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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지현 Aug 29. 2020

밥이 뭐라고... 그 밥 때문에 평생 힘든 사람들

독립출판 '밥-신화를 걷어내다'후기-밥에 대한 아주 사적이고 소소한 항변

얼마 전 독립출판으로 책을 한 권 만들었다. 단독은 아니고, 각 자의 영역에서 삶을 일구어 가고 있는 나를 포함한 여자 셋이 의기투합해 만든 책인데, 이름 해서 <밥-신화를 걷어내다>이다. 너무 익숙해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그 무엇에 대한 고찰을 해 보자는 것이 의도였는데, 그 가운데 '밥'이라는 주제가 안성맞춤이었다.


늘 엄마의 손맛과 집밥을 낭만섞인 위안과 치유처럼 이야기 하면서도 그 뒤에 숨겨져 있던 엄마의 칼질 노동과, 평생을 쌀 씻고 나물 무치느라 류머티스 관절염으로 주먹조차 쥐어지지 않는 엄마의 굵은 손가락을 생각해 본 적이 있던가. 알고 보면 기타를 든 남자 뒤에는 울부짖는 처자식이 있다더니, 삼시세끼의 배부름 뒤엔 엄마의 삭신이 쑤시는 전신 노동이 있다는 걸, 보려하지 않으면 쉽게 모르고 산다.


엄마의 숨겨진 부엌노동을 밖으로 끄집어내고, 밥이 그냥 뚝딱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늘 먹던 밥상에 숟가락 하나 놓는 것으로 한 사람의 밥이 금세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한 끼 거른다고 해서 엄마의 사랑이 그 만큼 줄어든다거나, 따뜻한 새 밥이 아닌 햄버거로 끼니를 대신한다고 해서 엄마의 사랑도 패스트푸드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더불어 밥을 잣대로 모성의 정도를 가늠하는 개념도 수정이 필요했다.

그렇게 <밥-신화를 걷어내다>라는 책이 세상에 나왔다.


밥 하는 거 가지고 너무 그렇게 '노동' 운운하지 말자,는 말


며칠 뒤, 책을 읽었다는 몇몇 이들에게 읽은 느낌을 물었다. 남녀의 반응이 사뭇 달랐다. 책을 읽은 대다수의 여성은 크고 작은 공감을, 책을 읽은 몇몇의 남성은 나이와 결혼여부에 상관없이 하나 같이 똑 같은 말을 후기로 들려주었다.


"밥을 너무 노동으로만 보는 시선이 불편하다."

"이해는 하지만, 뭘 꼭 그렇게까지 따질 필요가 있나 싶다."


왜 밥을 이야기 하려고 했는지,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보다는 '밥'가지고 괜히 왜 그러냐는 것이다. 내 주변에도 이렇게 말을 한 남자어른이 있다. 나는 이 책에서 두 개의 글을 썼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밥'이란 주제로 인터뷰를 한 것이었다. 인터뷰이는 오래도록 밥을 해 온 사람이어야 했고, 누가 들어도 우리네 엄마 같은 사람, 즉 여염집 아낙이어야 했다. 고심끝에 친정엄마를 인터뷰이로 정하고, 친정집을 찾았다.


'밥' 이야기가 나오자 엄마는 두런두런 남 얘기 하듯 건조하게 이야기했지만, 조용하면서도 길게 끊이지 않고 그 지겨움과 덧정 없음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옆에 앉아 TV를 보고 계시던 일흔의 아버지가 자꾸만 이야기의 흐름을 깨뜨렸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들 따지고 산다.", "내 가족 입에 밥 들어가는 거는 기쁨이고, 즐거움이지, 그걸 그렇게 따지고 사느냐.", "우리 때는 식구들 먹는 밥하는 거 가지고 그러지 않았다."라는 말들로.

아버지는 칠십이 넘도록 평생 가족의 식사를 위해 한 끼도 부엌노동을 해 보신 적이 없다. 다만, 차려진 밥상을 사이에 두고 오가는 즐거움과 안락함을 누리셨다. 밥상이 나오고 치워지기까지 엉덩이 한 번 붙일 새 없이 분주히 오가던 엄마와는 달리.

그럼에도 하나 같이 복사에서 붙여 놓은 듯한, 한결같은 남성들의 말에 나는 어떻게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밥의 문제를 생각한다


밥을 짓는 일은 단지 억울한 노동이고 수고일 뿐인 걸까. 그렇지 않다. 분명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행위이다. 어머니의 밥이 사랑이기에 아버지의 생계노동도 사랑이고, 어머니의 밥이 단순히 노동으로만 여겨질 수 없기에, 아버지의 생계활동도 당연히 노동만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다.


밥을 짓는 가사노동도 가계를 돌보는 생계노동도 사랑하는 가족의 부양과 안녕을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희생이라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감히 화폐단위로 가늠할 수 없는, 사랑과 정성이 작동하는 마음의 영역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것은 책임이다. 가정을 사랑하기에 가지는 책임, 가족을 지키고 잘 보살피기 위한 책임. 그 책임은 모든 것이 남자와 여자, 바깥일과 집안일로 양분되던 시절, 남자는 생계노동으로 여자는 가사노동으로 나눠가졌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고, 여성은 가사노동만을 남성은 생계노동만을 하지 않는다. 혼자 벌이만으로는 생활이 녹록치 않아진 현대 사회에서는 많은 여성들이 남성에게 지워지던 생계 노동을 나눠가지게 됐다. 자아실현이라는 보기도 듣기도 좋은 말로 대신하곤 하지만, 그 아래에는 '가정 경제 부양'이라는 깰 수 없는 현실의 바닥이 존재함도 결코 부인할 수 없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생각하는 결혼의 조건 가운데 하나가 ‘맞벌이’다. 남자 혼자 벌어 가정을 꾸려가기엔 현실이 버겁다는 걸, 우리 모두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꺼이 가정을 위한 생계 노동을 여자도 생각한다. 하지만, ’맞벌이‘는 있어도 '맞가사노동', '맞육아'란 조건은 없다. 아직도 가사노동과 육아와 돌봄의 영역은 여자의 것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서로의 안녕을 위해서는 생계노동의 책임을 나누는 만큼 가사노동의 책임도 나누어야 어느 한쪽이 짓눌려 나가떨어지는 일이 없다.


책에서 말하는 밥은 결코, 억울함이 아니다. 그리고 남자에게 집안의 생계 노동과 가사노동을 전가 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가족을 사랑하는 만큼 그 사랑의 책임 또한 부담스럽지 않게, 그 책임에 짓눌려 남편의 어깨가 으스러지고, 아내의 가슴이 멍들지 않도록 수고를 나누고, 힘듦을 알아차리고, 어려운 건 함께 해결하며 같이 걸어가자는 말이다. 가부장적 사회에서는 남자도 여자도 힘들다.  



* 이 글은 <오 마이 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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