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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지현 Apr 07. 2020

엄마 없는 날들

성장 치유 에세이

그럼 얼마나 있으면 되겠어요?

한 일 년은 그래도 일을 배워야지 않긋나.

쟈는 우짜고?

뭐, 어무이도 있고 하니까, 아 학교 다니는 거는 걱정 안 해도 된다. 작은 애나 델고 가 있으라.

그러면 주말 마다는 당신이 올 거지요?

내가 큰 아 델고 한 번씩 갈게.


분명 잠이 들었었는데, 아빠와 엄마의 대화에 아이는 의식은 점점 또렷해졌다. 엄마와 아빠가 조곤조곤 나누던 대화가 아이의 잠을 깨웠고, 그 내용은 아이의 머리를 깨웠던 것이다. 일 년? 간다고? 어디를? 동생만? 나는? 아이의 머릿속에 수많은 물음표가 떠다니기 시작했다.


엄마, 어디가?

자는 줄 알았더니, 깼나? 저녁 먹자. 일어나그라.


묻는 말에 대답은 않고 엄마는 밥 얘기를 했다. 그런 거 묻지 말고, 어른들 하는 일 궁금해하지 말고, 잠자코 밥 먹고 있으면 나중에 다 말해주겠다는 어른들의 의사표현은 늘 그랬다. 밥이나 먹어.


밥 먹자는 엄마의 말에 아이는 더 이상 묻지 못했다. 그리고는 어른들 사이에 흐르는 공기를 바라보기만 했다. 할머니와 아빠, 엄마, 여섯 살 난 동생과 함께 사는 아이의 집은 다섯 식구 가운데 남자라곤 아빠 혼자였고, 모든 결정권과 발언권은 아빠에게 있었다. 어떤 일이든 무슨 이야기든 아빠 입에서 나오게 될 것이었다.


다섯 식구는 둥근 밥상에 둘러앉아 서로 마주 보며 밥을 먹었다. 음식을 씹는 소리가 밥그릇 사이를 빠르게 오갔다. 아빠는 밥을 먹는 동안 수다 떠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밥을 입에 넣고 이야기하는 것은 밥상머리 예절에 맞지 않다는 것이 평소 당신의 생각이었고, 밥은 숟가락을 드는 순간 게으름 피우지 않고 부지런히 밥그릇을 비우는 것이 예법이라 생각했다. 고요함 속에서 순식간에 한 그릇을 비운 아빠는 물로 입가심을 한 뒤 밥상에서 물러나 앉으며 말을 꺼냈다.


어무이, 애들 엄마하고 둘째는 다음 주부터 시내 있는 가게에서 지내기로 했니더.

아 엄마 일 좀 배우고 나면 그때 여기 정리하고 우리 그쪽으로 이사 갈라 고요.

어무이도 그리 알고 계시 이소.


큰 식품 업체에서 빵을 납품받아 유통을 하던 아빠는 얼마 전부터 본인이 직접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알아보고 있었다고 했다. 그 결과 시내에 있는 한식 전문 식당을 인수하기로 했는데, 식당 일과 운영이 모두 처음이었던 엄마 아빠는 선 일을 배우는 게 급선무였다. 그래서 엄마가 먼저 시내 식당으로 가서 한 일 년 일을 배우고, 이후에 아빠가 합류하기로 결정했는데, 큰 아이는 학교를 다녀야 하니 지금 집에 남겨두고, 동생만 데려 가기로 한 것이다.


아이는 어안이 벙벙했다. 일 년 뒤 이사를 가는 것과 아빠의 직업이 바뀌게 될 거라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것보다 엄마가 간다는 것, 그것도 동생만 데리고 다른 곳에 간다는 말에 아이는 멍해졌다. 어차피 어른들 결정이니 아이는 따라야 할 것이었지만, 왜 나는 안 데리고 가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둘 중 한 명이어야 한다면 어차피 엄마 옆은 늘 동생 차지였으니까. 동생은 아이보다 어렸으니까.


