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사는 마을의 이름을 풀면 '등 뒤에서 달이 비추는 골짜기'라고 했다. 달비골. 원래는 '달배골'이었지만, 경상도식으로 불리면서 '달비골'이 되었고, 그것이 지금의 '월배(月背)'라는 지명이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의미로는 산마을이란 뜻이 있는데 ‘달’은 높은 곳, 즉 산(山)을 의미하고 ‘배’는 ‘장소’를 가리킨다고 해서, '달배'는 높은 곳에 있는 마을, 그러니까 '산마을'이라는 것이다. 둘 중 뭐가 됐든 다 맞는 말이었다. 앞산 자락에 위치한 마을이니 산마을이 맞기도 했고, 달이 비추는 곳이기도 했으니까.
아이가 사는 달비골 마을은 비포장 도로였다가 편도 1차로로 도로포장을 막 시작한, 그 전에는 경상북도 행정구역이다가 이제 대구직할시로 편입된 덕을 막 보려 하는 곳이었다. 때문에 달비골은 새 도로가 나고 곳곳에 건물이 들어서며 시골티를 벗기 위한 개발의 바람이 불고 있었는데, 그 바람이 아직 골목 안으로까지 들어오진 않고 있어서 아이의 마을은 시골과 도시, 두 개의 세상이 공존하고 있었다.
아스콘 열기를 뿜어내며 한창 포장 중인 도로에서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아이의 집이 있었는데, 동네가조금 재미있게 생겼다. 길 따라 집이 있는 것이 아니라 중앙에 큼지막한 공터를 중심으로 집이 모여 있는 모습으로, 이 공간을 도로 쪽으로 위치한 세차장 뒷 담벼락과 서너 채의 집이 양쪽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공터를 지나 좀 더 들어가면 왼쪽으로는 고물상이, 오른쪽으로는 청보리밭이 있었고, 또 좀 더 들어가면 아랫 동네로 이어졌다. 보리밭은 처음부터 보리밭이었던 게 아니라 어느 날 보리가 자라기 시작했는데, 면적이 그리 크지 않은 걸로 봐서, 아마 땅주인이 제대로 된 소득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땅을 놀리기 아까워 뭐라도 해 보자는 심산이었던 듯하다.
어쨌든 이층집과 세차장과 보리밭이라니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때의 달비골, 월배의 모습은 모든 곳이 그랬다. 논과 논 사이 논두렁이 갑자기 아스팔트가 되고, 저수지 하나 달랑 있던 허허벌판에 어느 날 아파트가 말뚝 박히듯 들어섰고, 밀려드는 전학생을 감당하지 못한 학교는 오전반과 오후반 2부제 수업으로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서너 채의 집들이 마주 보고 있던 동네 공터는 실상 앞마당쯤 넓이였지만, 아이들에게는 큰 광장과도 같았다. 동네 아이들은 눈만 뜨면 놀 궁리를 하며 그곳으로 모여들었는데, 아이도 집 앞 공터에서 자주 놀았다. 딱지치기도 하고, 술래잡기도 하고, 비석 치기, 얼음땡, 구슬치기 등 할 수 있는 것은 무지하게 많았다. 그러다 그 마저도 심심해질라치면 고물상에 들어가 놀거리를 찾아 나오면 되었다. 거기엔 바퀴 없는 장난감 말도 있었고, 다리 없는 소반도 있었으며, 빗자루며 그릇이며 마음만 먹으면 한 살림 거하게 차려 소꿉살이를 할 수도 있었다.
이른 봄, 엄마가 동생을 데리고 간 뒤 아이는 가끔씩 엄마를 보는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어릴수록 주어진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법이다. 의식주에 대한 생존 본능이 민첩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아홉 살은 그리움이 뭔지, 보고 싶은 마음이 뭔지 알 수 있는 나이도 못 되었고, 옆에서 마음을 헤아려 줄 어른도 없었다. 먹고사는 일에 모든 것을 내어주어야 했던 시절에는 아이 마음 따위는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그런 시간 속에 홀로 걸었던 아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5월로 막 들어서던 날, 아이는 동네 마당 공터에 나와 있었다. 제법 힘을 쓰기 시작한 초여름 햇볕이 만만하게 따사롭기도 했고, 2부제 오후반이었던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난 뒤인 오전 시간에 특별히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바깥출입을 즐겨하는 분이 아니었지만, 그날따라 장에 갔다 오마 하고 집을 비웠다. 점심은 부엌 밥상에 차려져 있었고, 아이는 알아서 밥 먹고 2시까지 학교에 가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평소에도 입이 짧았던 아이는 혼자 밥을 먹는 일에는 더더욱 취미가 없었기에 점심은 건너뛸 생각이었다. 할머니 잔소리는 좀 귀찮겠지만.
