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한하게도 이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변태라 불리는 인간들이 존재한다.
그 변태들은 전 세계에 고루 분포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다른 국가의 변태를 직접 경험해 보지는 못했지만, 그럴 것도 없이 외국에도 상당한 변태들이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변태들은 남자다. 이 부분에서 편파적 논리다! 납득 할수 없다! 증거를 대라!며 분개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겠지만, 어쩔 수 없이 그것이 사실이다. 나도 왜 인지는 모른다. 그리고 논리적으로도 설명 할수 없다.
그 이유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아온 내가 그 만큼 많은 변태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변에 남자 변태를 만난 여자들의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어왔지만, 여자 변태를 만났다는 남자들의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내 주변의 남자들이 자신이 여자 변태를 만난 것을 일부러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또 모르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든, 지금부터 왜 그런 확신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한 에피소드를 풀어보려고 한다.
이야기를 다 읽고나서도 혹시 인정할 수 없다면, 이건 그냥 나만의 혹은 내 주변인들의 경험담이라고만 해 두어도 좋다.
첫 번째 변태는 중딩시절 만났다. 만났다기보다 귀로 듣게 되었다는 것이 맞으려나.
우리 학교는 여학교였는데 여고와 붙어있는 부속 중학교였다. 여중과 여고가 한데 붙어 있어서 남자 변태들한테는 나름 핫스폿으로 소문이 났을지도 모르겠다.
학교 건물 뒤편에 건물을 둘러싼 좁은 골목길이 하나 있고, 교실 창밖으로 그 골목길이 아주 잘 보였는데 변태들은 주로 그곳에서 교실 창을 타깃으로 임무를 수행하곤 했다.
소녀들의 교실에서 별안간 꺅꺅 거리는 비명 소리가 들린다. 그럼 볼 것도 없이 그 골목에 그놈이 출몰 한 것이다. 일명 바바리맨이라고 하던가.
사춘기 소녀들의 성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줘야겠다!라는 사명감이라도 있는 건지, 시도 때도 없이 실 오라기 하나 없는 자신을 몸을 보여주고 사라졌다.
일부 좀 노는 아이들은 쌍욕을 해대며 변태를 향해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또 어떤 소녀들은 호기심 반 재미 반으로 변태를 구경하기 바빴다. 나머지 아이들은 무심한 척, 하던 일을 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는 하지만 차마 창밖으로 내다볼 용기는 없어서 연신 비명만 질러대기도 했다.
아무튼 교실은 엄청난 아수라장이 되어버리고 만다.
난 무섭기도 하고 별로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내 두 눈으로 변태의 모습을 굳이 확인하진 않았다.
그것이 내가 변태의 존재를 알게 된 첫 번째 사건이었다.
두 번째 변태는 대학 1학년 때 만났다.
대학생이 되자마자 난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음주 가무를 즐기느라 엄청 바쁜 나날을 보내던 중이었다.
난 이제 어른이다!라는 착각에 세상 무서운 줄 몰랐던 시절이었다.
그날도 세상은 넘나 아름다운 것! 클럽인지, 술집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시간은 밤 11시 30분이 넘었을까? 우리 동네는 여러 작은 아파트들이 모여있는 주택가라서 밤에도 전혀 위험하거나 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옆 아파트 단지를 지나 우리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는데 누군가 뒤에서 함께 걷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세상의 험한 맛을 못 봤을 때라 별 의심은 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1층에서 버튼을 눌렀는데 날 따라오던 그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올라가는 것 같았다.
그 집은 12층까지 있는 복도식 아파트였는데 그때 난 11층 엘리베이터 바로 옆 첫 번째 집에 살고 있었다.
밤늦은 시간이라 초인종을 누를 수 없어서 가방에서 열쇠를 꺼내려고 했다. 하필 아주 천천히, 그리고 열쇠를 잡으려는 순간 바닥에 열쇠를 떨어트리고 만다. 무슨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리고 아주 천천히 열쇠를 집어 들었다. 그 순간 어떤 남자의 손이 뒤에서 내 입을 막았다.
