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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비 Oct 03. 2022

[짧은 소설] 웃어요, 딸꾹

 “쓸데없이 웃지 마라. 감정을 낭비하면 안 돼.”

 봉식씨가 근엄한 표정으로 꾸짖자 조금 전까지 쌓아올린 블록을 무너뜨리며 까르르 웃던 일곱 살 윤지의 얼굴은 금세 울상이 됐다.

 “울어도 안 된다. 이런 건 울 일도, 웃을 일도 아니야. 넌 이제 아기가 아니잖니.”

 윤지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알 수 없었고 그래서 억울한 기분이 들었지만 곧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꾹 참았다. 애써 앙다문 입술이 실그러졌다. 웃을 때마다 주의를 받다보니 이해가 가지는 않아도 원래 그래야하는 건가보다, 여기게 됐다. 윤지는 감정이 뭐냐,고 물었지만 봉식씨는 예의 그 근엄한 얼굴을 유지한 채 대답이 없었다. 집 안은 고요했다.

 감정에는 총량이 있다. 쓸 수 있는 모든 감정을 다 써버리고 나면, 이제 더 이상 어떤 감정도 느끼거나 표현할 수 없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굳은 표정을 짓게 되는 노인들과, 서로에 대한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한 채 의무적으로 관계를 이어가는 연인들, 나란히 앉아 TV 화면을 바라보는 것 밖에는 함께 할 일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가족들은 이미 감정을 모조리 소진해버린 좋은 예다. 감정에 정해진 양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과학자들은 이를 계량화해 관리가 가능하도록 하는 연구에 매진했다. 하지만 허사였다. 사랑의 크기, 슬픔의 크기, 행복의 크기……. 이런 건 애당초 측량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감정의 총량은 저마다 다르기 마련이었고, 사실은 그걸 미리 알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남은 수명을 미리 알고 싶지 않은 것처럼, 사람들은 두려워서, 또는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 비교당하는 게 싫어서 감정의 총량을 알아내는 일에 애써 무관심했다.

 사람들은 점점 감정을 드러내지 않게 됐다. 잘 웃고, 감동받고, 슬퍼하는 이들은 아까운 감정을 낭비하는 철없는 사람으로 취급됐다. 사람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인사를 나누고 주어진 일을 하며 살았다. 감정에 동요를 일으키기 쉬운 것들은 점차 사라졌다. 음악이 사라졌고, 방송국에선 드라마나 영화, 예능 프로그램 대신에 뉴스와 다큐멘터리로 편성표를 가득 채웠다. 서점에선 시집과 소설책이 사라졌다. 문학은 감정을 낭비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콘텐츠로 낙인찍혀 외면 받았다. 감정을 다스리는 법, 마음의 평안을 얻는 법, 감정 동요 없이 타인과 소통하는 법 같은 실용서적이 서가를 가득 채웠다.

 아이들은 더 이상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지 않았다.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무거운 표정을 짓고는 잠잠하게 앉아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감정을 낭비하다가는 나중에 감정 없는 사람이 된다, 부모들은 근엄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꾸짖었다. 아이들이 웃지 않게 되자 노인들도 웃을 일이 없어졌다. 아무도 웃지 않는 세계는, 고요했다.


 봉식씨가 나서게 된 건 순전히 윤지 때문이었다. 남의 일에 왈가왈부하는 건 그의 성미에 맞지 않는 일이었지만, 부모로서 본을 보여야겠다는 생각이 그의 등을 떠밀었다. 큭큭, 숨죽여 웃는 소리가 들려온 건 토요일 오후, 봉식씨와 윤지가 지하철6호선에 타고 있을 때였다. 봉식씨는 윤지를 데리고 구청에서 열린 ‘예비 초등학생을 위한 감정 동요 없이 학교생활 적응하는 법’ 강좌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지하철이 마포구청역을 출발해 망원역, 광흥창역, 삼각지역을 지나 녹사평역에 도착할 즈음이었다. 큭큭, 크크큭…… 키득거리는 소리에 드문드문 좌석에 앉아있던 이들의 눈이 일시에 커지면서 한 방향으로 쏠렸다. 공공장소에서 웃다니,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 웃음소리를 낸 사람은 삼십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출입문 바로 옆 좌석에 앉아 있는 그의 손에 들려있는 건, 맙소사, 만화책이었다.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드러내놓고 경멸의 눈빛을 쏘아대는 이들도 있었다. 그때 윤지가 말했다.

 “아빠, 저 아저씨 왜 저래?”

