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눈 떠보니 유부녀, 나의 결혼기(2)
드디어 낯선 타국에서 3개월간의 내 첫 독립생활이 시작되었다.
버벅대는 일본어로 난생처음 방도 구하고 살림살이도 마련했다.
처음 하는 독립생활이 설레고 두근거리는 마음도 있었지만, 하루 이틀 겪다 보니 나는 생각보다 외로움을 타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게 되었다. 심지어 밤에 낯선 방에서 혼자 자는 것이 무서워 텔레비전을 켠 채 잠들곤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근처 작은 공원까지 조깅을 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간단하게 장을 보고 집에 와서 밥을 먹고는 내내 디자인 페스타 전시를 위해 작업을 했다.
가끔은 전철을 타고 도쿄에서 유명한 기치조지 공원까지 원정을 갔다. 공원 근처의 작은 숍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호수의 오리들을 보며 그림도 그리고 폴라로이드 사진기로 셀프 사진도 찍었다.
이렇게 완벽하게 혼자 뭘 해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좋기도 했지만, 뭘 해도 어색했고 한편으로는 외롭기도 했다.
한창 외로움이 극에 달했을 즈음 우연히 일본 친구의 한국인 한국어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골덴위크'라는 일본 최대 휴가 시즌에 나고야에 사는 한국인 친구가 놀러 오니 함께 딸기 농장에 놀러 가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심심했던 난 당연히 제안을 수락했고, 뭔가 미팅도 아닌 것이 일본인과 한국인이 섞여 3 대 3 청춘 남녀 6명은 딸기밭으로 향했다. 한참 딸기를 따다 보니 자연스럽게 남녀가 짝을 이루고 있었고 어느새 내 옆에도 나고야에서 올라온 선한 인상의 남자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그때까지 난 원대한 꿈이 있었기에 연애와 결혼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배려심 많고 착할 것 같은 그 남자의 조용하고 끈질긴 대시와 고향에 대한 향수병까지 더해 자연스럽게 그 남자와 연인이 되었다.
나고야의 일본 IT 회사에서 근무 중이던 그 남자는 사귀기 전 부터도 나를 보러 매주 신칸센을 타고 도쿄로 올라오더니, 사귄 지 2주 되던 때 갑작스럽게 프러포즈를 했다.
기쁜 마음에 승낙은 하였지만 난 당장 결혼을 할 마음은 없었다.
그런 사실을 이미 알고 한 프러포즈였기에 내가 결혼할 상황이 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난 3개월간의 일본 생활을 마치고 나 홀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한국에 온 후 유학에 대한 마음을 굳게 다지며 유학원도 알아보고 영어학원에도 등록하여 차근차근 유학 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언제까지라도 기다리겠다고 했던 이 남자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비행기를 타고 날 보러 한국에 오는 것이 아닌가.
지성이면 감천이라, 그의 노력이 나의 유학에 대한 의지를 결국 아주 흐릿하게 만들었다.
'영어권 유학도 좋지만 영어 공부하기 힘들지 않냐?' '도쿄에도 좋은 학교가 많다. 일본어 준비는 조금만 해도 되지 않냐' '지금은 회사가 나고야에 있지만 도쿄로 발령을 내달라고 해서 도쿄로 갈 수 있다' '결혼해서도 얼마든지 대학원에 갈 수 있지 않느냐'의 달콤한 말들을 늘어놓더니 결정적인 한방을 날린다.
돈에 환장한 여자로 오해받을 수 있지만 그 마지막 말에 홀랑 넘어가 결혼을 승낙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이 사람이라면 결혼을 해서도 내 일을 인정하며 묵묵히 응원해 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왕 결혼할 거면 단란해 보이는 가족사진을 지갑에 넣고 다니는 이런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벚꽃이 필때 일본에서 그 사람을 만나, 여름이 시작될 무렵에 한국으로 돌아왔고, 한국과 일본사이에서 가을 겨울 동안 장거리 연애를 하며 결혼 준비를 한 후, 다음 해 벚꽃이 활짝 필 때 결혼식을 올리고 일본에 돌아와 다시 벗꽃을 맞이했다.
'결혼은 이렇게 갑자기 오는 것'인가 보다. 정말 인생은 한 치 앞을 예견할 수 없는 것이 맞다.
내가 갑자기 결혼을 발표했을 때 주변 친구들은 '너만은 결혼 안 할 줄 알았는데!' 배신녀라며 원망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그리고 나의 결혼이 도미노의 첫 블록을 넘어트린 것처럼 꿈을 찾아 방황하던 친구들도 하나 둘씩 짝을 만나 결혼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