어른들은 일하러 가고 아이들은 학교에 간 시간, 아이의 시간은 바람 없는 하늘의 구름처럼 느리게 또 무료하게 흘러갔다. 그렇게 혼자서 마당에다 마른 나뭇가지로 그림도 그리고, 가만히 앉아서 하늘을 보기도 하고, 멀리 밭도 바라보았다가, 그 시선 끝이 청보리밭을 향했을 때다. 친구 하나가 거기 있었다.
누구지? 아이는 엉덩이 툭툭 털고 일어나서 보리밭으로 갔다. 수웅이었다. 박수웅. 아랫 동네에 사는 수웅이는 아이와 같은 2학년 3반이었고, 같은 오후반이었다. 가만히 보니 수웅이는 책가방까지 메고, 아예 학교 갈 채비를 다 하고 나와 있었다.
니 여기서 머하는데?
그냥 논다.
근데, 책가방은 왜 메고 나왔는데?
동생이 자꾸 놀아달라고 귀찮게 해서 그냥 일찍 나왔다. 좀 놀다가 학교 갈라고.
두렁에 앉아 보리 모가지를 똑똑 따대던 수웅이는 아이가 말을 걸어오자 같이 놀 친구를 찾았다는 듯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보리밭 안으로 쑥 들어갔다. 차라락~ 보리가 출렁였다.
우리 여기서 놀자. 니도 해 봐라. 재미있데이.
안 된다. 니 그카믄 어른들이 보고 혼낸데이...
수웅이의 행동에 조금 당황한 아이는 같이 놀고는 싶은데, 보리밭에는 들어가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서, 망설이고 섰다.
아이다. 우리 아빠가 캤는데,
보리는 밟아 줘야 잘 큰다 캤다.
이거 밟으면 아그작 아그작, 소리도 재밌고,
기찻길처럼 길도 난데이.
진짜로?
그래~ 카니까, 조금만 놀자.
수웅이의 말에 보리밭에 들어가도 될 이유를 얻은 아이는 자기도 보리 허리를 손끝으로 건드려 보았다. 밭에 서고 보니, 키가 자란 보리는 얼추 아이 가슴께까지 왔다. 그 사이를 깨금발로 뛰어다니는 수웅이를 보니, 가슴 아래 쪽으로는 보이지 않고 어깨 위로만 보여, 보리밭 위로 미끄러지며 날아다니는 마법사처럼 보였다. 사사사삭, 차르륵, 어깨에 부딪히는 보리 소리도 나쁘지 않았다. 보리 사이를 걷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하긴, 아홉 살은 친구와 함께라면 그냥 앉아만 있어도 즐거울 나이다.
예부터 보리밟기라는 게 있긴 했다. 추운 겨울 날씨 때문에 보리밭이 얼어서 부풀어 오른다거나 혹은 너무 따뜻해서 보리가 웃자라는 것을 막기 위해 보리 싹을 밟아주는 일이 었는데, 그건 이른 초봄에 할 일이지 초여름의 일은 아니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결국, 아이와 수웅이는 그저 다 자란 남의 보리밭을 망쳐놓은 셈이 된 것이다.
해질 무렵 청보리밭
일어나가 똑바로 앉아 봐라.
학교 다녀와서 밥만 먹고 초저녁 잠에 빠졌던 아이는 아빠의 소리에 잠이 깼다. 아니, 아빠가 잠을 깨웠다. 비몽사몽 제대로 정신이 들지도 않았지만, '똑바로 앉아봐라.' 한 마디에 아이는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빠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게 될까. 긴장이 흐르는 방안은 진공상태가 된 듯, 아이의 모든 것이 쪼그라들었다.
니, 보리밭 들어갔나.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빠가 그걸 어떻게 알았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을 해라, 대답을!
네....
어디 남의 집 밭에 들어가서 그런 짓을 하노, 어?
정신이 있나, 없나!
친구가 같이 놀자 그래가꼬...
뭐!
그러믄 친구가 도둑질 하자캐도
냉큼 따라 하겠단 말이가!
생각이 없노 아가, 생각이!
어디 남의 밭을 다 망치놓고 그카노!
아빠의 화에는 아이를 향한 꾸짖음에다 아까 찾아온 동네 아저씨에 대한 화까지 얹혀 있었다. 그 모든 화가 방바닥을 보고 앉아 있는 아이의 정수리 위로 쏟아졌다.
일의 전모는 이랬다. 아빠가 일을 마치고 막 귀가해 씻는 참에 보리밭주인이 찾아온 모양이었이다. 이 집 애가 자기 집 보리 다 밟아 놔서 못쓰게 됐다고, 그러니 책임을 지라고. 아니, 우리 아가 그랬다는 증거가 어디있능교, 받아치는 아빠에게 보리밭 주인은 목격자가 있다고 했다.
