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분위기
추석을 맞아 오랜만에 서울에 갔다. 지나간 여름과 다가오는 겨울 준비를 위한 짐 정리로 큰 캐리어와 함께였다. 한창 무화과 철이라 가족들 줄 생각으로 스티로폼 박스도 가지고 있었기에 곧장 집으로 가는 편이 나았다. 다만 친구들과 일정을 조율하다 보니 적당한 날이 당일뿐이어서 최대한 역 근처로 약속을 잡았다.
만남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점, 친구의 한 마디가 나를 자극했다. “짐이 있으니까 아버지께 연락드려봐.” 옆에서 또 다른 친구도 거들었다. “그래, 혼자 가져가기 무겁잖아.” 나는 괜찮다고, 혼자 갈 수 있다고 대답하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빠에게 연락을 했다. 사실 알고 있었다. 그가 오늘 등산하러 가는 스케줄이라는 것도, 서울 시내로 마중을 나오는 일은 좀처럼 없다는 것도.
역시나 예상한 답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심 기대를 했는지 속이 상했다. 몇 달 만에 집에 가는 거니까 특별 대우를 바랐나 보다. 하산을 한 뒤 집에 도착해 막 샤워를 마친 상태였던 그는 무릎이 아프고 피곤하다고 했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도 충분히 이해는 갔다. 하지만 머리와 마음은 따로니까 다운되는 기분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될 줄 다 알고 있었으면서, 혼자서도 잘 들어갈 거였으면서 괜히 전화는 해가지고.
각자의 집안 분위기는 다 다르다. 차를 끌고 마중 나오는 것, 어딘가로 데려다주는 것, 누구냐에 따라서 쉬운 일이기도 번거롭게 느끼기도 한다. '우리 집은 이렇지'라고 스스로에게 덤덤한 척을 한다. 집에 가는 마지막 관문인 버스를 탔을 무렵 아빠에게서 다시 전화가 온다. ‘으이구 우리 아빠’ 미안한 마음에 한숨이 푹 나온다. 부모의 마음이란 이런 걸까. 무릎이 아픈 건 핑계가 아니라 사실이고, 너 또한 중요하다고. 정류장을 향해 걸어오는 아빠의 모습을 보니 눈이 뜨거워진다. 재빠르게 고개를 떨구고 눈을 질끈 감아 물방울을 털어낸다. 다시 또 덤덤한 척 그를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