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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지현 May 12. 2020

우리 할매는 마귀할멈

성장 치유 에세이


- 니가 제일 많이 울어야 해.

- 널 얼마나 많이 사랑했는데, 니가 제일 슬퍼야지.

- 넌 왜 그러고 섰니, 눈물 안 나니?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장지에서 내가 들었던 말이다. 물기 하나 없는 마른 얼굴을 하고 어색한 공기 속에서 멀뚱히 서 있는 나를 향해, 어른들은 이상하다는 듯 희한하다는 듯 그렇게들 한 마디씩 던졌다. 하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나는 그 자리가 점점 더 어색해질 뿐이었고, 나의 마음은 오히려 슬픔을 등지고 달아나고 있었다.




할머니는 아이의 아빠가 여섯 살이었을 때 남편을 잃었다.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마무리지어진 이듬해였다. 전쟁의 상흔이 미처 다 씻기기도 전에 할머니는 남편을 잃고 청상과부가 됐다.


어느 날, 뭘 잘못 먹은 것도 없는데, 배가 살살 아프다던 남편은 동네 한약방에서 약을 지어다 먹었다. 한 이틀 약을 먹었는데도 차도가 있기는커녕 점점 더 아파 오자 아내와 다시 약방을 찾아 맥까지 짚었지만, 돌아오는 말은 그저 배탈 정도라는 말뿐, 약을 좀 더 지어먹으면 나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집에 돌아오는 길로 자리에 누웠고, 지어온 약을 미처 다 먹지도 못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아내는 손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남편을 보낸 것이 허망하고, 야속하고, 원망스러웠으나,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었기에, 운명이라 받아들여야 했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모든 것을 하늘의 일로만 여겨야 했던. (지금에 와서 그때의 병증을 생각해 볼 때, 아마도 맹장염으로 시작한 것이 복막염으로 진행된 것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하루아침에 아이 넷 달린 청상과부가 된 할머니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독해져야 했다. 남편의 죽음으로 자연스럽게 아내라는 이름을 잃어버린 할머니는 여자도, 며느리도, 아낙네라는 이름도 떼내어 버리고, 오로지 엄마라는 이름만 틀어 쥐었다. 자식들의 밥을 먹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혹여 누군가 내 가정의 울타리 안 돌 하나라도 탐낼까, 행여 엄한 말로 자식들의 몸과 마음에 생채기를 낼까, 알을 지키는 암탉처럼 다가오는 사람은 누구든 쪼아댔고, 싱거운 말 한마디에도 수탉이 홰를 치듯 헛손질과 발질로 엄포를 놓고, 그것도 모자랄 성싶으면 부엌에서 바가지까지 들고 나와 마당에 깨뜨려가며 치열하게 자신의 영역을 지켰다. 남정네 없는 집안의 홀로 된 여자는 그래야만 스스로를 지켜며 살 수 있는 시대였다. 그리고 그런 모진 세월은 할머니를 독한 시어머니, 꼬장꼬장 노인네, 욕쟁이 할머니로 만들었다.


아이는 할머니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막내아들의 첫 아이였다. 성질이 불같고, 성미가 급한 데다, 성격이 괄괄해 키울 때도 하루가 멀다 하고 끌탕하게 하던 아들이 낳은 아이는 아비를 닮지 않아 온순하고, 무던했다. 하지만, 갓난쟁이 일 때 어쩌다 콜레라를 앓아 죽을 뻔하다 겨우 한 자락 숨을 붙들고 살아난 뒤로는 늘 잦은 병치레를 해 할머니의 속을 태웠다.

그도 그럴 것이 또래보다 한 뼘은 작아 보이는 키에 몸무게도 뼈를 빼면 남지 않을 만큼 나가던 아이는 아이들과도 놀아도 늘 주변을 맴돌았고, 편을 먹고 놀이에서는 늘 나머지로 남다가 제외가 됐으며, 한 무리가 놀고 있으면 선뜻 다가가 끼질 못했다.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강아지들도 개중에 작게 태어난 강아지 이리 밀리고 저리 밀려 젖도 제대로 못 빨고 골아 들어 주인의 마음을 애태우는 것처럼, 또래 속 아이가 꼭 그랬다.


아이는 또래보다 한 뼘이나 키가 작았다. 3명이서 놀면 늘 2로 나눈 뒤 남는 1처럼 나머지가 됐었다.


