아쉽지만 여기까지다. 아쉬움에 사진기를 정리하고 홀가분하게 후원 전체를 다시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한다. 내린 비에 도로에 작은 웅덩이와 여린 물의 흐름이 생겼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땅 위에 흐르는 물을 핥아 마시고 있었다. 고양이의 삶이 쉽지 않아 보이는 것이 목 주변의 털은 괜찮은데 그 아랫부분은 털이 뭉쳐져 떡진 상태로 보였다. 작년 임자도의 대광리 해수욕장에서 만난 들고양이의 표정이 떠올라 한참을 지켜보다가 사진을 한 장 남겼다. 창덕궁 후원의 고양이다. 예전에는 인왕산 근처에도 호랑이가 출몰했다고 한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세월은 흘러도 생명은 삶은 역사는 이어진다. 어떤 역사를 만들어갈지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일이다. 낙선재에서 조선 왕조의 마지막 후손들이 생을 마치고 이제 되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 되었다. 이제 고궁은 이 땅 모든 사람의 공유재가 되었다. 소중하게 잘 간수해야 하리라.

최근에 읽은 책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한다. 시집 두 권은 장석원의 <아나키스트>와 이정록의 <의자>다. 장석원의 시는 잘 모르겠지만 미술로 치면 추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이정록은 잔치국수의 멸치 육수 맛을 풍기는 구상화라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나는 잔치국수를 좋아한다. 그건 내 성향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편식을 많이 하지는 않으려 한다. 모든 것은 나름대로 의미와 가치와 전략이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문학적 응전의 결과이기 때문에 존중한다. 그렇지만 진리는 단순하다. 단순함과 복잡함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분리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믿는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과 성당 앞자리를 차지하고 묵주기도에 잠겨 있는 주름진 노인의 믿음이 우열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유홍준 현 국립박물관장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권>의 결과가 오늘의 창덕궁 나들이의 추진력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그리고 나머지 두 권은 문학상 수상작품집인데 우리 소설의 연대기적 흐름을 짚어 보기에 좋은 자료이기 때문이다. 2008년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수상작은 김애란의 <칼자국>이고 2020년 현대문학상 수상작품집의 수상작은 백수린의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다. 김애란의 경우 <달려라 아비>를 읽은 적이 있다. 학생들도 곧잘 읽은 책이다. 각 작품집에 실린 작품들의 창작자들의 면면은 익숙하지 않거나 이름 정도 알고 있는 정도다. 이것은 오로지 나의 게으름과 먹고살면서 한정된 시간과 체력을 다른 곳에 쏟아온 탓이니 부끄러워해야 한다. 앞으로 우리 문학의 최근 흐름에 해당하는 작품들을 집중해서 읽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그분만이 아신다. 살아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서 세상을 읽고 만지고 걷고 바라보고자 한다. 세상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죽음이 너무 많다. 의미를 굳게 껴안아야 한다. 희망을 간직해야 한다.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정현종 시인의 시구처럼). 한눈팔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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