이 변태 놈은 한참 전부터 내 뒤를 몰래 따라왔던 것이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면 정체가 들켜버릴 것을 알고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나의 층수를 확인하며 뛰어 올라온 것이다.
예상과는 다르게 내가 거의 꼭대기 층에 살고 있어서 따라잡느라 진땀 좀 뺐겠지만, 무슨 스릴러 영화의 바보 같은 여자 배우 마냥 난 열쇠를 떨어뜨렸고, 그놈이 나를 덮칠 시간을 벌어 준 것이다.
난 이제 죽었구나 생각했을 때, 내 귀 가까이로 그놈 목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있어요" 그놈은 아주 영(young)한 목소리로 수줍게 말했다.
응? 머라고? 난 귀를 의심했다. 목소리가 고작 고딩 1학년 정도로 들렸다. 누나에게 공손하게 존댓말로 말해준 덕분에 나의 두려움은 싹 사라졌고, 이 개념 없는 못된 녀석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생각에 그 녀석의 손을 뿌리치고 녀석을 있는 힘껏 내동댕이 쳤다.
그 녀석은 꽁지가 빠져라 계단을 달려 내려갔고 난 고함을 지르며 두세 층 정도를 따라가다가, 그래도 나름 치한인데... 이건 아닌 것 같아서 얼른 집으로 뛰어 올라갔다.
이 사건은 아직까지도 나에게 미스터리다. 도통 생각해도 이 힘없는 어린 녀석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범죄 영화를 보고 따라 해보고 싶었던 것일까?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머리가 이상해진 것일까? 이유는 모르지만, 더 커서 진정한 변태가 되지 않았길 바랄 뿐이다.
세 번째는 아주 여러 형태의 잔챙이 변태들을 모아보았다.
이 변태들은 모두 한 장소에서 만났다.
20대 초반에 전철역에서 집까지 직진 코스로 걸어서 약 10분 남짓한 거리의 주택에 살았던 적이 있었다.
고작 10분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기겠냐마는, 사실 그 길은 온 갖 변태들이 들끓는 마의 길이었던 것이다.
왜 마의 길이었냐면, 오른쪽으로는 왕복 4차로의 도로였고 인도 옆은 공장들과 작은 철공소들이 늘어서 있었기 때문에 주말에는 사람의 흔적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그 가게들 사이사이 어둡고 좁은 골목들이 있었는데, 그 골목으로 들어가면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이 긴 했지만 옆이 길게 철길로 막혀있었기 때문에 밤에는 무척 위험할만한 길이었다. 우리 집은 그 철길 끝의 오래된 주택이었다.(엄마는 모르셨겠지... 다 큰 딸이 살기에 위험한 동네였다는 걸.)
밤이고 낮이고 할 것 없이 총각이고 아저씨고 여자만 지나가면 같이 차 한잔하자고, 술한잔 하자고 쫓아오는 건 일상이고, 몰래 집 앞까지 쫓아와서 돈 필요하냐며 주머니에서 현금을 꺼내 보여주는 평범한 샐러리맨(처럼 보이는)아저씨. 또 집 앞 육교 계단 아래에서 자신의 소중한 곳을 꺼내 놓고 나를 기다리던 변태들...
정말 별의별 변태들을 다 만나다가, 아! 난 이제 더 이상 밤에 스스럼없이 혼자 돌아다니는 자유를 누리지는 못할 것 같다.라고 느끼게 된 큰 사건을 겪게 된다.
잔챙이 변태들을 잘 마크하며 별 탈 없이 지내던 어느 날.
주변은 어두웠고 그날도 그 길은 인적이 없었다. 몇 분 후 닥칠 불행도 모른 채 해맑게 걸어가던 중 뒤에서 누가 따라 걷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뒤를 돌아보니, 대학생처럼 보이는 평범한 옷차림에 단정한 머리 스타일에 안경을 끼고 백팩을 멘 남자가 4~5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걸어오고 있었다.
