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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비 Oct 10. 2022

[소설 리뷰] 내 반쪽이 내 반쪽을 싫어합니다

이탈로 칼비노 『반쪼가리 자작』

마음 속 선과 악이 부딪치는 경험. 사안에 따라 경중은 있겠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겪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머리 양 옆에, 천사와 악마가 하나씩 자리를 잡고는 각자 착한 일과 못된 짓을 부추기는 그런 거. 그런데 이건 좀 귀여운 상상이고, 여기 쿠바 태생의 이탈리아 소설가는 좀 더 끔찍하고 음침한 상상을 풀어놓는다.

      

호르레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와 함께 현대 문학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작가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 1923~1985)의 소설  『반쪼가리 자작』은 선과 악, 양쪽으로 두 동강난 한 사내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게 비유가 아니다. 사내는 마음만 쪼개진 게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몸뚱이가 ‘두 동강’ 난다.

       


17세기의 어느 날, 이탈리아 명문가 출신의 메다르도 자작은 기독교도와 투르크인 간의 전쟁에 참전한다. 이제 갓 청년기에 접어든 그는 여느 젊다 못해 어린 귀족 자제들이 그렇듯 세상 물정에는 어두웠고 쉬이 흥분했다. 전투 중 타던 말이 죽어버려 두발로 전장을 뛰며 육박전을 벌이던 메다르도 자작은 급기야 적의 대포를 향해 돌진한다. 그런데 이 무모함이란! 대포의 후방이나 측면이 아닌 포문을 향해 정면으로 뛰어든다. 막으려는 입장에선 어쩌겠나. 저 무모한 적군의 가슴을 향해, 대포 발사.

     

한차례 전투가 끝난 뒤,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메다르도 자작의 모습은 끔찍했다. 정확하게 몸의 왼쪽 절반이 사라져버린 것. 한쪽 팔과 한쪽 다리, 얼굴로 말하자면 한쪽 귀와 한쪽 뺨, 반쪽 코와 반쪽 입, 역시나 반쪽인 이마와 턱만 남아있다. 반쪽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데 놀랍게도 남은 반쪽은 긁힌 흔적 하나 없다. 의사들은 그를 보고 모두 즐거워했다. “우와, 신기한 일이야!” 그러곤 반쪽짜리 메다르도 자작을 꿰매고, 맞추고, 혼합했다. 그리고 다음 날, 그는 깨어났다.

     

메다르도 자작은 전쟁터에서 돌아오자마자 온갖 악행을 일삼는다. 작물을 망쳐놓는 건 애교다. 조카에게 독버섯을 따주고, 유모를 문둥병자로 몰아 사지로 내쫓았으며, 다리를 망가뜨려 사람들을 떨어뜨리고, 가난한 농부의 집에 불을 질렀다. 재판에선 사형을 남발해 재판정에 서는 족족 교수대에 매달려 죽어갔다. 살아 돌아온 메다르도 자작의 사악한 반쪽의 악행으로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갔다.

      

그런데 이 신비롭고도 비극적인 사건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포화에 사라진 줄만 알았던 메다르도 자작의 나머지 반쪽이 홀연히 나타난다. 그러니까, 그의 왼쪽이다. 또 다른 반쪽 자작은 먼저 돌아온 반쪽과는 정확하게 정반대의 인격을 가졌다. 그는 고향땅 구석구석을 돌며 사람들을 돕고 온갖 선행을 일삼는다.

      

선과 악이 대립할 때, 우리는 어느 편을 응원할까. 대부분은 선을 응원하고, 일부 악당들이나 악을 응원하는 게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경우이겠지만 작가는 조금 다른 상황을 보여준다. 처음엔 모두가 반겼으나 지나친 선, 완벽한 도의 앞에 사람들은 조금씩 지쳐간다. 모든 걸 내어주고 베풀라는 요청은 누군가에겐 위협이 되기도 한다. 때로 어떤 선행은 의도와 달리 정반대의 결과를 낳기도 한다. 다리가 불편한 이를 측은히 여겨 건네준 지팡이가 아내의 등뼈를 부러뜨리는 흉기가 되는 식이다. 그러니까, 너무 악한 악과 마찬가지로 너무 선한 선 또한 문제를 일으키고 마는 묘하지만 있을법한 상황이 벌어진다.

      

“착한 반쪽은 매번 그들의 곡창에 곡식이 얼마나 있는가를 감시하러 와서는 곡식의 매매 가격이 너무 높다고 설교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여기저기 하고 다녀 위그노들의 장사를 망쳐 놓았다. 그렇게 테랄바에서의 나날들이 흘러갔다. 우리들의 감정은 색깔을 잃어버렸고 무감각해져 버렸다. 비인간적인 사악함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비인간적인 덕성 사이에서 우리 자신을 상실한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109p

     

선과 악으로 나뉜 반쪽들은 당연하게도 대립한다. 선과 악을 떠나 일단 한 인물이 둘이니 이건 어느 한쪽을 정리할 밖에 도리가 없다. 더욱이, 반쪽의 자작 둘 다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됐으니 말 다했다. 이제 둘은 하나를 죽여 하나가 되기 위한 결투에 나선다. 자, 승리하는 건 어느 반쪽일까.

     

이탈로 칼비노는 『반쪼가리 자작』을 통해 도덕적으로 분열된, 혼란을 겪고 급기야 자기 자신을 적으로 만든 채 살아가는 상처 입은 현대인들을 그린다. 균형을 이뤄야하지만 어느 한쪽에 극도로 치우쳐버린 반쪽 인간은 메다르도 자작만이 아니다. 소설 속 마을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누구 하나 치우치지 않은 이가 없다. 누군가는 본분을 잊고, 누군가는 자신을 속이며, 누군가는 자기연민에 젖은 채 쾌락만을 추구하고, 누군가는 규율에 매몰돼 그릇된 신앙을 좇는다. 누구하나 ‘반쪼가리 인간’ 아닌 이가 없다. 어쩌면 그걸 따지는 건 불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완전한 인간’이란 사실 존재할 수 없는 게 아닌가. 그래서 종종 인간은 절대자, 완벽한 존재를 신앙하는 게 아닐까.

      

“세상 모든 사람들과 사물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야. 사람이든 사물이든 각각 그들 나름대로 불완전하기 때문이지.…… 반쪼가리가 되었거나 뿌리가 뽑힌 존재는 나만이 아니야.” 88p

    

『반쪼가리 자작』은 동화적 요소가 다분한 환상 소설에 속한다. 수많은 근사한 환상 소설이 그렇듯 이런 비현실적 요소들은 현실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더욱 극명히 밝혀주는 장치로 쓰인다. 작가가 빚어놓은 신비한 세계관과 마법 같은 사건을 따라 걷노라면 독자들은 어느새 오늘날의 나와 우리의 민낯을 마주하고 깊숙한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소설은 묻는다. 지금 당신은 어떠한가. 눈에 보이는 것처럼 당신은 반쪽이 아닌가. 또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가. 완벽하다는 건 무엇인가. 절대 선과 절대 악, 이들은 어떻게 화해할 것이며 우리는 어떤 인간을 지향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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