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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형복 Jan 02. 2020

자작시로 읽는 에세이(13)-다시 초발심으로

평생 학자로 살겠다는 초발심/ 어디로 사라졌는가


세상의 욕심에 물들고/ 자신의 나태에 안주하고


나 아니면 안된다는/ 교만과 아집에 빠져/ 헛되이 세월 보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의 총량은/ 얼마나 남았을까


내가 간절히 원하고/ 해야 할 일 무엇인가


번민으로 밤을 지새우다 


구속 아닌 자유/ 고통 아닌 행복/ 절망 아닌 희망을 찾아 


자승자박(自繩自縛)-스스로 밧줄로/ 두 손 두 발 꽁꽁 묶어/ 천길 낭떠러지 펄펄 끓는 유황불에 몸을 던지다


천년의 인고(忍苦)을 견디고/ 다시 초발심으로 결연히 떨치고 살아나지 못한다면/ 세상의 뒤안길로 조용히 사라지리라// (졸시 <다시 초발심(初發心)으로> 전문, 「바람구멍」중에서)



몇 해 전 여름 경북대학교 교수회 부의장 겸 총장선거관리위원회 부의장직에서 물러났다. 교수회 의장에게 사의를 표명하고는 곧바로 휴대전화의 전원을 껐다. 그 때부터 한동안 두문불출하고는 연구실의 문을 걸어 잠갔다. 총장선거를 둘러싸고 요동치는 학내정치상황 속에서 전격적으로 사표를 던지고 잠적했으니 나에 대한 비난이 빗발칠 것은 불 보듯 뻔하였다. 그 뒤 여러 경로를 통해 교수회로 복귀하라는 강한 요구가 있었지만 정중하게 사양하였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사람에게도 마찬가지. 나서야 할 때, 머물러야 할 때, 그리고 물러나야 할 때가 있다. 나이 들면서 ‘이 때’(시기)를 잘못 판단하면 곤경에 빠지거나 사회적 지위와 명예, 더러는 건강과 재산까지 모두 잃고 만다. 교수회 임원직에서 물러나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결론은, “내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라는 사실이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시간은 되돌릴 수도, 또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유한자산’이라는 점이다. 


대학교 3학년 때였다. 열다섯의 나이부터 시작된 지겹고 고통스런 정신적 방황을 끝내고 싶었다. 그 해 여름방학 동안 대구 황금동에 있는 절(사찰)로 숨어들었다. 첫 3주는 염송을, 다음 3주는 하루 천배씩 총 이만천배를 하면서 스스로 붓다의 제자가 되었다. 절에 있으면서 혼란스런 내면을 성찰하고 정리하였다.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머리가 아닌 몸으로 부딪히는 생활을 하면서 국제법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2학기 개학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외국어 공부를 시작하였다. 당시는 욕심과 의욕이 충만하여 영어, 불어, 일어, 중국어, 러시아어 다섯 개 외국어를 동시에 공부하였다. 러시아어는 가르치는 학원이 없어 녹음테이프로 공부하는데 도저히 어려워서 그만두었다. 중국어는 동갑내기 학원 강사와 공부는 하지 않고 농담 따먹기 하느라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포기하였다(여선생은 예뻤다!). 하지만 그 당시 나름대로 각오는 대단하여 나머지 외국어는 열심히 공부하였다. 이때부터 박사학위를 취득할 때까지 하루 다섯 시간 이상을 자본 적이 없다.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친 후 우여곡절 끝에 프랑스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했고,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하지만 삶이란 늘 그렇듯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터지고 말았으니 1997년 11월 외환위기가 터져버렸다. 귀국하고 약 2주 후의 일이다. C'est la vie!(셀라비. 그것이 바로 인생이려니. 무일푼인 나는 세 가족 뉠 방 한 칸 구할 돈은 커녕 당장 직장을 구할 수도 없어 하릴 없이 세월만 보낼 수밖에 없었다. 현실은 암담하였고, 앞이 보이지 않았다.  


대학 밖을 떠나본 적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시 공부하는 것뿐이었다. 유학을 떠날 때 가슴 깊이 학문적 서원(誓願)을 세웠다. “유럽연합(EU)법을 공부하여 국내에 소개하자!” 다시금 이 서원을 가슴 깊이 새겼다. 나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모든 현실 상황이 텍스트라고 생각하였다. 그 텍스트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하였다. 나 자신을 의지처로, 도반으로, 스승으로 삼았다. 무소의 뿔처럼 흔들림 없이 공부에 전념하고자 하였다. 내가 노력한 덕분인지, 운이 좋아서인지 주변의 도움을 얻어 어렵사리 대학에 자리를 잡았고, 교수라는 사회적 지위를 얻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은 영악하기 그지없다. 세월이 흐르면서 학문의 길에 들어서던 처음의 다짐과 각오는 어느 새 봄눈 녹듯 사라지고 없었다. 치열하게 공부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의 지위와 명성을 확보한 나는 나날이 교만하고 고집불통이 되어갔다. 얼기설기 얽힌 인간관계에 묶여 학자로서의 소신도 주견도 사라지고 말았다. “이래서는 안되는데...”란 자책과 후회도 잠시, 나는 점점 학자로서 가져야 할 의식과 소신을 버리고 현실과 타협하였다. 강단에서는 늘 주인으로, 주체로 살아야 한다며 제자들을 다그치면서 정작 나는 상황논리에 얽매여 노예로, 비겁자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현실은 나를 위한 훌륭한 변명거리를 제공했고, 나는 정신적으로 병들고 죽어가고 있었다. 다시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되었다.  


일체의 미련도, 집착도 단숨에 잘라야한다. 뒤돌아보는 순간, 소금 기둥으로 굳어버리리라. 그런 절박한 심정으로 자승자박(自繩自縛)-스스로 밧줄로 두 손 두 발 꽁꽁 묶어 천 길 낭떠러지 펄펄 끓는 유황불에 몸을 던지기로 결심하였다. 이제껏 그랬듯이 유약한 인간인 이상 수많은 유혹이 있으리라. 하지만 내게 주어진 인생이란 시간의 총량은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이제는 내가 간절히 원하고 해야 할 일에 집중해야 할 때 결연한 마음으로 ‘재발심의 발문(跋文)’을 쓴다. 


“천년의 인고(忍苦)을 견디고

다시 초발심으로 결연히 떨치고 살아나지 못한다면 

세상의 뒤안길로 조용히 사라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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