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race Jun 02. 2024

나의 새 차에 밤마다 얼룩을 묻히는 범인을 목격했다

남편의 반갑지 않은 활약상

내가 차를 받은 게 5월 7일이었다. 그러니까 이제 한 달도 안 된 시점이다. 먼지가 조금 묻었다고 하면 물 뿌리고 닦고 한참 정성 들여 새 차에 온 신경을 쓸 때이다. 필로티 구조의 주차장에 각 세대에 배정된 1세대 1개의 주차공간이 있다. 그동안 남편차만 그곳에 주차했는데 이제 내 새 차가 그곳을 차지하게 되었다. 매일 아침 출근시간이 조금 즐겁게 느껴졌다. 단 15분이라도 명상음악이 깔린 안락한 차로 운전하니깐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내차 운전석 쪽 보닛 위에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매일 차를 살펴보고 닦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한 얼룩과 헝겊에서 나온 부스러기 같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다이소에서 산 그 행주가 싸구려여서 그곳에서 부스러기가 나왔나라고 생각하고 다시 닦았다. 그런데 다음날 혹시 해서 보니 또 비슷한 얼굴과 부스러기가 있었다. 그때서야 그 부스러기를 보니 노랗고 긴 털이었고 먼지가 조금 있는 곳에 고양이 족적이 있었다. 그제야 이건 분명 고양이 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 얼룩은 고양이 침인가.


설마 오늘 저녁은 안 오겠지 했지만 어김없이 고양이는 내차 보닛위 찾아왔다. 다행히도 아직까진 어떤 스크레치도 없지만 하얀 침 같은 것과 어떤 날은 진흙발로 유리창까지 족적을 남겨두었다. 그날부터 이놈이 고양이를 잡아서 패대기를 치겠다는 비장한 각오가 생겼다. 그동안 남편차를 수년간 주차해도 이런 일 없더니 어떻게 이놈이 새 차를 알고 이렇게 자기차인양 흔적을 남겨두다니 고양이의 정체가 몹시 궁금했다. 블랙박스를 뒤져보니 정말 어둠 속에 정체가 있었는데 움직이지도 않고 새벽 3시 반부터 4시 반까지 한 시간 동안 꼼짝도 않고 웅크리고만 있었다.


사실 고양이가 보닛위에 올라가고 엔진에 들어가고 하는 남들 이야기나 인터넷에 있는 내용에 관심이 별로 없었고 고양이 밥 주는 것, 고양이를 키우는 거 이런 것에도 별 생각이 없었다. 고양이는 그냥 고양이일 뿐 살짝 키우고 싶다는 생각 했지만 아파트에서 키우는 것과 그 키우는 시간과 비용을 생각하면 내 몸 하나 건사도 힘든데 무슨 고양이까지 하면서 고양이에 대한 관심조차도 없었는데 이렇게 고양이가 이제 내 차에 접근하면서 매일밤 도대체 어떤 놈의 고양이인가 하고 의문을 갖게 되었다.



나의 루틴은 매일 퇴근하고 집에 와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7시 반쯤 차를 타고 3분 거리의 헬스장으로 가서 1시간쯤 러닝머신만 하고 온다.

그날도 7시 반에 주차장으로 갔다. 그 순간 난 놀라운 순간을 접하고 말았다. 근 10일 만에 그 범인이 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노랗고 하얗고 살이 통통 찐 토끼 같은 커다란 고양이가 귀여운 얼굴로 아주 당당하게 내 차 보닛위에 앉아있었던 것이다. 나를 보고도 크게 놀라지도 않고 당당하게 날 바라보고 있었다. 기회는 이때다 범인 드디어 잡았다 싶어 이리저리 위치를 바꿔가며 핸드폰 카메라로 그놈을 요리저리 찰칵찰칵 찍었다. 그럼에도 도망가지 않았다. 순간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잠깐 내려가서 옆차 밑으로 들어가 숨었는데 온몸이 다 보이게 숨고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난 속으로 꺄아악 소리를 치며 후다닥 차를 몰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사실 내가 고양이가 10일 이상 보닛을 점거할 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게 아니다. 어떤 날은 차 주변에 고양이가 싫어한다는 식초를 바닥에 뿌리기도 했지만 여전히 찾아왔고, 보닛위에 비닐을 깔고 그 위에 식초를 뿌려두니 그 김장용 비닐이 안 깔린 끝부분에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저 위에 고양이가 당당하게 인형처럼 있는 사진에는 식초를 뿌리지 않는 비닐이다.


서울에 있는 둘째 딸은 "혹시 고양이가 전생에 엄마 딸 아니야?" 해서 " 그래 어쩌면 고양이가 진짜 내 딸이고 네가 고양이 일지도, 바뀌었을 수도 "했다가 딸에게 한소리 들었다.