할머니는 남편 없이 혼자 자식들을 키우고 지켜내던 시절처럼 손녀를 지키기 시작했다. 아이가 동네 아이들 사이에 끼지 못하고 주변을 어슬렁 거리고 있으면 손을 잡아끌고 가서는 "왜 야는 안 끼아 주고 느그끼리 얌챙이 같이 놀고 그카노! 못된 노무 자슥들, 같이 놀아야지! 안 글나!" 라며 대뜸 노는 애들 혼부터 내며 손녀를 우격다짐으로 끼워 넣었고, 그렇게 아이가 잘 놀다가 옷에 흙이라도 좀 묻혀왔다 싶으면 앞뒤 볼 것도 없이 "누가 야 옷에 흙뿌맀노? 니가 그랬나? 으이? 니가 그랬는 갑제!" 라며 달려가 어거지를 놓았고, 아이가 울면서 들어오기라도 하는 날에는 "누가 그랬노? 느그 엄마한테 가자!"라며 괜한 남의 집 애를 잡으며, 엄한 집을 들쑤셔 놓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동네에서 아이 할머니의 존재감은 커져갔다. 동네 아낙들에게는 어지간하면 피하고 보는 골치 아픈 괴팍한 노인네가 됐고, 아이들 사이에서는 눈만 마주쳐도 얼어붙을 만큼 무서운 마귀할멈이 됐다. 그렇다고 할머니의 체격이 크다거나 생김새가 우락부락한 건 아니었다. 다만, 깡마른 체격과는 달리 평생을 밖의 사람들과 싸우고, 내쫓고, 경고를 보내느라 크고 걸걸해진 목소리가 그 모든 수식어를 만들어 내는데 한 몫했을지도.


모든 일에 빠릿빠릿하지 못하고 재빠르지 못한 아이는 또래들에게 함께 놀이를 하기에 탐나는 친구가 아니어서, 늘 감자 혹은 깍두기를 맡았다. 그래도 아이는 재미있었다. 그러는 사이 마귀할멈의 존재는 묘한 방향으로 자리 잡아갔다.

처음에는 마귀할멈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아이와 놀아주어야 했고, 혹시라도 아이가 마음이 상할까 눈치 봐야 해서 아니꼬웠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아이와 함께 노는 이상 신들에게도 할머니는 든든한 뒷배였던 것이다. 할머니는 손녀와 잘 놀아주는 아이들에게는 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의 집 대문은 수시로 드르륵드르륵 열렸다.


할매요, 저기 싸움 났어요. 누구랑 누구랑 싸워요.

할매요, 무서운 히야(형)가 우리 보고 뭐라 캐요.

할매요, 누가 넘어졌어요.

할매요, 어제 길동이가 지혀이 때렸어요. 내가 봤어요.


수많은 고자질과 일러바침, 크고 작은 보고를 해 대느라 아이의 집은 늘 동네 아이들이 들락거렸고, 그러면 할머니는 얼른 뛰어나가 불호령을 내려 싸우는 애들을 떼어놨고, 놀리던 애들은 쫓아냈고, 시비가 붙은 애들은 시시비비를 가려줬으며, 시끄러운 소란도 한 번의 고함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꼭 한 마디를 붙였다.


너거 우리 아 잘 델고 놀그래이.


필통 지우개 통에 넣어 놓은 200원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어느 날은 학교 갔다 오면서 맛있는 거라도 하나 사 먹으라며 할머니가 아이에게 200원을 었다. 딱히 군것질에 흥미가 없던 아이는 그 돈을 필통 지우개 통에 넣어 두었는데, 2교시 마치고 변소에 다녀오고 보니, 돈이 감쪽 같이 없어져 버렸다. 이상하다. 지우개 뚜껑을 었다 닫았다, 연필통을 뒤집어도 보았다가, 필통을 거꾸로 흔들어 보아도 돈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아이는 할머니에게 돈은 과자 사 먹는데 썼다고 하고 말 참이었다. 그런데 그때 뒤에 앉은 남자애 녀석이 슬쩍 말을 건넸다.


야, 니 200원 없어졌제? 쟈가 갖고 갔데이.


그 아이는 건너편 동네 새로 생긴 주공 아파트에서 온  아이였다. 얼마 전 우르르 전학 온 아파트 아이들은 기존의 월배 아이들과는 잘 섞이지 않았다. 등하굣길이 달라서 이기도 했고, 말을 해도 중간에 매끄러운 막 있는 것처럼 제대로 오가지도 않고 미끄러지는 듯했다.


돈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아이는 범인이 아파트 애일 거라는 말에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잊어버렸지만, 이 소식은 돌고 돌아 아이가 하교해 집에 가기도 전에 할머니 귀에 먼저 가 닿았다. 아이가 집에 도착해 책가방을 풀어놓기 무섭게 할머니는 한 손으로는 치맛자락을 거머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아이의 손을 잡아끌었다.


니 돈 잃아뿠제? 내 다 들었다.

그 놈아가 쩌어기 아파트에 산다카드마는.

망할놈. 내 가만두나 봐라. 내랑 가자.


할머니는 아이의 손을 잡고 아파트 관리사무소쯤 되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낮에 들었던 그 아이의  이름을 대고는 불러 달라 했다. 아파트 단지 내의 수많은 입주민 가운데 아저씨가 그 아이를 알고 있을 리 만무했고, 설사 알았다고 하더라도 굳이 불러줄 이유는 없었다. 마른 가지에 불붙듯 활활 타는 할머니의 성정을 눈치챘는지, 일을 더 키우기 싫었던 아저씨는 빠르게 진화에 들어갔다.


아이고, 멋모르는 아들이 그랬는 갑네요.