아이는 엄마 옆에서 잠을 자 본 기억이 별로 없었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저도 엄마 옆에서 잤겠지만, 그때는 아이로서는 기억할 수 없는 때였고, 동생이 태어난 이후부터는 아빠의 엄격한 효도 관념으로 아이는 할머니와 한 방을 써야 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그것도 일찍 남편을 여의고 혼자되신 어머니를 홀로 방을 쓰게 해선 안 된다는 것이 아빠의 굳은 신념이었기 때문이다. 혼자 방을 쓰는 노인은 자연스럽게 가족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누군가와 함께 방을 쓰고 정을 나누며 가족 구성원과의 끈을 공고히 해야 하는데, 그 연결의 끈이 아이였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아이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할머니와 방을 함께 쓰게 될 것이었다.


아빠가 일 년 뒤의 계획과 일주일 후의 계획을 공표한 그날도 아이는 할머니를 따라 건넌방으로 가서 자야 했다. 말라붙은 밥풀처럼 방바닥에 딱 붙어서 안방 엄마 옆에서 자고 싶다 온 몸으로 표현도 아빠의 눈빛 한 번이면 일어나야 했고, 부러 초저녁부터 안방에서 잠에 골아떨어져도 봤지만, 아빠는 아이를 번쩍 안아 할머니 이부자리에 내어드리곤 했다. 어무이 적적하시지 않게.

엄마와 헤어지기까지 일주일. 일곱 개의 밤. 양 손을 모두 펴고 꼽으면 손가락이 다 접혀지지 않을 만큼 적은 밤이었다. 그렇게 모자란 밤이 아이는 못내 아쉬웠다. 엄마와 같이 있고 싶은 마음과 아쉬운 마음이 덩달아 커져가는 사이 시간은 야속하게도 빠르게만 흘러갔다.




엄마? 할머니, 엄마 어디 갔어?

으응... 쩌어기 식당집에 간다 안 캤나. 아까 느 아부지가 차로 짐 실어다 주러 갔다.

니는 다음에 학교 쉬는 날에 아빠가 데리고 가본다 카드 마는. 어여 씻고, 밥 묵으라.   


그제야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는 집 안을 둘러보았다. 분명 모든 게 그대로인데, 이가 빠지듯 뭔가 하나씩 빠져나간 게 보였다. 큰 장롱은 그대로인데, 그 옆 작은 서랍장 하나가 사라졌고, 아빠 책상과 수납장은 그대로인데, 그 옆에 있던 엄마 화장품 상자가 없어졌고, 옷걸이는 그대로인데 늘 걸려있던 엄마의 꽃무늬 외투와 손가방이 사라졌으며, 늘 다섯 식구의 양말로 넘쳐나던 양말 바구니는 엄마와 동생의 양말 빠져나가 헐렁한 모습이 돼 있었다. 엄마가 없음을 엄마의 흔적으로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엄마 갔다고? 치... 나 오면 가지...


아이는 자신이 학교에서 돌아오기도 전에 가버린 엄마가 한 편 야속했지만, 그렇다고 걱정했던 것보다 큰일이 일어난 것 같지 않은 스스로의 마음이 더 놀라웠다. 엄마 갔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냥 그런 생각. 놀이터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가 오지 않아서 기다리다가 그냥 집으로 온 것 같은 그런 김 빠지는 기분... 그동안 엄마가 가면 어쩌나, 눈물이 나면 어떻게 하지... 혼자 속으로 걱정했던 일이 괜한 일만 같았다. 그리고 스스로도 그 정도의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자 아이는 자신이 조금은 컸나... 일견 대견하게 느껴졌다.


