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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비 Sep 26. 2022

[짧은 소설] 가옥에서


염창동 유승용 대통령 가옥 

鹽倉洞 柳昇龍 大統領 家屋     


 현판을 발견한 건 칠월 말 한여름의 오후 두 시쯤이었다. 여름휴가 기간이었지만 딱히 갈 곳도, 만날 사람도, 할 일도 없었던 나는 며칠을 원룸 오피스텔 방바닥을 뒹굴며 케이블 티브이에서 방영하는 철지난 영화를 보며 지냈다. 그러다 문득 달력을 보니 휴가는 겨우 하루하고 절반 정도가 남아있었고, 어쩐지 억울한 기분이 들어 서둘러 옷을 꿰입고는 집을 나서 목적도 없이 동네를 터덜터덜 걷고 있던 중이었다. 날은 더웠고, 손에 든 휴대용 선풍기 바람은 점점 미지근해져서 억울한 기분은 어쩐지 조금 더 억울해졌는데, 그러고 걷고 있자니 그냥 에어컨 바람 시원한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무리 전 직원이 일곱 명 뿐인 작은 회사라지만 정해진 날짜에 죄다 여름휴가를 가져야하는 건 불합리한 게 아닌가, 생각하고 나니 월급은 쥐꼬리만큼 주면서 허구한 날 지청구를 해대는 사장과 그 밑에서 샐샐거리는 부장 얼굴이 생각났고, 젠장 집에 가서 잠이나 자야겠다,하고는 발걸음을 돌렸을 때 불현듯 그 현판이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손바닥 두 개만한 황동 현판에 한글과 한자, 두 줄로 적힌 글자를 읽으며 나는 고개를 갸우뚱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아니, 유승용 대통령이라니. 내가 아무리 정치에 별반 관심이 없고 한국 근현대사를 잘 몰라도 그렇지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이름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유승용 대통령이라니.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말고 대통령이 또 있었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황당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여긴 늘 다니던 길이 아니긴 했지만 그렇다고 생판 처음 와본 길도 아니어서, 아주 가끔은 산책 삼아 오가곤 했던 골목에서 이런 현판을 발견하고 나니 어라, 여기 이런 게 있었던가, 생뚱맞은 느낌이 들고 말았던 거다. 

 높지 않은 콘크리트 블록 담장 너머로 작은 마당이 이어지고 붉은 벽돌로 지은 단층집이 있는 단독주택이었다. 개발이 더딘 서울 변두리, 좁은 골목이 뒤엉킨 주택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흔한 팔십년대 풍의 낡은 단독주택. 전직 대통령 가옥이라기엔 꽤 초라해 보이는 그 집 담장 앞에서 나는 까치발을 하고 고개를 쭉 뺀 채 안을 들여다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철컹, 그 때 철재 대문이 열렸다.      


 남자는 육십대 초반쯤으로 보였다. 탈모가 꽤 진행돼 정수리는 성겼지만 성성한 머리칼을 단정히 빗어 넘겼고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집안인데도 말쑥한 양복 차림에 나비넥타이까지 매고 있었다. 찻상을 사이에 두고 그와 마주 앉았는데, 남자의 단정한 복색과는 정반대로 목 늘어난 빨간색 반팔 티셔츠에 운동복 반바지, 게다가 지저분한 맨발 차림새로 앉아있자니 어쩐지 나는 교장선생님 앞에 불려온 열 살 꼬맹이가 된 듯 겸연쩍은 심정이 됐다. 들어오란다고 어물쩍 따라 들어와 이러고 있는 게 멍청하게 느껴졌다. 

 “편안하게 계시지요. 손님이 찾아온 건 참 오랜만입니다.”

 “아니…… 저는 뭐…… 일부러 찾아온 건 아니고요…….”

 왜 사람은 쑥스럽고 어색하면 뒷목을 긁적이게 되는 건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어리벙벙해 있을 때 쟁반을 든 여자가 다가와 무릎을 꿇고 앉아서는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밥알이 동동 뜬 식혜와 한과, 단팥빵과 씨를 발라낸 참외가 찻상 위에 놓였다. 삼십대 후반쯤 됐을까, 여자는 남자의 아내라기엔 너무 젊었고 딸이라기엔 또 나이가 들어보여서 어떤 관계인지 전혀 감이 오질 않았다. 긴 생머리와 흰 피부, 마른 체형 때문인지 여자는 어쩐지 병색이 짙어 보였는데 그 와중에 검은색 민소매 원피스 아래로 불룩 솟은 가슴은 꽤 풍만해서 나는 자꾸만 뭔가 잘못된 것만 같은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남자가 입을 열었다. 

 “좀 드시지요. 아직 등록문화재 지정도 못 받았고 해서 따로 관리인이나 해설사도 두질 못했지만 후손들이 근근이 가옥을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대통령님이 살아생전에 사용하셨던 집기들도 대부분 잘 보존돼 있고요.”

 “예…… 저기 그런데 죄송한데요…… 이것 참…… 제가 잘 몰라서요. 솔직히 유승용 대통령님은 제가 처음 들어봤거든요.” 