할무이 속 마이 상하시지예.

여서 그래가꼬는 그 아아들 못 찾습니더.

앞으로 그런 일 있으마, 내가 혼구녕을 낼 테니까네, 오늘은 그만 가시이소.

그라고 할무이 손녀가 이뻐가 200원은 제가 드리께요.

요거 갖고 가가 니 맛난 거 사무래이. 


성격 좋은 관리사무소 아저씨가 솜씨 좋은 입담과 200원으로 할머니의 마음에 난 불길을 잡았다. 주불을 잡고 나니, 남은 잔불도 더는 힘을 쓰지 못하고 마음은 불 꺼진 뜨거운 잿더미가 됐다. 그렇게 할머니는 맞장구 쳐주는 아저씨를 만나 한편 마음이 누그러지면서도 여기까지 온 수고 값은 다 하고 가야겠다 싶었는지, 다시 한번 아파트 단지가 떠나가도록 고함을 쳤다.


내 아저씨 때미로 참습니더.

여 동네 놈들, 한 번만 더 우리 아 한테 못된 짓 해봐라.

손 모가지 분질러 뿔끼다꼬 단단히 말 해두소. 알아 들었능교.


월배에 있던 수밭못과 월천못, 수밭못은 지금 도원지로 이름이 바뀌어 존재하지만 월천못은 흙으로 덮인 뒤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 둑길을 할머니와 걸었다.  


그렇게 한 바탕 난리를 친 뒤, 어둑해진, 지금은 없어진, 월촌못 둑을 걸어서 오며 할머니가 말했다.


니는 아아들이 뭐라카믄 와 맨날 가만히 있노.

성을 확 내뿌야지.

그런 노무 자슥들한테는 못 됐게 해야 다음에  안 칸다 아이가.


오로지 내 자식, 내 손주만 소중했던 할머니의 말과 행동은 훈육과 교육방법으로써 바르다고 할 순 없었지만, 그런 할머니의 사랑 마와 떨어져 지내는 동안 마음이 허전했던 아이에게는 든든한 울타리이자 따뜻한 담요 같았다.




느끼는 감정을 피해 도망 다니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감정은 마음껏 풀어내어 보여주지 못하는 것, 드러내 보이면 안 되는 것이었다. 특히나 슬픔이나 아픔 같은 건, 사람들 앞에서 드러 내보이는 것에 서툴렀다. 부자연스럽고 서툴러서 어색해질 바에야 모른 척하는 편이 낫다고 여겼던 듯하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던 그때, 병원 장례식장에서 운구차를 타고 장지까지 가는 시간 동안 모두가 슬픔에 젖어들었지만, 장례식 내내 나는 바다 위 부표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며 떠다닐 뿐이었다. 상실의 경험 가운데서도 죽음은 가장 처절한 감정의 소용돌이이고, 그 앞에서는 누구나 마음껏 무너져 내려도 됨이 허용되지만, 나는 그때 조차 감정을 풀어내지 못했다.


나는 할머니의 장례식 현장에서 철저히 타자였다. 장지에서 탈관 후 광중(壙中 : 묘를 파 놓은 곳)에 모시기 위해 끈 세 개에 의지해 들려지던 뻣뻣해진  할머니의 모습을 볼 때도, 눈 앞에서 할머니가 저 깊은 곳으로 내려지는 것을 볼 때도, 어느새 흙이 덮인 묫자리 중앙에 인부들이 저승길 노잣돈을 꽂고 할머니를 덮고 있던 흙을 꼭꼭 밟으며 묘를 다질 때도, 나는 모든 것이 도망치고 싶을 만큼 어색하기만 했고, 단 한 번도 그 슬픔 속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의 곡소리에도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으며,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년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나의 슬픔은 그로부터 한 참 뒤에 찾아왔다. 어느 날 갑자기 할머니가 보고 싶었다. 시시때때로 보고 싶은 할머니 때문에 몸이 옹송그려졌다. 잠자리에 누워서 오늘 밤에는 꼭 할머니가 꿈에 오셨으면 하고 바라고 바라고 또 바랐다. 보고 싶어 쪼아 드는 가슴에도, 뜬금없이 흐르는 눈물에도 할머니는 단 한 번도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지나가는 말로, 할머니는 꿈에도 한 번 안 나온다고 말했더니 아빠가 그러셨다. 조상이건 누구 건 죽은 사람이 꿈에 나오는 건 좋지 않은 거라고. 그래서 할머니가 찾아오지 않은 것일까.


언제나 나의 슬픔은 시간이 지난 뒤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왔다. 우리 집 마귀할멈, 꼬장꼬장하고 말도 통하지 않는 독불장군 같은 그래서 늘 아빠와 싸우고 엄마를 힘들게 하던 할머니였지만 그래도 나에겐 가장 정이 많은 분이었다. 그렇게 할머니를 잃은 날 흘리지 않은 눈물은 오래도록 할머니가 없다는 상실감이 되어 나의 갈비뼈를 찔렀다.


보고 싶은 나의 마귀할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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