별 의심 없이 다시 걷고 있는데, 다다다다 하고 뛰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그놈이 나를 향해 전력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나는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그 남자에 의해 들어올려졌고, 그 남자는 날 둘러업은 체 공장 사이의 그 골목으로 들어가려 했다.
안돼! 골목으로 끌려가며 난 끝이야! 이 남자를 벗어나야해! 라고 생각은 했지만, 고딩때 배운 합기도 기술이나 호신술 따위는 전혀 쓸모가 없었다. 완강한 남자의, 특히 이 여자를 어떻게 해보겠다 결심한 미친 변태 놈의 힘을 버티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이었다. 너무 무서운 나머지 반격은커녕 몸은 경직되어 움직일 수 없었고 비명소리조차 제대로 낼 수 없었다. 진짜 큰일을 당할 위기에 처하니 왜 여자들이 나쁜 범죄에 힘없이 당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때였다. 조그만 술집 문이 벌컥 열렸다. 내 가녀린 비명소리를 들었는지 아주머니 두 분이 나오셨다.
그놈은 나를 바닥에 버리듯이 팽개치고 골목 사이로 부리나케 사라졌다.
난 진정한 변태 계의 최종 보스를 만난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밤길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 이후로 낮이고 밤이고, 사람이 많거나 적거나 상관없이 낯선 남자가 나를 향해 걸어오기만 해도, 쳐다보기만 해도 깜짝 놀라 무서움에 떨어야 했다. 그리고 그 후유증은 2년이 넘게 갔다.
내가 여기 써 내려간 세 번의 변태 이야기는 내가 지금까지 겪고 들은 것들의 극히 일부만을 적은 것이다.
여고생의 중요한 곳을 터치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는 변태 아저씨, 붐비는 전철에서 치마 입은 아가씨의 엉덩이를 만지고는 오히려 화를 내는 뻔뻔한 아저씨, 야간버스에서 지가 애인인 것 마냥 옆에 앉은 여자의 허벅지에 자연스럽게 손을 올려놓는 양아치, 나랑 사귀자며 모텔로 끌고 들어가려는 좀 전까지 함께 일하던 남자 알바 생, 부인이랑 사랑 없는 결혼을 했다며 불쌍한 척 쇼하며 술 한잔하자 꼬시는 유부남 직장동료, 문제풀이를 할 때마다 내 뒤에서 안다시피 알려주는 너무나 친절한 학원 선생, 수업시간에 심심해하는 여고생들에게 야한 경험담이나 성적 농담을 건네는 정신 나간 남 교사, 심지어 가족에게까지 성추행을 일삼는 남자들... 이 모두가 나와 내 주변의 여자들이 실제로 겪었던 일들이다.
이 글은 남자들에게 무고한 변태 이미지를 씌우려는 아니고 편가르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건 그냥 팩트이며,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누가 좀 알려주면 좋겠다. 이 답답함을 풀어줄 사람이 남자들이라면 더 좋을 것 같다.
여담이지만, 최종보스를 만난 이후로 난 밤에 그 길을 혼자 다닐 수 없었고, 그때 사귀고 있던 남자친구가 늦어지는 날이면 집앞까지 데려다 주곤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는 인연의 마지막 날을 맞이하게되었다. 늦은 밤, 집 근처 카페에서 서로 이별을 고하고 쿨하게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테이블에서 일어서서 나가려는데 갑자기 집까지 가는 길이 걱정이되었다. '어떻하지 마지막으로 데려다 달라고 할까?' 그 녀석은 내 고민을 눈치챗는지 어쨋는지, 먼저 말을 꺼냈다.
"미안한데 오늘은 못 데려다 줄 것 같아... 잘가"
하아, 예상은 했지만... 헤어지길 잘했다고 맘이 굳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래 알았어"
우리의 이별은 여느 연인들의 이별처럼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결국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역시나 변태를 만났고, 위험천만하게도 그 변태를 피해 4차로 도로를 무단횡단하여 무작정 달려야했다.
남자를 피해 남자의 보호막안에 있어야 안전한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참 싫은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