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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만 꾸다 20대가 홀랑 지나가 버렸다.

Chapter 1. 눈 떠보니 유부녀, 나의 결혼기(1)

by 온다정 샤프펜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은 나였다'

만화가, 글 쓰는 작가, 애니메이션 감독, 가수, 밴드의 일원, 애니메이션 성우, 잡지 뷰티모델, 리포터가 되고 싶었고 영어도 잘하고 싶고, 일본어도 잘 하고 싶었다.

그 밖에도 뭔가 새로운 것을 접하면 금방 그것이 하고 싶어지는 성격이었다.

결론은 그중 뭐 하나 제대로 한 것이 없다. 그나마 열심히 한 일이라고는 친구들과 어울려 신나게 논 것!

결혼 전, 노는 일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열정을 불태워 놀았다고 장담할 수 있다.


노는 와중에도 항상 가슴속에 뭔가 허황되고 원대한 꿈(크레용 신짱 정도의 인기 만화작가라던가, 미국 유명 애니메이션 회사의 감독이 된다던가, 폼 나는 뮤지션이라던가)을 꾸고 있었지만, 정작 그것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은 실천에 옮기지는 못 한 채 그때그때 상황에서 제일 끌리고 재밌어 보이는 일들에 휩쓸려 맘 가는 데로 적당히 즐기며 살아왔던 것 같다.

출판사에 만화 원고를 보냈을 때도, 겨우겨우 마감을 끝냈고, 우연한 기회로 TV 만화영화 주제곡을 부르게 되었을 때도 내가 정말 최선을 다해서 불렀나 싶고, 그림 전시회를 하게 되었을 때도 마감에 쫓겨 완성작이라고 하기도 뭐 한 것들을 이 정도면 됐다며 마무리했고, 20대 초반에 잡지 모델이 되고 싶어서 수동 카메라까지 동원해서 프로필 사진을 찍었지만 왠지 막판에 시시해져서 결국 잡지사에 지원서를 보내지 않았다.

영어는 워낙에 못 했기에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은 마냥 동경의 대상일 뿐이었고, 일본어도 10년 가까이 공부했지만 말 한마디 못 하는 수준이었다.

19살 때 X-JAPAN에 빠져서 20살이 되던 해 기타가 배우고 싶어 친구를 꼬셔 같이 기타 학원에 찾아갔지만, 갑자기 마음이 바뀐 친구를 따라 나도 등록을 포기했다.

그만큼 절실함이 없었던 걸까? 절실함도 없었지만, 그것 말고도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렸었고, 뭐든지 자신이 있었고, 나의 20대가 영원히 이어질 거란 착각 속에 살았다.

가슴속에 있는 원대한 꿈은 언젠가 꼭 할 꺼야! 하지만 지금은 이게 더 재미있을 것 같으니 좀 더 즐기며 여유 있게 살아도 괜찮겠지라고 말이다.


어느덧 29살이 된 나는 그때까지 생각해 놓은 것들을 제대로 이룬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룰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에 힘들어하며 30대를 맞이했다.

그때는 나름 디자이너로서 회사 생활에 성실히 임하고 있었는데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내 젊음이 끝나기 전에 뭔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이대로 그냥 평범한 회사원으로 늙어버리는 것이 싫었다.

그러던 중 친하게 지내던 같은 회사 동생과 틈만 나면 회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외국에서의 유학 생활에 대한 동경으로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는데 그 시간이 나름 고됐던 회사 업무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오아시스 같은 시간이 되었고 곧 나의 꿈이 되었다.


세 살이 어렸던 그 동생은 영국으로 미술 유학을 가고 싶어 했다. 나도 그 영향으로 막연하게 영국 유학을 꿈꾸게 되었지만 나와 달리 그 동생은 이미 영어 실력도 갖춘 상태였고, 나이를 비롯한 여러 조건이 나보다 좋았기에 현실적인 계획을 차근차근 세워 6개월이 지난 후에, 영국의 예술 학교 석사과정에 지원하여 당당히 합격하였다.

최종 합격이 결정되기 전, 그 학교 교수와의 인터뷰가 한국에서 진행되었는데 그때 동생의 설레던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내 입장에서 당장 유학을 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지만, 회사 생활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고 뭔가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마침 일본에서 워킹을 하는 친구가 있어서 나도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신청했다. 그러나 서류를 잘 못 작성하여 워킹비자가 거부되었다.

이대로 외국 라이프를 포기할 수 없었던 나는 도쿄 디자인 페스타에 아티스트로 참가하기로 결심하고 지원서를 넣었다.

얼마 후 동생은 영국으로 떠났고 나도 곧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일본으로 떠났다.

언젠가는 꼭 이루고 싶은 미술 유학의 꿈을 마음에 간직한 채, 3개월 간의 도쿄에서의 첫 독립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때는 그 일본행이 내 삶을 완전히 바꿔 놓을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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