그렇게 고양이의 실물을 영접한 날 저녁에 비가 조금씩 오고 있었다. 헬스장에서 집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비닐을 깔아 두고 고양이를 본 후로는 식초를 뿌려두지 않았다. 헬스장에서 다녀오면 차 엔진이 덜 식어 여전히 차는 따뜻할 것인데 그날은 별로 춥지도 않았는데 고양이는 7시 15분쯤부터 찾아왔고 내가 헬스장 다녀온 이후에도 찾아왔던 것이다.


몇 번을 내려와 봤는지 모르겠다. 8시 반, 9시 반, 10시 반에도 고양이는 그날따라 일찍부터 찾아온 이유는 뭘까 궁금했다. 내차만 있는 것도 아닌데도 다른 차는 안 가고 내 차에만 붙어 있는 것이다. 남편은 여러 번 다른 차 위에도 있는 걸 봤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기 주차된 구석진 곳의 차를 보니 이미 그곳에도 고양이 털과 침을 묻힌 흔적이 조금 있긴 했다.


남편은 언제 고양이가 긁을지 모른다고 대가 부러져 버리려고 놔둔 1,000원짜리 투명 우산을 들고 나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니 설마 그것으로 고양이를 때리려고??"

남편이 그렇다고 하자, 엘베 안에서 "이런 폭력범.." 하며 남편의 목을 조르기도 했다. 남편이 그것으로 무엇을 할까 설마 하며 따라나섰다. 남편은 차 앞에서 우선을 접었다 폈다 하며 소리를 냈다. 그제야 고양이는 도망가버렸다. 그리고 아침까지도 고양이의 흔적은 없었다.

진짜 가버린 것이다.


갑자기 고양이가 가버리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설마 고양이가 자기를 간택해 달라고 온 것일까. 고양이를 키워본 적도 없고 아는 것도 없어서 집에 고양이 줄 먹이도 없는데 만약 고양이를 어떻게 데려오나. 그물로 포획을 해서 데려와야 하나. 길냥이인데 병균도 많다는데 집에서 케어는 어떻게 할 것이며. 그나저나 고양이는 지금 어디 있을까. 어디서 이 어두운 밤 집도 없이 방황하고 있나 하며 갑자기 슬픈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두 번 다시 고양이는 찾아오지 않았다.


정말 5월 28일 저녁 이후 고양이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고양이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밤 10시쯤 나가보니만 웅크린 채 바라보고 있는 고양이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딸들에게 이런 상황을 보고하자 둘 다 정말 슬퍼했다. 아빠가 우산 들고나가는 사진을 보고 난리를 치며 분노했다. 둘 다 처음에 너무 귀엽다고 키우자고 했었다.


그래서 어젯밤 결국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나 혼자 고양이를 찾기 위해 집 근처를 돌아보았다. 바로 집과 가까운 옆 단지 풀숲 위로  노란색의 뭐가 지나가는 것이다. 바로 그 고양이였다. 난 손을 흔들었다. 손을 흔드는 걸 고양이는 무서워하나. 그때 내 차 위에 있을 때도 '안녕'하고 손을 흔들자 차 밑으로 도망갔다.


순간 내게 먹이가 있었더라면 고양이를 줄텐데 아쉬웠다. 고양이는 멀리 도망가지 않고 바로 그 단지에 주차된 첫 번째 차 밑으로 숨었다. 것도 멀리 안 숨고 바로 인근에 숨었다. 어둠 속이라 더 접근하는 것도 무서워서 순간 사진만 찍었다.



근처를 서성이며 고양이가 나오길 바랐지만 고양이를 찾을 수 없었다. 간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남의 빌라단지 주차장 주변을 맴도는 날 누가 도둑으로 볼까 하는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노랗고 살이 통통 찐 고양이는 우리 거주지 인근을 돌아다니며 따뜻한 자기 주거지를 찾는 게 분명했다. 옆단지는 저녁 내내 주차장에 불을 켜둬서 쉴 수가 없고 , 주차장에 불이 꺼진 우리 단지를 찾아오는 것이다.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지만 조만간 간식을 사서 고양이를 줄지 아니면 내버려 둘 지를 고민했다. 고양이가 내 차 보닛에 오지 않는 것이 갑자기 서운해지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에도 고양이가 온 흔적이 없었다. 아니 고양이가 안 온 것에 대해 좋아해야 하지 않은가. 하지만 난 오히려 지금 조금 슬퍼지려 하고 있다. 인간의 간사한 마음이다. 대신 남편에게 " 이 악독한 사람, 그 약한 고양이를 내 쫒다니..." 하지만 이젠 의미 없고   역시 고양이를 쫒은 데 한몫했다. 그냥 고양이가 다시 돌아와 내 보닛위에 앉아주길 바라고 있다. 단 긁지만 않으면 말이다.







"

작가의 이전글 주말을 보내는 색다른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