 “충분히 그러실 수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워낙 재임 기간이 짧았고, 역사책에도 기록되질 않았으니 일반인들은 잘 모르시는 게 어쩌면 당연하지요.”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 벽면 책장에 놓여있던 액자를 들고 왔다. 액사 속엔 흑백 사진 한 장이 끼워져 있었는데, 태극기가 걸린 벽을 배경으로 양복차림의 남자 여럿이 의자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 이 분이 유승용 전 대통령님이십니다. 옆에 계신 분이 당시 비상국무회의 부의장을 맡았던 최규하 국무총리시고요.”

 “아, 예…….”

 대답은 했지만 사실 사진은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색이 바래있었다. 하긴 뭐 또렷한 사진이었어도 내가 알아볼 수 있는 얼굴은 없었을 거다. 

 “1979년 10월 26일에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되자 당시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비상국무회의를 소집하고 비상계엄령을 선포합니다. 이틀 뒤에 비상국무회의에서 전두환 소장을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에 임명하는데 이때 새 대통령을 함께 추대했지요. 이 분이 바로 유승용 대통령이십니다. 최규하 국무총리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12월 6일까지 40일 동안 대통령직을 수행하셨어요. 너무 짧은 기간이었고, 통일주체국민회의가 비상국무회의의 대통령 추대를 인정하지 않아서 역사에서도 지워져버린 겁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남자가 여기까지 설명했을 때 말없이 앉아있던 여자가 한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흑,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했다. 단팥빵을 집어 들고 한입 베어 먹으려던 나는 빵에 잇자국만 남긴 채 슬그머니 입을 떼곤 찻상 아래로 빵 든 손을 감춰야했다. 나는 또, 자꾸만, 멍청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허, 이 사람이…… 아이고 이거 참 죄송합니다. 우리 대통령님 얘기만 나오면 저렇게 시도 때도 없이 눈물바람이라…….”

 “아…… 아닙니다……. 저는 그런 역사를 전혀 몰랐습니다. 이제라도 알게 됐으니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해주신다니 감사드립니다. 아무튼, 역사는 우리 대통령님을 외면했지만 후손들은 각하를 대한민국 9.5대 대통령으로 모시고 지금까지 이 가옥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훌륭한 일을 하고 계십니다.” 

 “감사합니다.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자가 눈물을 훔쳐내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나 역시 여자가 고개를 숙일 때마다 연신 고개를 숙이며 아이고, 아닙니다, 그랬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나 역시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됐다. 한국 역사의 어두운 단면을 들여다보고 어떤 거대한 진실을 마주한 것 같은 비장한 기분까지 들었다. 내가 멍청한 게 아니라, 이런 진실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이 죄다 멍청이 같았다. 나는 어쩐지 기분이 좋아졌다.      


 오천원  1만원  2만원  3만원  5만원  기타(         )     


 “꼭 하시라는 건 아닙니다. 부담 갖지는 마시고, 혹시 마음 내키신다면 조금 도와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후원금은 잊혀진 우리 역사를 바로잡고 가옥을 보존하는 일에 쓰입니다.” 

 큼지막한 고딕체로 후원금 자동이체 CMS 신청서,라고 쓰인 종이를 받아들었을 때 나는 역사의 소용돌이를 벗어나 비로소 현실 세계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에어컨 바람이 꽤 셌는지 맨살이 드러난 종아리와 팔뚝이 서늘했다. 속으로는 아, 이건 좀 어렵겠습니다,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입술만 달싹거릴 뿐 몸은 마음처럼 움직여주지를 않았다. 여자가 건네준 모나미 153 볼펜을 들고 오천원 표기란 근처로 가져가려는데 자꾸만 아까 얻어먹은 식혜며 한과, 단팥빵과 참외가 생각났다. 여전히 흐트러지지 않은 남자의 단정한 차림새는 새삼 부담스러웠고,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던 여자의 모습도 자꾸만 떠올랐다. 나는 이만원 표기란에 가위 표시를 했다.    

  

 여름휴가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는 모처럼 꽤 규모 있는 프로젝트를 맡게 됐고 덕분에 업무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연일 야근에 주말도 없이 일하는 와중에 나는 대부분 그 가옥을 잊었고 아주 가끔 떠올렸다. 후원 기념품이라든가 후원인의 밤 행사 초대장 같은 게 날아오지는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옥에선 아무런 기별도 없었다.

 다시 그 가옥을 찾은 건 옷깃을 파고드는 기운이 제법 차가워진 시월 말이었다. 오래된 단독주택이 다닥다닥 늘어서있던 골목은 통째로 사라졌고, 그 자리엔 높다란 오피스텔 건물이 올라가는 중이었다. 주변을 샅샅이 돌아봤지만 가옥이 어딘가로 옮겨갔다는 안내문은 보이지 않았다. 인터넷을 뒤져봐도 마찬가지였다. 유승용 전 대통령에 관한 정보는 애당초 찾아볼 수 없었고, 논술학원을 운영한다는 유승용 씨가 올려놓은 대학 입시 관련 블로그 글만 잔뜩 검색됐다.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 채 터덜터덜 골목을 빠져나왔던 그 여름날 오후처럼, 역시나 터덜터덜 걸어 원룸 오피스텔로 돌아가면서 나는 그 두 사람이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모름지기 어떤 진실이란 건, 명명백백 드러나지 않기에 더욱 중요한 것 아니겠냐는 생각도 했다. 오늘도 통장에선 이만원이 빠져나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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