고물상 아저씨가 아랫동네 애가 낮에 보리밭에서 노는 걸 봤다고 했는데, 혼자 그런 건 아닌 것 같더라고 하더란다. 안타깝게도 아랫마을 애들 중에는 수웅이를 빼면 중학생이거나 아주 어린애 밖에 없었다. 심증, 물증, 목격자까지 다 잡은 아저씨는 그 길로 곧장 수웅이 집을 찾아가 한바탕 푸닥거리 놓은 뒤, 아이의 이름을 받아 내고는 아이의 아빠에게 당당하게 보상 운운하며 따지러 온 것이다.
철 모르는 아이가 한 짓에 대한 이해보다 거둬들일 보리가 줄어든 것이 더 화가 났던 아저씨는 온갖 말을 해 대며 아빠의 속을 긁어놨던 모양인데, 돈도 돈이지만, 남에게 엄한 소리 들은 것이 아빠는 못내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났던가보다.
아무리 어리다 캐도 그렇지, 천지 분간도 못하는 놈이 어딨노!
문밖에 나가서, 니가 머를 잘못했는지 생각해봐라.
아빠의 처분이었다. 아이는 문을 열고 나와 문 앞에 섰다. 말이 방문이지, 드르륵 안방 미닫이 문을 열면 바로 커다란 창고였다. 아빠는 큰 제과업체에서 빵을 받아 유통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빵상자를 쌓아둘 넉넉한 창고가 필요했는데, 살 집까지 따로 장만할 여유가 되지 않았던 아빠는 창고 안에 방과 부엌이 달린 집을 구했던 것이다.
방문 앞에 서서 아이는 생각했다. 보리밭을 밟는다는 것이 그렇게 큰일인 줄은 몰랐다고. 수웅이가 보리는 밟아줘야 잘 큰다고 지네 아빠에게 들었다고 했는데, 그럼 걔네 아빠 말이 틀리다는 건가. 아니면 우리 아빠가 잘 못 알고 있는 건가. 도무지 뭐가 맞는지 모를 일이었다. 자다 깨서 하얀 러닝셔츠에 팬티 바람으로 문 밖으로 쫓겨난 아이는 겨드랑이로 파고드는 초여름 밤공기도 추웠지만, 아빠의 굳은 목소리가 더 서늘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면 늘 구원자는 할머니다. 언제나 어리숙하게, 혼내면 혼내는 대로, 때리면 때리는 대로, 도망가지도 않고 모조리 뒤집어쓰고 앉아 있는 아이가 안타까웠던 할머니는 아빠의 화가 조금 가라앉은 것처럼 보이면 부러 큰 소리로 할매 따라 가자, 마 됐다, 뭐 그런 거를 갖고 그카노, 공연히허공에다 말을 뿌려대며 아이를 데리고 슬쩍 자리를 피하곤 했다. 그러면 아빠는 알면서도 돌아 앉아 모른척했다. 그게 미안하다는 뜻인지, 그래도 사랑한다는 마음인지, 다 널 위한 것이라는건지, 아이는 다 클 때까지도 그런 아빠 등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엄마와 동생이 없는 집에서 이제 구원자는 진짜 할머니 밖에는 없었고, 그날도 할머니가 아이의 손을 잡고 끌었다.
마, 이만 하믄 됐다. 자러 가자.
야가 뭐를 안다꼬 그마이 그카노.
늠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하는 소리를 갖고 와 아를 잡고 카노.
느그 아바이 성격이 불 같아서 큰 일이다, 참말로.
그러면서 마지막에는 작은 목소리로 아이를 단속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니도 이제는 보리밭 같은 데 함부레 드가지 말고. 알긋나.
할머니의 작은 목소리는 '말 안 해도 할매는 다 안다, 얼라들이 크나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 다 있는 것이제, 아가 속이 보드랍아서 뭘 몰라서 안카나'라는 그런 토닥임을 안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할매는 영원한 네 편'이라는 따뜻한 속삭임이기도 했다.
할머니를 따라 건넌방으로 가면서 아이는 발을 내려다보았다. 맨발로 서늘한 밤공기를 맞은 아이의 발은 엄지발톱이 푸르게 변해 있었다. 희미한 불빛에 보이는 발등도 푸르스름한 게 자기 발 같지가 않았다. 발가락을 꼬물락 거리니 슬리퍼에 닿은 발이 못으로 긁힌 듯 아팠다.
춥제. 옷도 안 입은 아를 내 쫓고 그카노. 아이고, 발 찹은 거 바라.
아직 연탄불을 때던 건넌방에는 아랫목이 있었는데, 할머니가 아랫목으로 아이 발을 넣어 주었다. 그리고 한 참 동안 할머니는 아이의 발을 주물러 주었다. 아팠던 발이 간지럽다 느껴질 때까지.
청보리가 익어가는 계절 5월이 되면 아이는 문득문득 그날 그 밤에 내려다보았던 '푸른 발'을 생각한다. 그 날 밤의 푸른 발등은 참말 아팠다고. 그렇지만, 수웅이랑 보리 밟고 논 거는 정말 재미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