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비밀병기로 영어공부 지루함 날려버리기
정말 운명과도 같이 내 나이 오십에 다시 '영어공부'라는 것을 시작하게 되었다. 가끔 한계를 느낄 땐 포기하고 싶지만 이미 긴 항해를 시작한 이상 금은보화가 가득한 신대륙을 발견하는 그 날까지 멈출 수 없다. 매일 꾸준히 듣기, 쓰기, 읽기를 한다면 불가능하게 느껴졌던 '영어'의 벽을 뛰어넘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아쉬운 건 영어로 말하는 연습은 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영어를 취미로 삼자고 결심한 것은 특별히 가지고 있는 취미가 없어서였다. 지금의 내가 허투루 시간을 보냈을 때 훗날 지금의 나에 대해 후회를 하는 것도 두려운 게 사실이다. 어디 후회 한 점 없는 인생이 있으랴마는 후회를 최소화할 수 있는 인생을 살아야 마음이 편하다.
한때 의욕에 가득 차 서평을 꼼꼼히 보고 인터넷에서 원서를 여러 권 주문해 보지만 실패도 많다. 나에게 맞는 책이 가장 좋은 책이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원서는 미리보기가 안된다. 수입한 책이라 해진 책을 출판사로 반품할 수 없으니 오프라인 서점에서도 손상이 안 가게 비닐로 포장되어 내용을 볼 수가 없다. 대개 활자크기가 상당히 작고 글자 구성이 빽빽하다. 우연히 그런 책을 골랐다면 노안에 가뜩이나 이해도 안 되는데 계속 읽기가 상당히 어렵다. 결국 방치되는 책이 되고 만다.
Nick Bare의 <25 hours a day> 책을 구입하게 된 계기는 우연히 인터넷에서 어떤 분이 이 책 후기를 남긴 것을 보고 솔깃했다. 누가 남긴 후기나 사용기처럼 우리의 구매욕을 작용하는 건 없다. 활자가 크고 그리 어렵지 않은 내용이나 소설처럼 갈등이나 긴장, 흥미진진한 전개가 없기 때문인지 처음 몇 장 읽다가 금세 또 지루해졌다. 그렇다고 매번 원서를 사놓고 방치할 수 없었다.
저자는 주한미군으로도 근무했고 하루 단 몇 분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고 자신을 이겨보려는 육체적, 정신적 어떤 투쟁과 Nutrition회사를 차려 성공에 이르는 하루를 25시간으로 최대한 사용하는 한 인간의 정신 투쟁기 같은 것으로 문장 자체는 평이하고 영어일기 쓸 때 활용할 만한 내용이 많아서 보관만 하기에는 아까울 거 같아 나만의 방법을 사용했다.
그건 바로 비밀병기인 만년필로 밑줄 그으면서 읽기다. 그냥 눈으로만 보다 보면 금방 지친다. 매일 사무실에 7시 반 정도 출근해 일 시작할 때까지 1시간 정도 여유가 생긴다. 책 속 문장을 눈으로 빠르게 따라가며 활용도가 큰 문장을 발견하면 만년필로 밑줄을 긋기 시작했다. 그렇게 몰입한 아침시간은 상당히 빨리 지나간다. 부가적으로 밑줄 그은 문장 중 적어야 할 것은 붉은 잉크를 넣은 만년필과 로열블루 잉크를 넣은 만년필을 이용해 노트에 깔끔하게 정리한다.
책장에 장식용으로만 꽂혀 있기만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독서'하는 데 있어서도 꼭 필요한 책만 구비하고 필요 없는 책은 정리해야 최소한 책 더미 속에 파묻혀 정말 읽어야 할 책을 읽지 못하게 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버려야 할 책은 과감하게 밑줄로 그어 내 손을 거쳐간 흔적을 내고 중요한 문장만 노트에 발췌하고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다. 책에 낙서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극히 금기스러운 의식 일 수 있으나 나만의 스타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때론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있다. 그럴 땐 무조건 CNN 팟캐스트를 틀어놓는다. 소파에 기대 거실 창밖으로 보이는 드넓은 하늘을 보며 팟캐스트 속의 내용을 흘려듣는다. 그러다 항상 멍하니 공상의 세계 속으로 빠져든다. 집중하기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애초 가볍게 듣자고 맘먹어야 한다. 좀 안 들린가 싶으면 다음 팟캐스트로 넘어가며 환기시킨다. 이렇게 매일 듣는 것이 공부하나 안 하나 항상 제자리 점수인 토익 L/C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앵커의 빠른 멘트만 있는 팟캐스트만 있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Your Money Briefing이라는 제목의 팟캐스트를 듣게 되었다.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보통 속도로 차분하게 이야기해준다. 괜찮은 팟캐스트 찾았을 때의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무료 팟캐스트의 세계는 너무 무궁무진하다. 무엇보다 정신이 흝트러지지 않고 리스닝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코로나로 부도나는 회사가 늘어나면서 기간 내에 상품권을 사용하지 못한 소비가가 늘면서 생긴 문제에 대한 뉴스였다. 갑자기 따라 쓰기를 하고 싶은 의욕이 생겼다. 게다가 나에겐 만년필이 있으므로 못할 게 없었다. 하지만 이거 웬걸 따라 쓰다 보니 필기 속도가 앵커의 말을 따라가지 못했다. 8분 남짓인데 거의 쓰느라 한 시간 이상 에너지를 소모한 거 같다. 써놓고 보니 청취할 때보다 전치사, 접속사를 비롯해 단어도 많고 문장도 어떤 건 상당히 길다. 사람들이 영어 공부할 땐 '미드'를 추천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리스닝하고 빨리 따라 쓰는 건 볼펜이 더 적절한 도구일지도 모른다. 만년필은 빠른 걸음으로 가기엔 너무 우아한 존재임이 분명하다. 나의 '비밀병기'인 만년필이 없었다면 단어 쓰기, 문장 쓰기, 필사는 재미없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다양한 색깔의 잉크로 영어단어와 그 뜻을 정리하고, 문장을 쓰고 그 문장을 요약하면 가독성도 높다. 그동안 책만 사놓고 쟁기기만 했던 토익도 조만간 만년필을 이용해 다시 시작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