 “쳐다보지 마라. 신경 쓰지 마.”

 “책이 되게 재밌나봐. 근데 웃으면 안 되는데.”

 사람들의 시선이 이번에는 일제히 봉식씨와 윤지에게 향했다. 봉식씨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곧 마음을 추스르고는 어험, 헛기침을 한번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에게 다가갔다. 남자는 봉식씨가 다가오는 것도 모른 채 만화책에 코를 박고는 큭큭큭, 여전히 웃고 있었다.

 “저기, 실례합니다만…….”

 “예?”

 그제야 고개를 들어 봉식씨를 올려다보는 남자의 얼굴은 애써 웃음을 참느라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입 꼬리는 올라갔고, 눈에는 눈물까지 그렁했다. 그런 표정을 본 게 너무 오래라, 봉식씨는 무춤, 놀라야했다. 그 순간 딸꾹, 갑자기 딸꾹질이 나기 시작했다.

 “이봐요. 딸꾹, 거 알만 한 사람이 딸꾹, 공공장소에서 딸꾹, 그러시면 딸꾹.”

 봉식씨를 쳐다보는 남자의 얼굴이 씰룩거렸다. 양 볼이 부풀어 오른 것이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질 것 같은 표정이었다.

 “어린 애도 딸꾹, 있는데 딸꾹, 아우 이거 왜 이러지 딸꾹, 그런걸 보면 딸꾹, 보면서 딸꾹, 감정을 낭 딸꾹, 낭비하면 어떡 딸꾹, 어떡합니까? 딸꾹.”

 와하하하, 그 순간 남자의 웃음보가 터졌다. 봉식씨를 비롯해 지하철 안에 있던 사람들의 눈이 더욱 휘둥그레졌다.

 “으하하하 아저씨, 아저씨 너무 웃겨요. 뭐라고 하시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와하하하……”

 “아니 딸꾹, 아니 이 딸꾹, 이 사람이 딸꾹.”

 “으큭큭큭…… 아저씨, 아우 참 큭큭큭, 웃는 게 뭐가 나빠요. 좋잖아요. 쿡쿡쿡…… 웃고 살자고요 좀, 큭큭큭……”

 남자는 이제 거의 우는 듯 웃고 있었다. 눈물이 양 볼을 타고 흘러내릴 지경이었다. 봉식씨는 아주 오랜만에 화가 났다.

 “이 딸꾹, 이 사람 딸꾹, 안 되겠구 딸꾹, 안 되겠 딸꾹, 안 되겠구만! 딸꾹.”

 “감정을 아끼느라 감정 없이 사는 거랑, 큭큭큭…… 다 써버려서 감정 없이 사는 거랑 뭐가 달라요. 으흐흐흐…… 아저씨 이게 얼마나 큭큭큭, 웃긴데요.”

 남자가 일어서 봉식씨의 코앞으로 만화책을 들이밀었다. 깜짝 놀란 봉식씨가 휘두른 팔에 맞은 만화책이 휙, 날아갔다. 그 때였다. 남자가 양팔을 뻗어 봉식씨의 옆구리며 겨드랑이를 간질이기 시작했다. 어이쿠, 봉식씨가 주저앉았다. 남자는 그래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지하철 바닥에서 두 남자가 뒤엉켰다.

 “으커컥…… 딸꾹, 이게 딸꾹, 무슨 딸꾹, 무슨 짓입니까! 딸꾹.”

 “웃어요, 아저씨, 으하하하, 웃자고요!”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둘이 나뒹구는 모습을 지켜봤다.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갔다.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이번 역은 버티고개, 버티고개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아저씨, 큭큭 버티고개래요. 큭큭큭큭…… 버티고개…… 버티지 말아요. 큭큭큭 웃기잖아요. 웃어요, 큭큭……”

 “아니, 딸꾹, 이 사람 딸꾹, 왜 딸꾹, 왜 이래요 딸꾹, 큭큭큭큭, 으허허허헉 딸꾹.”

 아빠 웃었다! 뒤엉킨 둘을 제외하고 먼저 웃음이 터진 건 윤지였다. 윤지가 까르륵 웃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에서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봉식씨는 이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고, 지금 왜 지하철 바닥에서 낯선 남자와 부둥켜안고 뒹구는 건지, 자꾸 웃음이 났고, 이제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고, 실은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르겠고, 간지러웠고,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고, 좋은 것도 같았다. 지하철 안이 왁자했다. 윤지가 바닥에 떨어진 만화책을 슬쩍 집어 들었다. 모두가 웃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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