엄마와 동생이 없는 날은 엄마와 동생이 있던 날과 다를 것 없이 흘러갔다. 새벽이면 아빠는 변함없이 일을 하러 갔다 저녁에 돌아왔고, 아침이 되면 아이는 엄마 대신 할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고 학교를 가고, 귀찮게 하던 동생이 없어 조금 허전하긴 했지만, 그래도 자잘한 일로 싸우지 않아도 되는 편하기도 한 날들이 전과 다름없이 이어졌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 때였나. 하필 그날은 김치볶음밥이 먹고 싶었다. 김치볶음밥은 엄마가 주로 마땅한 반찬이 없을 때 만들어 주는 것이었지만, 아이에게는 별미 음식이었는데, 얼마나 김치볶음밥을 좋아했냐면 아이가 엄마, 김치볶음바압~! 하면 엄마는 또?라고 대답했다. 배가 좀 고프다는 날이면 엄마는 달걀프라이까지 얹어서 내주곤 했는데, 그러면 아이는 완전히 익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날것도 아닌 노른자부터 숟가락으로 폭 찍어서 떠먹곤 했다. 그런 김치볶음밥이 그 날 갑자기 먹고 싶어 진 것이다. 딱히 배가 고팠던 것도 아닌데, 김치볶음밥이 먹고 싶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여느 때 같았다면, 엄마 김치볶음밥 해주라, 하고 기다렸겠지만, 그 날은 할머니가 그거 어떻게 만들어야 되는고?라고 하셨기 때문에 아이도 할머니를 따라 함께 부엌으로 들어갔다. 사실, 따라 들어가긴 했지만,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모르는 건,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어쩌다 본 건 있어서, 막막하게 서 있던 할머니에게 엄마가 프라이팬에 밥이랑 김치랑 넣고 이렇게 이렇게 막 비볐는데... 하니까, 할머니도 아이의 말대로 김치와 밥을 프라이팬에 담고 숟가락으로 비볐다.


식용유를 두르고, 팬을 달구고, 잘게 썰어둔 김치를 볶다가 밥을 넣고 좀 더 볶은 뒤 참기름과 통깨로 마무리를 해야 하는 김치볶음밥이지만 기름기 없는 마른 팬에 김치와 밥을 넣고 무작정 비벼대기만 한 할머니와 아이의 김치볶음밥은 김치는 타고, 밥은 제대로 섞이지 않아 군데군데 흰밥이 보였다.

 

어? 엄마가 만들어 주던 거는 이게 아닌데... 했더니, 할머니는 그래도 김치도 들어가고 밥도 들어갔으니 먹어 보라고 그릇에 담아 왔고, 다음에 엄마한테 가 해 달라고 하면 더 맛있게 해 줄 거라고 했다. 엄마가 만들어 주던 김치볶음밥은 이게 아니었는데... 기름 없이 볶은 타버린 김치볶음밥을 먹던 아이는 갑자기 서러움도 아닌, 슬픔도 아닌, 그렇다고 짜증은 더더욱 아닌 이상한 눈물이 눈에서 핑 돌았다. 엄마가 갔던 날도 울지 않았는데, 뜬금없이 김치볶음밥 하나가 아이에게 영문 모를 눈물을 흘리게 한 것이다.


와? 볶음밥이 맛이 없어 그러나? 아이고 별나다, 그냥 묵으믄 되겠구마는.

있어 봐라. 내가 느 엄마한테 물어보고 다시 해 주꾸마.


맛이 없어 그러나... 할머니는 잘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전화번호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다이얼을 돌려 엄마에게 전화했다. 하지만, 엄마는 받지 않았다. 하 참, 별일일세, 자는 와 자꾸 울어쌌노... 혼잣말을 하던 할머니는 다른 거라도 해줄까 하며 아이를 달랬지만, 그럴수록 아이의 울음은 더 커져만 갔다. 식어가는 김치볶음밥을 앞에 두고, 아이의 음이 내려앉은 것이다. 그리고 뒤늦게 터진 허전하고 텅 빈 마음 그칠줄을 모르고 볼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엄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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